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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따뜻한 연두빛 배경에 무언가 우울함이 비치는 보라색 표지.
그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당췌 알 수 없는 요리사의 얼굴.
처음에는 음식의 냄새를 맡고 있는 요리사라 생각을 했었지만 다시 보면 무언가 우울한 분위기임을 감지해낼 수 있으리라.
명랑한 배경과 우울함.
이 무슨 아이러니한 표지란 말인가!!!
첫 사랑은 추억으로 간직하는게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욱 가슴아프고 아련한 기억으로 남는것이 첫사랑이라고 했다.
누구나가 첫사랑은 있겠지만,
처음 한 사랑이 첫사랑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들 말하지 않아도 알거라 생각한다.
한 여자에게 첫사랑이 생겼다.
여자들은 항상 그 남자에게 자신이 마지막 사랑이길 원하지만
남자들은 항상 그 여자에게 자신이 첫 사랑이길 원한다.
어느 한 군데 건성으로 만든 곳이 없는 완벽한 여자와는 달리
요리사인 여자에 대한 외모적 언급은 책 마지막까지 어느 한군데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녀 역시 충분히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한 사람이었는데...
여자로써 미적인 부분이 아닌 요리로 그 여자의 모든것을 내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의 청춘과 사랑이 담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한 편의 길고 긴 시를 읽는 듯 했다.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한때는 그녀의 사람이었던 그 남자.
그리고 이제는 그 남자의 사랑이라는 여자를 위해 요리를 해야되는 여자.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요리사인 여자에게 들렸던 건 '따닥따닥 떨어지는 빗소리'였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벅차 한참을 울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겐 봄이 다시 생의 활력을 찾게 되는 계절일지 몰라도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겐 아직도 겨우 이겨낸 지난 겨울의 여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한 발을 거기에 걸쳐두고 있는 계절이기도 하다." 라고 여자가 말했던 것 처럼
사랑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겐 터질듯한 행복과 가끔은 따끔한 고통이지만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겐 평생 헤어나올 수 없는 알콜중독같은 것인가보다.
여자와 남자.그리고 또 다른 여자.
요리사 여자의 삼촌과 개, 주방장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해
'길들여지고', '사랑하고' '버려짐'에 대한 단상을 발견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여자가 다시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하던 1월에서 6월까지
그리고 마지막 만남이 이루어진 7월.
그녀의 놀라운 반전은 그 부분만을 반복해서 몇번이고 되새기며 읽어야 했을만큼 쉽사리 믿기 무서웠지만
그것이 그녀가 최대한 할 수 있었던 그녀만의 마무리였으리라
작가는 이 책을 다 읽고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요리사인 여자가 그녀를 떠나는 남자에게 했던 바로 그 말처럼.
"뭐, 먹고 싶은거 없어?"
*마음에 오래 남았던 구절*
"식욕을 가진 사람은 살아갈 의욕을 가진 자다.
살아갈 의욕을 잃은 사람이 가장 먼저 잃는 감각이 바로 미각인 것처럼."
"잊지 마, 네 두 손으로 할 수 있는건 요리만이 아니라는걸.
그 두 손으로, 너는 넘어진 자리를 짚고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