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칠정 가운데서 오직 슬플 때만 우는 줄로 알 뿐, 칠정 모두가 울음을 자아낸다는 것은 모르지, 기쁨[] 사무쳐도 울게 되고, 노여움[怒] 사무쳐도 울게 되고, 즐거움[樂] 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사랑함(愛]이 사무쳐도 울게 되고, 욕심[慾] 사무쳐도울게 되는 것이야. 근심으로 답답한 걸 풀어 버리는데에는 소리보다 더 효과가 빠른 게 없지. 울음이란천지간에 있어서 우레와도 같은 것일세. 지극한 정[情]이 이치에 딱 맞게 발현된다면 울음이나 웃음이나 무에 다르겠는가. 사람이 감정의 극한을 경험하지 못하다 보니 교묘하게 칠정을 늘어놓고는 슬픔에다 울음을 짝지은 것일 뿐이라네. - P48
이제 나는 이 유리창 중에 홀로 서 있다. 내가 입고 있는 옷과 갓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것이고, 그 수염과눈썹은 천하가 처음 보는 바이며, 반남박씨는 중국천하가 들어 보지 못한 성씨이다. 여기서 나는 성인도 되고 부처도 되고 현자도 되고 호걸도 되려니, 이러한 미치광이 짓은 기자나 여輿와 같으나 장차 어느 지기와 이 지극한 즐거움을 논할 수 있으리오. 「관내정사」 8월 4일 - P105
이런 이별이라면 어찌 반드시 물가만이 알맞은 장소이겠는가. 정자도 알맞고, 누각도 알맞고, 산도 알맞고, 들판도 알맞은 것이다. 어찌 꼭 흐느껴 우는 물결과 어슴푸레 비추는 햇빛만이 우리의 괴로운 심정을자아낼 것이며, 또 막 무너지려 하는 다리나 앙상한고목만이 이별의 배경이 되겠는가. 저 화려한 기둥에채색한 문지방이나 봄날의 푸르고 맑은 날씨라 해도애달픈 이별의 풍경이 되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순간이 될 것이다. 이런 때를 만나면 설령 돌부처라도 돌아볼 것이고, 쇠로 된 간장일지라도 다 녹아 스러지고 말 것이니, 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죽음보다 더 슬픈 이별을 하기에 가장 알맞은 때이리라. - P136
때마침 어슴푸레한 달빛이 비스듬히 비치고 있었다. 관내의 양쪽 벼랑은 깎아지른 듯 백 길 높이로 우뚝섰고, 길은 그 사이에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담이작고 겁이 많아 대낮에도 홀로 빈방에 들어가거나 밤에 침침한 등불을 만나면 언제나 머리털이 쭈뼛하고심장이 쿵쿵 뛰곤 했다. 올해 내 나이 마흔네 살이지만 무서움을 타는 성정은 어릴 때와 같다. 지금 깊은밤에 홀로 만리장성 아래 서 있으니, 달은 떨어지고강물은 울며 바람은 처량하고 반딧불은 허공을 날아다닌다. 마주치는 모든 경계마다 놀랍고 신기하며 기이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홀연 두려운 마음이 없어지고 특이한 흥취가 왕성하게 일어나 공산소의초병草兵이나 북평北 호석도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할 정도다. - P143
열하까지 오는 나흘 밤낮 동안 한 번도 눈을 붙이지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하인들이 가다가 발을 멈추면 모두 서서 존다. 나 역시 졸음을 이길 수 없어, 눈시울은 구름장을 드리운 듯 무겁고 하품은 조수가 밀려오듯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눈을 빤히 뜨고 사물을보긴 하나 금세 기이한 꿈에 잠겨 버리고, 옆 사람에게 말에서 떨어질지 모르니 조심하라고 일깨워 주면서도 정작 내 몸은 안장에서 스르르 옆으로 기울어지곤 한다. 솔솔 잠이 쏟아져서 곤한 잠을 자게 되니 천상의 즐거움이 그 사이에 스며 있는 듯 달콤하기 그지없다. 때로는 가늘게 이어지고, 머리는 맑아져서오묘한 경지가 비할 데 없다. 이야말로 취한 가운데의 하늘과 땅이요, 꿈속의 산과 강이었다. - P150
"내 장차 우리 연암산중에 돌아가면, 일천 일 하고도 하루를 더 자서 천 일찍 자는 옛 희이선생 보다하루를 더 자리라. 또 코 고는 소리를 우레처럼 내질러 천하 영웅이 젓가락을 놓치게 하고, 미인이 기절초풍하게 할 것이다. 만약 이 약속을 어긴다면, 내기필코 너와 같이 돌이 되고 말 테다." 꾸벅 하며 깨어나니, 이 또한 꿈이었다. - P151
"붉은 꽃다지고 누런 꽃 피는구나." 붉은 꽃이란 청나라의 붉은 모자를 가리키고, 누런꽃이란 몽고와 서번의 누런 모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 P157
세상의 몽환이 본래 이와 같으니, 거울 속에서 보여 준 염량세태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인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오만 가지 일들도 다 그러하니, 아침에무성했다가 저녁에 시들고 어제의 부자가 오늘은 가난해지고 잠깐 젊었다가 갑자기 늙는 일 따위의 일들이 마치 꿈속의 꿈‘처럼 허망하기 짝이 없다. 죽거나살거나, 있거나 없는 일들 중에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이리오. - P190
매사가 다 이런 식이다. 장복이는 나이도 어리고 초행길인 데다 도무지 융통성이라곤 없는 놈이다. 동행하는 마두들이 장난으로 농지거리를 하면 곧이곧대로 다 믿어 버린다. 저런 놈을 믿고 먼 길을 갈 생각을하니 참 답답하기 짝이 없다. 「도강록」, 6월 27일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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