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계속 살 수 없다면 초록 지붕 집을 사랑해도 소용없잖아요. 지금 나갔다가 저 나무랑 꽃들, 과수원이랑 개울과 친해지면 어떻게 해요. 분명 사랑에 빠지고 말 텐데.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더 힘든 일은 안 만들래요. 저도 무척이나 밖에 나가고 싶다고요. 모두가절 부르는 거 같아요. ‘앤, 앤, 이리 와. 앤, 우리랑 놀자‘ 하면서요. 하지만 나가지 않는 게 낫겠어요. 헤어질 수밖에 없다면 사랑해서 뭐하겠어요?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는 건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제가여기서 살 줄 알고 뛸 듯이 기뻤던 이유도 그거였어요. 여긴 사랑할게 정말 많고 아무 방해도 안 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짧은 꿈도 끝이네요. 제 운명이죠. 밖에 나가면 제 운명을 거스르게 될까 봐안 나가려는 거예요. 창턱에 놓인 저 제라늄은 이름이 뭐예요?" - P71

앤이 비밀을 털어놓듯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있잖아요. 저는 이 길을 즐겁게 달리기로 마음먹었어요. 경험상 그래야겠다고 마음만 굳게 먹으면 즐겁지 않은 일이 별로 없는 거 같아요. 물론 마음을 정말 단단히 다잡아야 하지만요. 이길을 달리는 동안에는 고아원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안 하려고요.
그냥 길만 생각할래요. 와, 보세요. 벌써 작은 들장미 송이가 피었어요! 예쁘죠? 장미꽃이 되면 신날 거 같지 않으세요? 장미가 말할 수있다면 얼마나 멋질까요? 분명 우리에게 사랑스러운 얘기들을 들려줄 거예요. - P77

아, 이 꽃들 정말 예쁘지 않아요? 이런 꽃을 주시다니 린드 아주머니는 정말친절하세요. 이제 린드 아주머니에게 나쁜 감정은 요만큼도 없어요.
사과하고 용서를 받으니 마음이 정말 행복하고 편안해요! 오늘 밤은 별들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것 같죠? 별이 될 수 있다면 어떤 별이되고 싶으세요? 전 저쪽 어두운 언덕 위에 높이 뜬 맑고 아름다운 큰별이 될래요." - P142

"앤, 넌 무슨 일이든 그렇게 온 마음을 다 쏟는구나. 앞으로 살면서 실망할 일이 많을까 봐 걱정이다."
마릴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 마릴라 아주머니, 뭔가를 기대하는 건 그 자체로 즐겁잖아요.
어쩌면 바라던 결과를 얻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기대할 때의즐거움은 아무도 못 막을걸요. 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않는 자 복 받을지어다. 왜냐하면 결코 실망할 일도 없으니‘라고 말씀하시지만, 전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 기대도 하지 않는 게 더 나쁜 거 같아요." - P174

"정말 멋진 날이야! 이런 날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니?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이런 날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쌍해. 물론 그들도 멋진 날들을 보기야 하겠지만 오늘 하루는 영영 볼 수 없잖아. 그리고 학교에 갈 때 이런 아름다운 길이 있다는 건 더 멋진 거 같아, 안 그래?" - P195

"결국 배리 할머니는 마음이 통하는 분이셨어요. 할머니를 보기만해서는 그런 생각이 안 드실 거예요. 하지만 정말이에요. 매슈 아저씨도 처음 만났을 땐 얼른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금방 알게 됐잖아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제가 생각했던 것처럼 어려운 일이 아닌가봐요.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돼서정말 기뻐요." - P282

메이플라워 꽃이 진 다음 제비꽃이 피어나자 ‘제비꽃 골짜기‘가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등교길에 앤은 성지를 걷듯 경건한 걸음과 엄숙한 눈을 하고 보랏빛 골짜기를 지나갔다.
"왜 그런지 여길 지날 때면 수업에서 길・・・・・・ 누가 나를 앞서든 말든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다니까. 그런데 학교만 도착하면 전혀달라져서 평소처럼 신경이 쓰여. 내 안에는 앤이 여러 명 있나 봐. 가끔은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사고뭉치가 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만약내 안에 내가 한 명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편했을 거야. 재미는 절반도 안 됐겠지만."
앤이 다이애나에게 말했다. - P287

"아주머니, 내일을 생각하면 기분 좋지 않나요? 내일은 아직 아무실수도 저지르지 않은 새로운 날이잖아요." - P310

"내 보증하마. 넌 내일도 실수를 수두룩이 저지를 거다. 너처럼 실수를 쫓아다니며 저지르는 아이는 처음 본다. 앤."
앤이 풀이 죽어 말했다.
"맞아요. 저도 잘 알아요. 그래도 아주머니, 제게도 장점이 하나 있는데, 알고 계세요? 전 같은 실수는 두 번 저지르지 않아요."
"끊임없이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니 좋은 점이 있어도 그게 그거
"구나."
"아, 모르세요, 아주머니? 한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에는 분명 한계가 있어요. 제가 그 한계에 다다르면 제 실수도 끝나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에 정말 위로가 돼요."
"글쎄, 저 케이크나 가져가서 돼지한테 주렴. 사람이 먹을 건 못되더구나. 제리 부트라 해도 말이다." - P311

그러나 구석 자리에 말없이 앉아 있던 매슈는 마릴라가 자리를 뜬뒤 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수줍은 듯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의 낭만을 다 버리진 마라, 앤, 낭만이 조금 있는 건 좋은 거란다. 물론 너무 많으면 곤란하지. 하지만 조금은 남겨두렴. 조금은 말이다." - P397

배리 할머니는 약속대로 우리에게 손님방을 주셨어요. 방은 정말우아했지만, 손님방에서 자 보니 어쩐지 제가 늘 생각했던 것과 달랐어요, 아주머니.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그런 나쁜 점이 있는 거 같아요. 이제는 조금씩 알 거 같아요. 어릴 땐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소원들도 막상 이루어지면 상상했던 절반만큼도 멋지거나 신나지 않는거 같아요." - P407

앤은 행복하게 이야기의 끝을 맺었다.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요. 제 평생의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 P411

"잘 모르겠어요.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예쁘고 소중한 생각들은 보석처럼 마음속에 담아두는 게 더 좋아요. 그런 생각들이 비웃음을 당하거나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게 싫거든요. 그리고 왠지거창한 표현도 더는 쓰고 싶지 않아요. 아쉽기는 해요. 이젠 그런 말을 하고 싶으면 해도 될 만큼 컸는데 말이에요. 어른이 된다는 건 어 떤 면에서는 재미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그런 재미는 아니에 요, 아주머니. 배우고 생각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거창한 말을 할 시간이 없나 봐요. 게다가 스테이시 선생님도 짧은 말이 훨씬 더 강렬하고 효과적이라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수필을 쓸 때도 최대한 간결하게 쓰라고 하세요. 처음엔 힘들더라고요. 전 온갖 멋지고 거창 한 말들을 다 갖다 붙이는 데 워낙 익숙하잖아요. 그런 말이라면 얼 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젠 글을 간결하게 쓰 는 데 익숙해졌고, 그게 훨씬 좋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 P437

"글쎄. 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평생 다이아몬드로 위로받지 못한다 해도 말이야. 나는 진주 목걸이를 한 초록 지붕 집의 앤에 아주 만족해. 매슈 아저씨가 이 목걸이에 담아 주신 사랑이 분홍 드레스 아주머니의 보석 못지않다는 걸 아니까."
앤이 확고하게 말했다. - P469

클로버 들판 위로 바람이 불자 상쾌한 공기에꿀처럼 달콤한 향기가 섞였다. 농가의 나무들 사이로 집집마다 불빛이 반짝거렸다. 저 멀리 누운 바닷가에는 자줏빛 안개가 피어올랐고희미한 파도 소리가 끊임없이 속살댔다. 서쪽에는 형형색색 부드럽게 어우러진 빛깔의 향연이 호수 위로 한층 더 고운 음영을 그렸다.
그 모든 아름다움에 앤은 마음이 벅차올랐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고마움을 전했다.
"정든 세상아, 정말 아름답구나. 내가 네 안에 살아 있다는 게 기뻐." - P5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