우리는 왜 공감능력을 기르려고 하는가?
이해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우선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해받고 싶은걸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의 구성원들과 소통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점점 각자의 고유한 목소리는 다양해지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해 받지 못함에서 오는 많은 아픔들과 그 아픔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으로 까지 가는 경우가 점점더 많아지고 있다.
거기다가 '코로나'라는 우리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은 인간과 인간의 최소한의 소통, 만남마저 쉽게 하지 못하게 개인과 개인의 거리를 두고 잠시 멈춤을 해야 하는 시간을 강제로 부여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다른사람과 소통하며 공감해야 할까?
언텍트 시대를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와 관련된 변화하는 시대를 어떻게 하면 잘 적응하여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해법들이 여기 저기서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 상위권에 속하는 능력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불가피하게 단절되어 버린, 물론 온라인상 화면과 화면을 통해 겨우 얼굴을 볼수 있기는 하지만 언텍트 시대 상의 판매량이 월등하다는 웃지 못할 통계에서 볼수 있듯이 상대방의 몸짓, 공간에 흐르는 분위기와 같은 소통의 중요한 요소들이 부족한 상태에서의 의사소통능력은 더 눈과 귀를 크게 열고 스킬을 길러야 하는 “능력”이 되어가는 듯하다.
자 우리 이제 공감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제앞에 공감과 관련된 해법을 말하고 있는 또하나의 책이 눈에 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본다.
이 책은 비운의 가족사를 통해 그 문을 연다.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한 활발했던 청년이 고등학교 졸업이후 몇번의 좌절을 겪고 그것을 딛고 일어서지 못해 마약에 빠져들고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찾지 못해, 어찌어찌하다 타지에서 약물과다 투여를 하고 자살하고 만다.
그 청년의 형이 바로 이 책을 쓴 아서P. 시아라미콜리 이다.
그 스토리를 읽고 제목을 다시 보니 마음이 먹먹해 졌다. 저자는 동생을 떠나보낸 이유, 자책과 어떻게 하면 동생의 자살을 막았을까 하는 수많은 번뇌의 시간을 통해 이 책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일까?
여태껏 보아온 공감과 관련된 책중에서 특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임상심리학자의 시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감의 역설?
공감이라고 다 좋은걸까?
공감이라고 모두다 상대방에게 위로가 될거라는 위험한 생각. 누구라도 한번쯤 타인의 그릇된 공감에 상처입어본 경험이 있을것이다. 단 그의 순수한 마음을 안다면 그래, 진심은 그런것이 아닐꺼야 라고 합리화 하며 상처입은 나를 오히려 다독거렸을 그 순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잘못된 공감을 할때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힐수도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