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한영의 가출을 알아챌 줄 알았다. 한영을뒤에서 내리치고 돈 상자를 빼앗을 줄 알았다. 한영은 나일론 가방이 얇아 상자가 두드러지는 게 신경 쓰였다. 자꾸 뒤돌아보며 걸었다. 사람들은 무심했다. 여행 가는 대학생 이상으로 한영을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대낮이었고 집 앞이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오지않을 집. 집이 점점 멀어지는 게 등덜미로 찌릿찌릿 느껴졌다. 트렁크의 고장난 바퀴 한쪽이 필요 이상으로 도는 통에 가방이 자꾸 넘어지려 했다. 한영이 곤란해하며 횡단보도를 건너자 어떤 아저씨가대신 들어주기까지 했다. 친절해. 사람들은 친절해.
그게 거짓말인 줄은 알고 있다. 고장난 트렁크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집에 가면 자기 가족에게 어떤 얼굴을 할지 아무도 알수 없다.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異景)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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