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Serendipity
N. 뜻밖의 발견(을 하는 능력)
   운 좋게 발견한 것.

크리스마스가 하루 남은 눈 내리던 어느 겨울 밤.
한 백화점의 장갑코너에서 낯선 남녀의 손이 마주칩니다.
서로의 연인에게 선물할 장갑을 둘이 동.시.에 잡은거죠.

그 순간 그 둘은 손에서 느껴지는 전류뿐아니라 눈에서 역시 레이저가 발사됩니다.  
(회개하라! 커플들이여!, 일어나라! 솔로들이여!)

당연한 순서처럼 남자는 여자에게 전화번호를 묻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 쉽지 않지요.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한 책에 적은 후 책방에 팔아버리고 남자에게 이렇게 말하죠.
"우리가 운명이라면, 이 책을 찾아서 내게 연락하세요."

영화리뷰가 아니니까 이야기는 여기서 접겠습니다만,
서두부터 이런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람피면 안된다.
남의 것을 탐하지 말라?
양보의 미덕을 배워라?
아니죠. 아닙니다.
바로 우연과 인연이랍니다.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 역시 바로 우연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에서 우연과 인연을 위한 배경이 크리스마스 이브였다면,
책 속에서는 세계2차대전이 끝난 직후 어수선하지만 조금은 희망이 싹트던 시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는 여류작가 줄리엣과
5년간 독일군에 의해 침략받았던 채널 아일랜드의 건지섬에 살던 북클럽 회원들 
(시작은 도시 애덤스군으로부터 입니다만..)과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질문!
런던에 살던 여자와 건지섬에 살던 남자가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었을까요?
1. 둘은 친적간이다.
2. 책에 적힌 주소를 보고 편지를 시작한다.
3.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만난다.

정답은? 다들 생각하셨듯이 2번이랍니다.

 
자신의 책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것을 좋아했던 여자는 으례 그러했듯이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남겼고, 책장속에 더 이상 저장해두지 못했던 관계로 팔아버렸던 이 책(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은 전쟁동안 돌고 돌아 건지섬에 들어가게 되죠.
그리고 우연찮은 기회에 그 책을 구했던 남자는 저자의 다른 책을 구할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여자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책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출판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오빠인 시드니를 통해 전쟁 기간동안의 일들을 칼럼으로 써가던 여자는 전쟁이 끝난 후 책으로 펴낸 인기작가입니다.
다음 책을 위해 고민하던 중 건지섬에서 보낸 남자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여자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소재로 새로운 칼럼을 쓰기로 결심하여 독서클럽 회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함께 서편을 왕래하며 지난 5년간 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들을 나누는 1부가 마무리 될쯤, 건지섬에 직접 가기로 결심을 합니다.

겨우 스무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1분 1초가 새로운 얼굴과 아이디어로 넘쳐날만큼 매력적이라는 건지섬에서 펼쳐진 여자의 이야기.
독서 모임의 회원들과 함께 어울리며, 여자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들을 서신으로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콩알같은 웃음을 준 미스 이솔라 프리비의 탐정수첩 - 사후에도 절대 공개 불가!라고 씌여 있었지만 기록은 결코 비밀로 전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독자를 통해 실감케 해 준 유쾌한 탐정수첩까지!!
전쟁이라는 자칫 무겁고 슬픈 내용으로 전개되기가 쉬운 소재를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내는 책입니다.

물론, 한반도 역시 전쟁과 멀지 않은 회한의 땅인지라 전쟁의 상처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해학이라는 것이 제가 느끼는 것과 동일한 무게로 다가가지는 못하겠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살아있다는', 그리고 '행복할 권리'가 있기에
출판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던 저자의 바램과 함께 우리에게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행복할 권리라는 설레임의 선물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책의 또다른 즐거움은 바로 '편지형식의 구성'입니다.
간간히 전하는 전보는 보는 독자 스스로 긴급함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매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메일이나 방명록은 쓰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않거나 수정하고 싶으면 손쉽게 가능했지만,
한번 보내고 나면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던 그때 당시 얼마나 긴급했으면 전보를 보냈을까..싶은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죠..

그나저나 도대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이름의 독서모임은 왜! 어떻게 생기게 되었냐구요?
그건.. 꼭 읽어보셔야 알수 있답니다.  ^^
그러고나면..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꽤 유용한 요령들(달걀을 넣을 때는, 먼저 껍질을 깨야 한다 같은..)을 쓴 윌 시스비의 [여성을 위한 초보 요리 가이드]에 따라 감자껍질파이를 만들고 싶어질지도 모르거든요. 

 
<책 속 한 부분들...>
'제 책이 어쩌다 건지 섬까지 갔을까요?
 아마도 책들은 저마다 일종의 은밀한 귀소본능이 있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독자를 찾아가는 모양이에요.
 그게 사실이라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요.'

'그래서 제가 독서를 좋아하는 거예요. 
 책 속의 작은 것 하나가 관심을 끌고, 그 작은 것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발견한 또 하나의 단편으로 다시 새로운 책을 찾는 거죠.
 실로 기하급수적인 진행이랄까요. 
 여기엔 가시적인 한계도 없고, 순수한 즐거움 외에는 다른 목적도 없어요.'

'나는 서점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좋아요. 
 그들은 실로 특이한 존재들이에요.
 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박봉인 서점에서 일할리가 없고, 제 정신이 박힌 주인이라면 서점을 운영할리가 없죠.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일을 하는 이유는 분명 책과 책 읽는 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일 거예요.'

'나나 소피처럼 뼛속까지 책을 사랑하는 점원들은 거짓말을 못 해요.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죠. 
 눈썹이 올라간다든지 입술이 삐죽거린다든지 하면 별 볼일 없는 책이라는 뜻이에요.
 현명한 손님들은 그런 표정을 보고는 다른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요. 
 점원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 앞으로 손님을 이끌고 가서는 이걸 꼭 읽어야 한다고 우겨요.
 손님이 그 책을 읽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는 그 서점에 오지 않겠죠. 
 하지만 마음에 들면 평생 단골이 되는거에요.'

'그 남자는 우리가 '뻔뻔함'이라 부르고 미국인들은 '진취적 기상'이라 부르는 특성이 넘쳐나는 사람이야.' 
                     - 마컴 V.레이놀즈에 대한 시드니오빠의 평가
 
'그 신사분에 관한 네 질문은 굉장히 미묘하고 굉장히 민감하고 또 굉장히,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가더라. 
 그 남자를 사랑하느냐고?
 무슨 질문이 그래? 
 플루트 합주에 튜바가 끼어든 것 같잖아. 너한테 좀 실망했어.
 꼬치꼬치 캐묻기의 첫째 규칙은 옆에서 치고 들어가는 거야. 
 네가 알렉산더에게 폭 빠진 상태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를 사랑하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대신 그가 좋아하는 동물을 물어봤지.
 네가 보낸 답장으로 나는 그에 대해 알아야 할 건 다 알아냈다고.
 자기가 오리를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밝히는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 것 같니?'

'"저 신발은 혼자예요, 할아버지."
 녀석은 신발을 한동안 더 바라보고는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녀석이 "할아버지, 나는 결코 저렇게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물었지요.
 "저렇게라니?" 
 그러자 아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외로운 사람."

'솔직히 말해서 독일군 점령기가 지속되는 동안 만난 착한 독일군이 한 명밖에 없는 건 아니야. 
 2년 동안 매일 그들을 만난다고생각해보게. 그러다 보면 인사라도 건네게 되는 법이야. 
 그때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았어.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지."

'작년 5월 9일, 건지 섬이 해방되던 날에 대한 인터뷰가 진행되었지.
 아침부터 굉장했던 모양이야. 
 사람들이 세인트피터포트 부두에 줄지어 선 모습을 상상해보렴.
 어마어마한 군중이 아무말 없이 완벽한 침묵 속에서, 항구로 갓 드러온 영국 해군함을 바라보는 광경을.
 이윽고 군함 옆문이 열렸는데, 
 그곳에서 나온 것은 군복 입은 병사들 일군이아니라 남자 한 명이었어.
 줄무늬 바지에 모닝코트를 입고 실크해트를 쓴 채, 한 손엔 접은 우산을 들고
 다른 한 손엔 어제 일자의 <타임스>를 꽉 움켜 쥔 것이
 전형적인 영국 신사의 모습이었지.
 한순간 정적이 흘렀어. 잠시 후 사람들이 그 유머를 이해했고, 곧 함성이 터졌지.
 누군가가 '뉴스다, 뉴스! 런던에서 직접 온 뉴스!"라고 소리치면서 그의 손에서 ,타임스.를 낚아채기도 했대!
 그 병사가 누구건 간에 그 기발한 착상은 훈장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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