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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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 부박한 시절에 진중한 이름들이고, 성찰없는 시대에 아픔을 주는 이름들이다. 지식의 폭넓음, 실천 속에 체질화된, 그래서 현실과 좀처럼 타협되지 않는 건강한 상식들, 큰목소리로 윽박지르기 보다는 공손한 은유와 친절한 페이소스로 시대의 창을 열심히 닦는 이름들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책 한 권을 통해 날것으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특히 각자의 분야가 다르고, 이야기 하는 방식이 다르고, 찍는 방점의 위치는 다소 다르지만 이들이 공통으로 내는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은 결코 불협화음이 되지 않는다.

박노자는 한국인의 ‘하얀 가면’을 이야기 하고, 홍세화는 자신이 지접 몸담고 있는 <한겨레>를 이야기 하며 생존수단과 존재이유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 한다. 그 긴장을 좀 더 확대하면 내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는 농협(협동조합)의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할 수 있을듯하다. 사르트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만 “생존 수단이 존재 이유를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홍세화의 말은 이 쪽 저 쪽으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한겨레>의 소속원으로서 절절한 자기 고백임에 틀림없을 것이고 그래서 그 울림이 더욱 크다.

‘노동운동의 목표는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게 아니’며 ‘상품화하는 가치관을 뒤집는게 궁극적인 목표여야’한다는 김규항의 확인은 몰락해가는 우리 노동운동의 원인과 처방을 동시에 지적하는 것이며, 언제나 역사의 숨겨진 곳간을 헤집어 사실을 가지고 현실을 반추하게 하는 한홍구는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낸 유창순의 <사상계>좌담을 들어 파병을 하여 얻게되는 국익이라는 것이 얼마나 ‘민망’한 것인가를 지적하면서 베트남 파병과 이라크 파병 사이에 놓인 시간의 간격만큼 벌어진 사람들의 경제적 환상을 꼬집어 냈다.

또한 처벌없는 화해가 얼마나 맹랑한 역사 망각인지를 체험을 통해 증언하는 대목은 광주항쟁이 계승이 아니라 소비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단초를 내게 주었다.

가장 대중적이면서 가장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많이 맞는 지식인이 진중권이라면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도 진중권은 익명의 이름 뒤로 숨은 가벼운 네티즌과 오도된 국가의식으로 똘똘뭉친(그러면서도 그것을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는)대중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가 본 대중(신세대)은 ‘이미지의 세대이며 이미지는 비선형적인 시간의식을 의미하고, 이 비선형적인 시간의식이 선형적인 시간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역사의식의 결여를’ 지닌 세대인 것이다.

새사연을 통한 새로운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손석춘과 한미 FTA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실천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심상정의 목소리도 차분하지만 뜨겁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렇게 이들의 강직함만 담긴게 아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인터뷰이 7인이 갖는 솔직한 피로감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지칠것 같지 않던 이들, 혹은 지쳐서는 안 될 이들.

인터뷰이들이 지쳤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위험이며, 이들이 지쳐 더 이상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완전히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미 아닐까 하는 우려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따라왔다.

부디, 건강하시라.

몇 남지 않은 ‘지식인’들이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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