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색이 없으면 민트색도 괜찮아 - 구한나리 문구 소설집 꿈꾸는돌 31
구한나리 지음 / 돌베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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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하게 문구를 좋아할 나이 10대. 소년과 소녀의 일상 속 스며든 아홉 편의 문구 이야기는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현직 교사이자 부산의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10대 청소년들의 관심사와 생활상을 생생히 담을 수 있었다.




'아끼는 수첩에 좋아하는 필기구로 사각사각 써 내려간' 아홉 편의 이야기는 문구 마니아인 저자의 문체로 더욱 애틋하고 반짝반짝 빛났다. (내가 좋아하는 문구 브랜드를 향한 공감과, 몰랐던 브랜드를 알게 되는 기쁨은 덤이다)

더욱 좋았던 건, 문구를 통한 '말'이었다. 각 이야기마다 주제가 되는 문구가 있었는데, "너는 흔들리지 않는 애니까, 너한테는 부러지지 않는 샤프보단 흔들리지 않는 샤프가 어울린다.", '어떻게 비유하면 좋을까. 그냥 볼펜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내가 지워지는 볼펜이었다는 비밀을 깨달은 기분. 처음 줄넘기를 성공한 순간의 기분.' 등등 문구의 특성에 빗대어 풀어나가는 말이 참 와닿았고 위로가 되었다.

필통 안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홉 편의 이야기 또한 주인공들의 필통 속을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특정 문구를 고집하거나, 문구 속 숨은 능력을 찾아내는 등 문구와 함께하는 그들의 삶은 특별했다. 책을 덮고 내 필통 속을 보았다. 애정 하는 몇 개의 펜들이 눈에 띄었고 예전보다 더 확고해진 취향이 꽤 마음에 들었다. 나를 포함한 문구를 향한 문구 마니아들의 따스하고 특별한 마음이 영원하길 바란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성적표가 나온 날 수민의 물음에 정현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첫 번째로 좋아하는 선물은 아마도 최 작가님이 사귀기도 전에 청혼해 버린 사람이 선물한 같은 무늬 가방일 거라고, 수민은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손수 만든 필통을 가방 안에 챙겼다. - P54

나는 책상에 가지런히 정리된 물건들을 괜스레 바라봤다. 4색 멀티펜, 크기와 용도가 다른 점착 메모지가 차곡차곡 들어 있을 커다란 필통이 우리 집 혜민이 방에서처럼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 그래도 여기에서는 혜민이가 힘들게 버티지 않으면 좋겠다고, 집에 가고 싶다고 나한테든 엄마한테든 응석을 부리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 P121

샤프라는 필기구에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뭉툭해지지 않으니 매일 깎지 않아도 돼서 편리하긴 한데 어쩐지 내가 쓰려고 했던 글씨 모양이 아닌 것 같고, 줄도 조금 다르게 그어지는 것 같았다. ... 나는 계속 연필을 깎았다. 내 연필과 권형주의 연필을 기차 모양 연필깎이에 넣고 돌리면 조금씩 떨리는 느낌이 손에 전해 오는 게 좋았다.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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