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스빌 이야기 -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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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희망진행형인 GM폐쇄도시 [제인스빌 이야기]

 


벌써 작년 일이네요. 20183월부터 6월까지 군산의 한 기업체에 매주 출장을 다니며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회사는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여서 군산의 한국GM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두어 번 식사를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기업체 임원은, 여기 거리를 보라고, 식당들을 보라고 손으로 이곳저곳을 가리켰습니다. 수십 년 일했던 식당들이 계속 문을 닫고 있다고 했습니다. “임대붙은 가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였습니다. 그는 이런 곳이 사방에 수두룩하다며 혀를 찼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휑한 새만금만큼이나 도로도, 사람도, 모두 연기처럼 조금씩 그러나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한국GM20184월 한국에 있는 군산공장을 폐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수천 명의 직원과 1, 2차 하청업체들과 그 모든 가족들의 숫자를 합친다면 직접 연관된 사람들 숫자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업이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 모든 사람들에게 맛난 음식을 제공하던 수많은 식당들이며, 마트며, 편의점이며, 다양한 가게들이 모두 동반자살하듯 함께 문을 닫을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들만의 비극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큰 공동체의 재앙이었습니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에 미국에서 일어난 GM의 자동차 공장 폐쇄에 따른 제인스빌 도시와 그곳에서 살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기자의 끈질긴 추적은 제인스빌 도시에서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GM 공장의 폐쇄로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소설처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루이틀 작성한 게 아니라, 일이년 작성한 게 아니라, 7년 동안 도시를 관찰하고, 가족을 관찰하고, 사람을 관찰하며 쓴 글입니다. 사람들이 소설처럼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자 출신인 저자지만 소설책을 무지하게 읽고 글을 써서 책을 읽는 우리들은 참 편하게 제인스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한국의 군산 공장이 문을 닫기 10년 전, 2008년 작은 소도시인 제인스빌은 9천 명의 노동자가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는 재앙에 직면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기침체에도 GM에 속해있다는 사실만으로 흔들리지 않고 평화로움을 이어가던 작은 도시, 버락 오바마도 방문하여 자동차 산업의 미래와 함께 가족의 평화를 약속했던 그 작은 도시. 그러나 제인스빌은 거대한 자본주의의 토네이도 앞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이 책은 퓰리처상을 받았던 에이미 골드스타인 기자가 7년 동안 심층 취재를 하며, 제인스빌이라는 작은 소도시가 그 충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버티고, 어떻게 무너지고, 어떻게 다시 일어서려는 노력을 하는지, 그들의 가족들이 자신들이 더 이상 쌀을 구입할 수 없고, 세제를 구입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을 눈물을 훔치며 인정하는지, 세밀하고 정교하게 글로 다듬은 책입니다.

 

그들이 받아온 최상의 급여와 휴가 수당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질시받는 대상이었다. 그런 갈등이 있었지만 GM은 지역에 반드시 있어야 할 사업장으로 받아들여졌다. GM 공장이 없다면 다른 일자리들이 존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GM 공장이 문을 닫자 도시 전역에서 일자리들이 빠르게 증발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GM과 리어가 공장 가동을 중단할 때 로지스틱 서비스 주식회사에서 일하던 159명도 일자리를 잃었다.”

 

우리나라도 그랬죠. 대기업 노동자들에게는 황제라는 별칭도 붙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음으로 인해 도시에 생기가 생기고 다른 일자리가 생기고 함께 살아가게 된 것도 맞습니다. 그러했기에, 그들이 사라지기 시작하자 고구마 줄기가 딸려나오듯 연관된 모든 직종과 사람들이 주루룩 끌려나와 순식간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실직의 아픔, 실직의 스트레스가 어떠한지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한 심리전문가의 진단에 의하면, 실직의 스트레스는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2007년 하반기부터 2년 동안 제인스빌에서 파산신청을 한 주민 수는 거의 두 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주택담보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내놓은 곳이 늘어났습니다. 저 역시 겪었던 일이기에 실직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직장이라는 벽이 얼마나 튼튼한 울타리였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신빈곤층이라는 이름으로 곧바로 중산층에서 파산자로, 빈곤층으로 전락했습니다. 신용카드 한도는 초과했으며, 살던 집에서 나와 친척집에 얹혀 살거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야 했습니다. 그들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새로운 궁핍함과 불안함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학교들은 사상 처음으로 교사들을 해고했습니다. 그리고 가장의 추락한 자존감과 죄의식 그리고 가족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으로 전락했다는 심리적 패배감은 무엇으로도 다시 끌어올리기가 어려웠습니다.

 

멧은 죄책감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다시 혼자서 집안일과 아이들 양육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멧은 가족을 위해 요리도 못 하고,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거나 딸들의 숙제를 도와줄 수도 없다. 병원 진료 시간에 맞춰 가족들을 데려갈 수도 없다. 그는 자신이 가족에게 쓸모없는 존재라고 느낀다.” (257)

 

제인스빌은 우리나라 군산시보다 훨씬 도시 공동체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따뜻한 도시였습니다. 옛날 우리나라가 옆집 숟가락 개수도 알고 지냈다고 말하던 것처럼, 제인스빌도 얼추 비슷하게 그런 경지의 소도시였습니다.

 

이 책은 슬픔을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무너져가는 거대한 공동체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힘을 모으는 개미같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7년이 지나도 그 상흔은 여전히 불타버린 잿더미 속 빨간 불씨처럼 남아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직업훈련학교는 재빨리 정부지원금을 최대한 받아내고 실직자들에게 재취업을 위한 실무 교육강좌를 개설했습니다. GM 실직자들은 전력공사에 취직하기 위해 전신주 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2년의 학위 과정을 다 마치고 실제 취직한 사람은 두어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을 덮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거대한 두려움입니다.

 

졸업을 사흘 앞둔 날, 마지막 시험을 막 끝내고 주차장에 세워둔 트럭을 향해 걸어가는 마이크에게 거대한 의문 하나가 밀려온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직업학교에서 교정학과를 상위 성적으로 자랑스럽게 이수하고 제인스빌의 성공적인 모델로 신문에 소개된 GM 실직자는, 그러나 안타깝게도 몇 년 뒤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실직자 자녀들은 샴푸가 없어 머리를 감지 못합니다. 유능한 심리교사 에이미는 학생들을 살펴 눈치껏 벽장으로 데려갔습니다. 벽장문을 열면 서로 돕기 위해 누군가 갖다놓은 많은 생필품들이 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마음껏 가져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런 환경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샴푸를 아야 하는 삶을 살게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추락한 자기 삶을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슬프고 분하고 수치스럽고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이 알까봐 두렵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곧 대학에 가야하는데, 대학 학비를 부모에게 부담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파커고등학교에 부임한 이래 그녀는 벽장의 도움을 받는 아이들이 열두어 명이던 첫 해부터 200명에 육박하는 지금까지 데리를 도와 벽장 일을 함께해 왔다. 최근까지도 매년 20여 명의 아이들을 벽장으로 인도했다. 이런 생필품을 받으면 아이들은 자기 삶을 완전히 다른 면에서 이해하게 된다. 바로 궁핍함이다. 한 여자아이는 자기 가족은 도움 같은 건 필요 없다고 화를 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부모가 이혼한 남자아이 역시 처음에는 도움을 거부했다.”

 

군산 지역에 대한 신문기사를 검색해봅니다. 세금도 감면해준다는 기사도 있고, 가장 최근에는 군산지역 중소자동차 제조업 활성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도 합니다. 폐쇄된 군산공장을 자동차 부품업체 콘소시엄에서 인수한다는 글도 있습니다. 제인스빌과 마찬가지로 군산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우리도 희망을 잃지 않는 작은 도시였으면 좋겠다고. 작년 이후 다시 군산을 가보지 않아 그곳 분위기가 어떤지 이제는 잘 모릅니다. 따스한 날, 출장가면 꼭 들렀던 한가한 돼지국밥집이 떠오릅니다.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는데, 고기를 산처럼 넣어주던 그 식당. 그 식당은 아직 여전히 문을 열고 있을까요?

 

이 책은 제인스빌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부러웠습니다. 한 기자가 생업을 포기하고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해 준 후원자들. 그래서 제인스빌은 여전히 아름다운 공동체, 희망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 군산도 그러했으면 합니다. 그냥 무너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너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입니다.

 

나에게, 너에게, 우리에게 말해봅니다. 우리, 포기하지 맙시다. 다시 일어섭시다.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당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인스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군산시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가족, 우리 형제 자매의 이야기니까요.

 

 

"장미 한 송이가 정원이 될 수 있듯,

한 명의 친구는 세계의 전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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