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도록 진지하고 싶지 않다
농담조차도 진지하지 않으면 용서 못한다는 사람이있지만, 나는 말뿐이라면 되도록 진지하고 싶지 않다고줄곧 생각해왔다. 그런 편이 정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 P22
최악의 인간 관계는 서로가 상대의 고통에는 관심이없고, 상대가 자신의 관심에만 주목해야 한다고 느끼는인간 관계이다. 반대로 최고의 인간 관계는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은 되도록 혼자 조용히 견뎌내며,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상대의 슬픔과 고통을 무언중에 깊이 헤아릴 수 있는 관계이다. - P27
노력하는 이가 주는 곤혹스러움
열심히 노력하는 이는 실은 곤혹스런 존재다. 게으름뱅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또회사나 사회에 마음의 빚이 있으므로 결코 으스대지 않는다. 그 결과 자신의 본질과 평판이 상당히 일치한다. 그러나 노력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당한 일, 훌륭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타인도 자신처럼 행동하기를, 또 타인이 자신에게 반드시 감사와 칭찬을 해주기를마음속으로 요구한다. - P33
그림자를 진하게 그림으로써 화가는 빛의 세기를타낸다. 악을 분명하게 인식했을 때에만 우리들은 인간의 극한 가능성으로써의 위대한 선을 생각한다. 악의 그림자가 없음은 동시에 유아성을 의미한다. 우리들은 최대한성숙한 인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맑은물에만 몸을 두지 말고 탁류에도 부대낄 일이며, 내 손은깨끗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진흙투성이라고 생각할 일이다. 언제나 나는 강하다고 자신하지 말고 나의 나약함을 확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일이다. - P35
내키지 않는 일에는 더 이상 구애받고 싶지 않다. 단일 분이라도 한 시간이라도, 아름다운 것, 감동할 만한것, 존경과 경이로 바라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사람을 두려워하거나, 추하다고 느끼거나, 때로는 업신여기고 싶은 마음으로 내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불어오는 바람처럼 언제나 솔직하고 부드럽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심히 원망하는 일 없이 살아가고 싶다. - P44
사람은 견딜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서는 순간 고압 전류가 흐르듯 가치관이 백팔십 도 완전히 뒤바뀌는 경우가 있다. 그순간은 이미 자신의 모든 생애를 포기하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나는 그 기분을 너무나 잘 안다. 친절한 사회란 이를테면 이렇게 상처받은 사람과 이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 없이 지내는 걸 의미한다. - P56
잘 모르는 일들에 관여하지 않는다
평상시 굳게 믿고 있는 가치가 어긋나게 되면 화를 내는 사람과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나는 후자 쪽인데, 그 이유는 내가 무책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쪽은 책임감이 강하며 새로운 사태에 항상 자신이 충분히 관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좋은 생각을갖고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앞길이 가로막히면 화를내게 된다. 그러나 나는 대부분의 일들은 나와는 관계가 없다고생각한다. 내 집 부엌이나 손바닥만한 야채밭 관리에 대해서라면 굉장히 말이 많지만, 내가 소속된 단체나 국가, 21세기 지구의 운명 등은 솔직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 P57
평판만큼 근거 없는 것도 없다
누구나 자신의 평판에는 신경이 쓰이는 법이다. 그러나 평판만큼 근거가 없는 것도 없다. 나 외에 나의 세세한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는데, 나를 모르는 타인이나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평판이 옳을 리 없다. 그런데도 그런 평판에 동요되는 사람이 많다. 세상 사람이 눈에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 - P69
미덕이라고 여기는 어떤 것도 완전치 않음을 알면, 우리들은 무엇을 하더라도 자신이 백 퍼센트 올바른 일을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자각이 참으로 소중하다. - P86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례다
우정에 관해서도 여전히 상대를 진심으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할 일이다. 이것이 우정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내가 그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위험한 일이며, 무례한 일이다. - P93
변화시키려 들면 안 된다. 단지 지켜보며, 내가 방패가 되어 그 사람이 결정적으로 붕괴되는 것만 막아주면된다. 성서의 말이다. 그것은 출구 없는 고통처럼 마음을죄어 누르는 듯한 느낌도 들고, 배려로써 마음을 떠받쳐주는 듯한 느낌도 든다. - P104
내가 갖고 있는 화집 어딘가에, 브뤼겔의 작품은 ‘겸양과 ‘관용‘이 커다란 테마라는 해설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인생에서 마약과 같은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맛을본 사람은 이 두가지가 없으면 슬퍼서 살아갈 수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요구‘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자신에게만요구해야 마땅하다. 만일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이 베풀어준다면, 무언의 존경과 감사의 눈길로 답하는 그런 류의 그 무엇일뿐이다. - P105
우리는 타인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무책임한 말이라면 ‘소문‘이 되고, 다소 신중한 말이라면 전기‘가 되고, ‘추도문‘, ‘추억담‘ 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들 중 어느 하나도 믿지 않는다. 사람은 함께 생활한 적 없는 타인의 심적 내먄 등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나는 추도기나 추억담 기술에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한 무례를 저지를 수 없는 노릇이다. - P107
분명 인생에서 협박이 먹혀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허나 그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것은 내가 관심받고 있고 지지받고 있다는 느낌이다. 친구도, 부모도, 형제도 나를믿고 기대하며 기다려준다고 느낄 때 흐트러진 마음도분발하게 된다. - P125
아버지는 성실한 분이었지만, 나는 성실함에 대한 두려움만 사무쳐 있었다. 그래서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오늘 하지 않는다‘ 로 나의 약점을 인정하고 타인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 P145
인생에서 진정한 위로란 있을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당사자 외엔 그 고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식이나남편과 고통을 나누고 싶어도, 어떤 어머니나 아내도 그일은 불가능하다. - P149
사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심리에는 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내막이 있게 마련이다. 이 점을 이해하는 한 인간은 결코 극단적판단 따위는 하지 않는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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