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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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작가를 좋아한다면, '에쿠니 가오리'를 모를 수가 없다. 그녀의 대표작은 무수히 많지만, 그 중 <냉정과 열정 사이> 그리고 <반짝반짝 빛나는>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은 저자가 1989년에서 2003년 사이에 쓴 작품들을 모은 단편소설집이다.



문예지 데뷔작인 <포물선>부터 <반짝반짝 빛나는>의 뒷이야기까지 총 9편이 담긴 이 단편소설집은 읽자마자 '아 역시 에쿠니 가오리!'라는 감탄을 하게 된다. 저자의 강점은 섬세한 감수성과 정갈하고 세련된 문체를 꼽을 수 있는데, 데뷔 초의 작품부터 다듬어져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결혼하고 싶게 만드는 부부, 헤어진 남자의 일부라도 되고픈 여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세 사람 등등 정말 다양한 상황과 감정을 담은 주인공들이 마냥 이해됐다.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표 이야기가 정말 그리웠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랑에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기에, 그것을 독자에게 잘 전달되기까지 많은 노고가 필요하지만, 저자에게는 큰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사랑과 이별 앞에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쿨하거나, 그 어디에도 마음을 둘 수 없는 등 (쇼코, 곤, 무츠키 이들을 이미 알고 있다면 이해할 것이다) 이들의 감정과 감수성이 마치 내가 겪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기 때문이다.


아홉 편의 이야기 중 단연코 감동적인 이야기는 <러브 미 텐더>가 아닐까 싶다.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보며 자식은 억장이 무너지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가장 반전 있고, 진한 감동이 있었다. 과연 나라면 아픈 '엄마' 곁을 묵묵히 지키는 '아빠'처럼 반려자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이외에도 '에쿠니 가오리'하면 다양한 연애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원래부터 동성, 양성연애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어쩌면 에쿠니 가오리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떠한 사랑이라도 저자는 (새드엔딩이든 해피엔딩이든) 아름답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투명한 청량감에 아련하고 따스한 위로를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는 책 <맨드라미의 빨강 버드나무의 초록>. 에쿠니 가오리, 그녀가 계속해서 글을 써주길 바랄 뿐이다.



예를 들면, 바다에서 물놀이를 하고 돌아온 날 밤, 잠자리에 들어도 여전히 몸이 파도에 일렁이는 듯한 느낌. 한낮의 해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아도 태양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 그런 식으로 고스케 씨는 늘 내 안에 있었다. - P76

이 시간이면 아마 텔레비전을 보고 있겠지. 진토닉을 마시면서. 문화계 인사의 정치 토론이라든지, 50년도 전의 영화라든지, 아츠야는 심야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어쩐지 평화롭고 마음이 편해진단다. 나로서는 그 느낌이 잘 와닿지 않는다. 다만 그런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아츠야를 보는 게 나는 좋다. 물론, 진토닉을 마시면서. 어쩐지 평화롭고 마음이 편해진다. - P159

겐고와 헤어지면서, 나는 영원이란 것을 믿지 않게 된 듯싶다. 그런데 로가 말하길, 그건 당연한 일이란다. 영원은 커녕 시간이라는 개념도 인위적인 가공의 개념일 거라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순간‘뿐이라고, 로는 말한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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