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반자전적 성장소설. 흔히 말하는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우선 내가 번역서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중간중간 집중이 끊기는 부분이 있었다. 전체를 관통하는 '편견을 벗어난 보편적 정의'에 관해 깊게 감명 받기에는 집중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또한 이 책이 사실상 작가의 직접적 경험(1930년대 미국 남부에서 흑인을 변호한 아버지를 지켜본 유년 시절)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도, 인종 간의 갈등 문제를 거의 겪어보지 못한 나로써는 미국의 독자들 만큼의 공감을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비단 흑백의 인종갈등 뿐 아니라, 내성적 성격과 어린날의 실수로 평생을 편견 속에 갇혀 지내는 부 래들리, 백인이라는 것 말고는 내세울게 없고 그에 따른 열등감과 사회적 불만을 더 약한 계층에 쏟아내는 유얼 등의 인물을 통해 보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차별과 인식의 문제에 대해 시사하는 면이 있다. 주인공 스카웃의 시각은 책의 시작과 끝이 매우 달라져있다. 스카웃이 6살에서 9살로 실제 나이를 먹었을 뿐 아니라, 흑인 톰 로빈슨의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그 만큼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막연한 공포의 존재였던 부 래들리 아저씨의 집에서 메이콤 마을을 바라보며, 래들리의 시각에서 그 동안 있었던 일들을 그려보는 마지막 장면은 작가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 그대로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가 아들인 젬을 유얼의 살해범으로 의심하는 부분은 한국적 정서와는 너무 차이가 크고, 잘은 모르지만 미국이라 하여도 일반적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신념을 향해서라면 다수가 보내는 불편한 시각과 위협에 당당히 맞서고, 아들이 크게 다친 감정적 상황에서 마저 합리적 추론의 끈 놓지 않으려 하는 애티커는 그야말로 절대적 합리성과 굳건한 신념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며, 미국이 존경하는 가치이자 저자가 보여주고자 하는 이상적 인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