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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 개정판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21년 8월
평점 :
"주인공 친구의 짝사랑, 저조한 시청률의 드라마 오래된 노래와 낡은 책을 애정하는 당신에게" 이 문장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을 담은 작가 가랑비메이커의 장면집 <언젠가 머물렀고 어느 틈에 놓쳐버린>. 2017년에 독립출판으로 출간되었고, 이번엔 개정 증보판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종종 잊혀지는 얼굴들과 이름에 대한 이야기'라는 문장에 무심코 지나쳤던, 애써 꾹꾹 담아놓았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이걸 말이나 글로 풀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작가 가랑비메이커는 담백하면서도 깊고 진하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풀어내었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 솔직한 감정표현과 받아들이는 느낌 등 장면 속의 '나'는 읽는 독자들의 무감각해진 마음을 깨워주기 충분했다.
짧은 글은 짧은 글대로, 긴 글은 긴 글대로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었고, 그 끝에는 수면 위로 올라온 애써 지나친 나의 장면들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또한 여태 많은 것을 놓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찬찬히 마음에 담아볼 예정이다. 작가 가랑비메이커의 글을 통해 많은 걸 비워냈고 더욱 소중한 것들을 얻었다. 애정을 담아 감사를 표하고 싶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여전히 이런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나 하나쯤은 반드시 기억해야겠다 싶은 것들. 빠르게 지나는 걸음들 사이에 홀로 멈춰 서서 문장을 솎아내게 하는 장면들은 언제나 빛바랜 것들이다. 오래되어 낡아 보이지만 사실은 더 갈 데 없이 무르익은 것들, 깊어진 것들. - P30
서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건 언제나 사람을 읽는 시선이에요. 서사 속 인물들이 얼마나 근사하게 비춰지는 지가 아니라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가 중요해요. - P45
나는 우리의 앎을 믿어. 그저 무책임한 낭만적 위로가 아니라는 걸 알지? - P105
가끔은 나 역시 네게 무언가 되고 싶었어. 아름다움만이 아닌, 다시 일어설 힘을 줄 수 있는 무엇이든. 네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 P188
나는 나의 걸음에 힘을 실어준 그 서사들을 언젠가 더 환한 곳에서 마주하게 되리라는 걸 믿는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그러나 더 나아가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기에 그 자리만이 아닌 제 자리를 찾으며 나아가기를 바랄 뿐이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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