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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오브 이집트
안드레 애치먼 지음, 정지현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기억이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그 새록새록 한 기억이 나의 마음에 나의 손끝에 머물러 매혹적인 회고록을 남긴 안드레 애치먼. 그는 바로 여름 하면 떠오르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의 작가이다.

<그해, 여름 손님>을 읽은 사람이라면 모두가 다 알 것이다. 그의 문체는 섬세하고 우아하다. 아름답게 그려진 퀴어 소설은 사실 드물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소설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어떤 장르라도 그를 거치면 아름답고 우아해지리라. 그런 그의 회고록인 <아웃 오브 이집트>. 그가 이집트 출생인 건 검색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의 어린 시절 또한 아름답고 참 애틋했다. 그래서 그의 문체가 똑 닮아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인 만큼 다민족 도시인 만큼 가족 그리고 친구와의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속에서 그의 배경묘사는 마치 그곳에 있는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며,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온갖 감정이 온전하게 전달되었다. 사실 저자에게 마냥 좋은 기억만 가득했던 것은 아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핍박과 설움을 받아야 했고, 어려운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담담히 이야기를 전했다.
결국 저자는 이집트를 떠나게 되지만, 그때까지의 기억이 가장 아름다웠고 (무조건적인 아름다움이 아닌 어린 나이에도 모든 걸 겪어내야 했고, 이미 깨우쳐 현실과 마주하며 성장한 아름다움이랄까)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기에 <아웃 오브 이집트> 회고록을 쓴 게 아닐까 싶다.
저자의 인생 한 부분이 깊게 스며든 기분이다. 그의 또 다른 기억이 기다려진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아는 모든 도시와 해변과 여름,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여름을 사랑한 이들, 한때 사랑했고 이제는 사랑하지도 추모하지도 않지만 지금 이 순간 같은 집, 같은 거리, 같은 도시, 같은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전부 떠올렸다. 내일은 가장 먼저 해변에 갈 것이다. - P125
누군가는 곧바로 일어나 구석으로 가서 커튼을 살짝 들춰 밖을 보고 또 누군가는 즉각 불을 껐다. 때 이른 밤이 순식간에 방 안을 뒤덮었다. 나는 창밖에서 스포팅의 모든 불이 하나씩 꺼지면서 점점 어둠으로 들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았다. - P245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주차된 차들의 후드만 이른 아침 햇살에 반짝였다. 그 너머로 모래언덕과 오래된 야자수, 일요일의 고요함에 잠긴 저택들, 반짝거리는 옅은 파란색 바다가 펼쳐졌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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