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런 벽지 - 샬럿 퍼킨스 길먼 단편선 에디션F 4
샬럿 퍼킨스 길먼 지음, 임현정 옮김 / 궁리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년 전부터 '여성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독려한 활동가들이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 케이트 쇼팽,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등 여성의 권리를 주장한 여성들이었다. 그중 단편 <누런 벽지>로 기억되고 있는 샬럿 퍼킨스 길먼 또한 수많은 강연과 집필 활동을 하며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을 주장한 페미니즘의 선구자였다. 



에디션 F 시리즈 네 번째 책인 <누런 벽지>는 당시 남성들이 중심이었던 사회를 비판하고 여성의 독립, 그것도 경제적 독립과 연대를 주제로 한 총 스무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1994년 출판된 세계 페미니즘 단편선 <19호실로 가다>를 아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누런 벽지>를 읽어봤을 것이다. 나 또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다.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기에 누구든 읽으면 쉽게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성의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으며 의사인 남편이 내린 '휴식' 처방에 여성은 집안에 갇힌 고통이 너무나 생생했다. 단편이라도 긴 호흡으로 읽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단편선은 '누런 벽지' 외에도 '다섯 소녀', '솔로몬 가라사대', '내가 남자라면', '전혀 다른 문제로 바뀔 때', '동업관계' 등등 당시 꿈꿀 수 없었던 여성의 교육과, 홀로서기 그리고 성공을 보여주었다. 무조건적인 해피엔딩은 없었지만, 보수적이고 억압된 사회의 시선을 당당히 비판하고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정체성과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성들이 나이 불문 너무나 멋졌다. 많이 변하긴 했지만, 1800년대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공감된다는 게 씁쓸하기도 했다.


저자를 포함한 선구자들부터 현재까지도 올바른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많은 활동가의 주장처럼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가 변해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구조가 되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또한 여성들의 희망과 연대가 끝없이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본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행하게도 한계를 지닌 인간은 천사에게 미소를 지으며 위로를 건네는 신성한 임무 말고도 부엌일과 청소, 바느질, 육아와 다른 일상적인 일들까지 요구했다. 천사는 이 모든 일을 하면서도 자신의 덕목을 온전히 간직해야 했다. 그런데 천사의 덕목에는 이상하게도 자기모순적인 면이 있었다. 그것은 원래 내재된 성질이었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을 덕목이라고 부르는 척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인간에게서 천사의 덕목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천사의 덕목이 인간들의 세속적 본성의 총합보다도 더 크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 P60

내가 외쳤다. "오! 난 우기지 않겠어요! 난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난 생각했죠. 로이스가 말했거든요. 로이스는 당신을 많이 오해했던 거예요!" 그가 말했다.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맛난 음식을 먹이라는 말이 항상 옳은 건 아니에요. 적어도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로이스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에요. 아직 젊으니까!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면 당신은 요리를 포기할 수 있을 거요. 그렇지 않나요, 내 사랑?"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이런 남자가 과연 있을까? - P162

자식들은 어머니가 준 인생을 마음껏 누렸으며, 여느 자식들처럼 자라서 이젠 모두가 출가했다. ... 헤이븐 부인은 늘 결혼은 동업이라는 유쾌한 이론의 소유자였다. 물론 육아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역할을, 사랑과 보살핌, 봉사라는 자신의 몫을 헤이븐 씨가 고지서 요금 내는 것만큼이나 충직하고 훌륭하게 해냈다. 하지만 이제는 부모로서 동업은 막을 내렸다. - P2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