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에 대해 말하자면 - 김현진 연작소설
김현진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정아에 대해 말하자면>은 연작소설집이다. 짤막한 단편 속에 다양한 여자들이 그려진다. 쫌생이 같은 남친에 가난이 죽도록 싫지만 해결 방법이 없어 답답한 여자, 데이트폭력에 고통 받는 여자, 믿었던 남자로부터 뒤통수 맞은 여자, 장밋빛 미래를 꿈꾸다가 살해 당한 여자.

이렇듯 보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물도 안 나게 화가 나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가장 비참하고 화가 난 것은, 소설에 그려지는 여자들의 삶이 하나도 낯설지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냥, 그냥 내 삶의 어느 일부를 떼어다 놓은 것 같은 소설이었다. 주변에서 한 번쯤은 들어 봤던 그 이야기가 소설 속에 그대로 옮겨져 있었다. 그래서 이 리뷰를 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익숙한 시궁창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러나 리뷰를 쓰고 있는 지금까지도 나는 어떻게 이 책을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성이 느끼는 공포나 좌절이나 슬픔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보세요?
삶의 체험 현장! 한국 여자 편.
무엇을 말해도 속이 시원하지 않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어떤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것 밖에 없다.

1. 만약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는데 과장됐다고 생각한다면, 읽어보시길 바란다. 그건 정말 부담스럽지 않게 다가간 소설이다. 이 책을 읽으면 알게 될 것이다. 그건 정말 순한 맛이었음을...

2. 주변에 약속이 끝나고 헤어질 때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라고 자연스레 말하는 여자가 있거나, 늦은 밤에 거리를 걷는데 누가 뒤에 따라오는 것 같아 무서웠다고 말하는 여자가 있거나, 남자친구가 술만 끊으면 정말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여자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그들이 뭣하러 서로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지, 왜 밤에 골목길 걷는 걸 두려워 하는지, 분명 어딘가 안 좋은데 왜 도움을 구하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여자 이야기에 대한 소설이 아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여자 이야기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하고, 주변인들을 통해 한 번쯤은 들어 본. 그런 이야기다. 아주 흔하다.

뒷표지에 "상처 받은 한국 여자의 이야기, 감당할 수 있겠어요?"라는 카피를 보고 뭘 감당한다는거지? 했는데. 너무 리얼해서 나는 차마 감당을 못 하겠더라.

마지막으로 에필로그를 보고 떠오른 내 생각을 남기며 리뷰를 마치겠다.

웹 사이트를 보며 시간을 죽이다가 본 글이 있다. <지금의 내 나이 때 엄마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1위가 '나 신경 쓰지 말고 엄마 인생 살아', 2위가 '엄마 아빠랑 결혼하지 마', 3위가 '나 낳지마'였다. 그 글을 보고 씁쓸하게도 나 역시 공감했다. 아마 많은 딸들의 마음이 비슷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딸도 있겠지만) 살다보니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연애나 결혼이 필수가 아닌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회적으로 당연해보이던 것이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라면? 그걸 알았다면. 이렇게 생각이 번지자 입맛이 써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완 지음 / 김영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에 다닐 때, 사람이 죽은 뒤 집 청소를 하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여러 이유로 미완 상태로 끝맺었지만.

김영사에서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쓰다만 소설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표현하기가 좀 그렇지만 이유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당시 생소한 그 직업을 조사하는 일이 쉽지 않아 애먹었던 기억도 떠올랐다.

어쨌든 출간 소식을 접하자마자 흥미를 느꼈는데, 운 좋게 서평단이 되어 읽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에필로그에서 작가는 말한다.

"죽음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되묻는 행위, 인간이 죽은 곳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삶과 존재에 관한 면밀한 진술은 오히려 항바이러스가 되어 비록 잠시나마 발열하지만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 있고 굳세게 만드는 데 참고할 만한 기전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에피소드에서 끊임없이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죽은 자의 흔적을 지우며, 자신은 왜 살고 있고 우리는 왜 살고 싶고 죽고 싶어 하는지 자문한다.

물론 답은 나오지 않는다. 길다면 길고 짧은 생을 살아가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답은 많지 않으니.

답은 얻을 수 없어도, 스스로 자문하는 저자를 보며 나 역시 삶과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해볼 수는 있었다. ​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바로 등 뒤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당장 10분 뒤에 나는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그 사실을 잊고 달리다 보면 내 삶의 가치도 잊게 된다. 나는 왜 살고, 무엇을 위해 살며, 어떻게 살고자 했는지.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잊고 있던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에세이를 읽을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읽고 남는 것이 있는가? 인데 이 책은 읽고 남는 게 많았다. 타인의 죽음에서 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참 몹쓸 짓 같기도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것 아닌가. 

읽고 배우는 것이 있는 책은 가치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0년 06월 01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16,800원 → 15,120원(10%할인) / 마일리지 84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20년 06월 01일에 저장



1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모자 문지 스펙트럼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김현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전 소설을 읽는 것"

다들 중요하다고, 읽어야 한다고 하는데. 왜 중요하고 왜 읽어야 할까?

옛날 사람도 현재의 우리처럼 많이 고민하며 살아갔다.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닥친 절망 앞에서 죽음을 택할지 살아갈지.

옛날 사람 역시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섰고, 우리는 여전히 그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고민하며 살아간다


그중에서도 고전이 중요하다고, 살아가며 한 번쯤 읽어봐야 하는 이유.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고민했던 문제는 여전히 우리도 하는 고민이며,

그들이 생각 끝에 낸 나름의 결론을 참고할 수 있으며, 그것이 하나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는 것.

삶에 대한 고민에 어떻게 정답이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구나.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도 있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또, 생각지 않았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해볼 기회를 던져주기도 한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유명하지 않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고전 문학·사상서를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문지 스펙트럼' 두 번째 시리즈가 그것이다.

오늘 내가 읽어볼 책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자>다.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오스트리아 작가로,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는 질병, 혼란, 고독, 파멸, 죽음, 정신착란 등 어둡고 우울한, 인간의 어두운 면을 가감 없이 비춘 주제를 다룬다.


문지 스펙트럼으로 묶여 나온 <모자>에는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목차는 참고를 위해 아래 적어두겠다.

두 명의 교사/모자/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야우레크/프랑스 대사관 문정관/

인스부르크 상인 아들의 범죄/목수/슈틸프스의 미들랜드/비옷/오르틀러에서―고마고이에서 온 소식

그중 몇 편을 꼽아 소개해볼까 한다.


불면증을 겪는 새로 온 교사와 오랜 시간 학교에 다닌 교사의 대화를 통해 진행되는 소설 <두 명의 교사>

- 5장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불면증을 겪던 교사가 죽인 동물이 무엇이었는지, 그는 어떻게 미쳐갔는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과거 산림학자였지 정신착란과 두통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형의 집에 머무는 주인공.

어느 날 주운 모자의 주인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찾을 수 없어 괴로워하는 그의 이야기가 담긴 표제작, <모자>

- 삶의 희망이라곤 한 줌도 남지 않은 인간. 주운 모자 하나에 어쩔 줄 모르는 화자를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논문을 쓰던 화자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극장으로 간다. 근처를 배회하던 그는 시간을 묻는 중년 남자와 함께 걷게 된다.

이윽고 그는 중년 남자가 여자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눈치챈다.

기묘한 동행, 중년은 묻는다. 저 극장에서 상영하는 연극이 희극이오, 비극이오?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

-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는 왜 여성의 복식을 하고 걷던 걸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었다.


■ 독서 후 한 마디

단편집을 읽는 동안 인간의 어두운 면에 몰두하는 기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