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삶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 P46
반딧불이가 사라져버린 후에도 그 빛의 궤적은 내 안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눈을 감은 두터운 어둠 속을, 그 연약한 흐린 빛은, 마치 갈 곳을 잃은 혼백처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헤매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어둠 속으로 몇 번이고 손을 뻗어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자그마한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 끝의 바로 조금앞에 있었다. - P78
"고독을 좋아해?"하고 그녀는 턱을 괴고 말했다. "혼자서 여행하고,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 떨어져 앉아 강의를 듣는 게 좋아?" "고독을 좋아하는 인간이란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을 뿐이지. 그런 짓을 해봐야 실망할 뿐이거든." 하고 나는 말했다. - P86
"하지만 난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하고 미도리는 내 어깨 위에서 조그맣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건 아주 사소한, 혹은 시시한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거야. 거기부터가 아니면 시작되지 않는 거지." - P121
에서는 옳다고 했어. 그는 우리들이 이곳에 와있는 건, 그 비뚤어진 것을 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뚤어진 것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고 했어. 우리들의 문제점 중 하나는, 그 비뚤어진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있다는 거야. 사람마다 걸음걸이에 버릇이 있듯이 느끼는 방식이나 사고방식, 사물에 대한 견해에도 버릇이 있고, 그것은 고치려 해도 갑자기 고쳐지는 것이 아니며, 무리하게 고치려들면 다른 데가 이상해져버린다는 거야. 물론 이건 지극히 단순화한 설명이고, 그런 건 우리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말하려는 뜻을 어슴푸레하게나마알 것도 같아 우리는 확실히 자신의 비뚤어짐에 잘 순응하지 못하고 있는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비뚤어짐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통을 적절하게 자기 안에 자리 잡게 할 수 없어서, 또 그런 것에서 멀리 떨어지기 위해서 이곳에 들어와 있는 셈이야. 이곳에 있는 한 우리는 다른 사람을괴롭히지 않아도 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자신이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 P135
"나, 셋이서 만나기 전에 꼭 자기와 단둘이서 만나고 싶었어. 특별히 무슨 이야기를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더라도, 자기 얼굴을 보고 자기에게익숙해지고 싶었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가 않아. 난 뭐든지 서툴러서." - P157
여섯 시가 되자 우리 셋은 본관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나오코와 나는 생건 튀김에 야채샐러드, 조림 그리고 밥과 된장국을 먹고, 레이코 씨는 마카로니 샐러드와 커피만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또 담배를피웠다. "나이가 들면 말이지,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아도 괜찮게 몸이 달라지거든." 하며 그녀는 설명조로 말했다. - P159
단지 반년 전의 일이었는데도 그것이 이미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일처럼 생각되었다. 아마 그 일에 대해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던 탓일 게다. 너무 많이 생각한 탓에 시간 감각이늘어나 헝클어져버린 것이었다.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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