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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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는다는 것, 산책을 한다는 것 그리고 산다는 것. 이 책을 읽게 되면 저자의 문장에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이런 순간을 마주한 것에 감사하게 될 만큼. '말들의 흐름' 시리즈의 네 번째 책 <시와 산책>은 스물일곱 개의 짧은 산문이 담겨있다. 놀랍게도 저자의 첫 책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페소아, 윌러스 스티븐즈, 로베르트 발저, 파울 첼란, 세사르 바예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울라브 하우게, 에밀리 디킨슨, 안나 마흐마토바, 라이너 마리아 릴케, 포루그 파로흐자드, 실비아 플라스 그리고 가네코 미스즈까지. 저자가 사랑했던 시인들과 마음에 품고 있으며 밖으로 소리 내었던 시어들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또한 산책을 좋아하는 나로서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저자의 문장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저자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숲'이 떠오른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한 편은 고요하고도 차가운 겨울 숲이 또 한 편은 고개를 들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는 여름 숲처럼 다양한 계절을 지나는 모습의 숲이 연상되기도 했다.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긴 여운을 남기고 싶어 몇 번이고 같은 구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시와 산책>. 저자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난 횟수를 차곡차곡 세어가듯이, 나는 눈을 만난 날들을 센다. 첫눈, 두 번째 눈, 세 번째 눈...... 열한 번째까지 셀 수 있었던 해는 못내 아름다웠다.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색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에 들이고 보내며 일생을 살아야 하는 사람에게도 색이 있을 테니까. 어느 물감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찬연한 색이 있다고 믿는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게 창문은 내 곁에, 네모난 이야기책 같은 것으로 있었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창문이 들려주는 구연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였다. 내게도 진짜 책이 몇 권쯤 있었겠지만, 더 흥미진진한 건 늘 창밖에서 넘어오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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