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의 씨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
이디스 워튼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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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여름>, <이선 프롬>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이디스 워튼. 공포의 세계가 담긴 그녀의 고딕소설이 국내에 처음 번역되었다. 총 네 편 중 '석류의 씨'는 특히나 여성에 대한 금기와 공포 그리고 불안을 담고 있었다.



요즘처럼 막 기괴하고 자극적인 공포가 아닌, 당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의 억눌린 욕망을 대변한 것이나 다름없었던 공포. 그 속엔 위선적인 미국 상류사회가 적나라게 표현되어 있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토대로 추적해나가는 주인공 여성이 겪는 금기와 혐오 그리고 불안만으로도 은근한 공포감이 몰려왔다. 여성만이 줄 수 있는 은밀한 공포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큰 배경으로는 미국 상류사회이지만 결혼이라는 제도와 감옥에 갇힌 여성의 불안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상대방에게서 느끼는 실망감이나 혐오감보다도 더욱 안타까운 것은 갑자기 드러난 불편한 진실에 놀라지도 않고 그저 서늘함을 느끼며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서 자신의 온전한 모습을 마주한 여성이야말로 진정한 공허함을 품은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잘못된 방법이지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받고자 했던 남자, 사랑 없는 결혼 후 남편의 폭력에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 등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행복한 삶 그 이면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여성들의 삶. 하나의 테마로 다섯 편의 클래식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시즌 1의 주제는 '여성과 공포'였는데, 이 주제가 아니었으면 만나볼 수 없었던 이디스 워튼의 <석류의 씨>. 다음 시즌이 기대된다.


어쩌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녀가 리지에게 동경 어린 관심을 품게 되었는지 모른다. 리지도 처음에는 앤도라가 우울한 미래의 자신의 모습 같아서 피했으나 이제는 앤도라를 감상적인 동정의 대상으로 여겼다. - P30

아직도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는 무서웠다. 남편이 자신에게서 멀어져 뭔가 알 수 없는 속박 속으로 끌려가는 것 같고, 그의 자유와 자신의 자유를 위해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짜내 싸워야 할 것만 같았다. - P178

눈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검고 외롭게 보였다. 잠시 심장이 멎는 듯했고 여기서 돌아갈까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기를 따라오라며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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