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16.07] 자기 앞의 생
- 에밀 아자르 -

프랑스 빈민가에 사는 아랍 소년 모모가 겪은 성장통. 단순히 한 소년의 성장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슴아프고 쓰린 이야기이다.
모모의 보호자인 로자 아줌마는 유태인으로 젊은 시절에는 폴란드에도 살았으며 히틀러 치하의 독일제국에서 고통받았다. 프랑스에 와서는 창녀로 살다, 나이가 들어서는 창녀들이 낳은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일을 한다. 모모에게 그녀는 친구이자 어머니이다. 나이들고 점점 추해지는 그녀,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금발의 백인 여성 나딘에게 마음을 뺏긴 모모는 나딘에게 잘 보이고 싶고 사랑받고 싶지만 왜인지 그녀와 함께있는 행복한 시간에도 자꾸 눈물이 난다.
모모의 시점에서 서술된 이 이야기는, 사랑하지만 추한것들과 아름답고 동경하는 것들 사이에서 방황하며 눈물 흘리면서도 애써 덤덤하려 하는,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을 마감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소년의 아픈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모모에게 친구이자 스승인 양탄자를 파는 하밀 할아버지는, 이제는 지혜도 지식도 가물가물한 장님이 되었다.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는 이 아랍 노인의 손에는 이제는 읽을 수도 없는 '레 미제라블'이 언제나 들려있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가 살아있고,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매번 할아버지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러준다. 불쌍한 사람들, 정신병에 걸려 아내를 죽이고도 십수년만에 아들을 찾겠다고 찾아온 모모의 아버지. 남장 여자인 창녀로 살아가는 롤라 아줌마. 그 밖에도 이 아파트에 사는 모든 가난한 이웃들...
늙어가는 것, 추해져가는 것, 끝나가는 자기 앞의 생을 결정할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서글픈 생을 끝낼 권리마저 자신이 아니라 법과 의학에 있는 것인가.
모모는 나딘의 집에 가서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길을 하며 무던히 애쓰고도, 홀로 쓸쓸히 죽어갈 로자 아줌마를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와, 마지막에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로자 아줌마가 생을 그녀가 원하는 방식대로 마감할 수 있도록 지켜주었다. 죽어 육신이 썩어들어갈 때까지도 그녀 옆을 지키며, 가진돈을 털어서 몇번이나 새로 나온 향수를 뿌려준 것은 아줌마의 늙고 병들고, 이제는 역한 냄새를 풍기며 썩어가는 육체를 젊고 아름다운 향기로 바꿔주고 싶었던 것일까? 자연의 법칙을 거부하고 싶은 마음은 소년을 엽기적일 정도로 서글픈 상황에 처하게 했지만 이내 자신이 로자 아줌마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것도 태어남이라는 자연의 법칙 덕분이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서로를 사랑했고,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모모는 이제 갑자기 나이를 먹었고,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의 손에 들려있던 책 제목처럼 모든 불쌍한 사람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며, 자기 앞에 놓인 생을 살아 갈 것이다.

2016.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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