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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yo - 안 괜찮은데 괜찮은 척하며 사는 이야기 It's Okay yo!
버내노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18년 9월
평점 :
보통씨의 짜-ㄴ한 일상 분투기.
사실 안 괜찮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보통씨라고 표현을 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스스로는 유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으로 보더라도 보통이라는 기준은 넘어선다. 피어싱과 문신을 서너 개 붙이고 있는 여자라니,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있노라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녀의 정체성에 “보통씨”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생각과 삶이 바로 내 생각과 내 행동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생각과 내 행동은 어쩌면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행동이다.
우리는 곧 특별한 사람이 아닌 보통 사람들, 남자 사람이거나 여자 사람인, 대부분 철저한 “을”의 정체성으로 험난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살아가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주인공인 특이한 책이다. 그러니까 각 에피소드의 모든 주인공은 작가 자신인 경우가 95%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어머니나 애인, 친구 들로 채워진다. 철저하게 자기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엮어낸다.
지나치게 살아있는 날 것이어서 키득키득 웃거나 울거나 한다.
이 책은 KT올레마켓이란 곳에서 웹툰으로 5년 이상 연재한 버내노의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이렇게 촌스러운 이름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KT올레마켓은 2016년에 케이툰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케이툰을 검색해 들어가보니 온갖 웹툰, 만화, 웹소설, 소설 들이 잘 차려진 한정식처럼, 아니 분식집처럼 좌악 펼쳐진다. 이곳에서 버내노는 자신만의 캐릭터로 5년 동안 장수하며 자신의 삶을 해학과 풍자로 그려내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이 책은 웹툰을 인쇄한 책이다. 웹툰과 만화가 서로 다른 장르로 구분되어 있는 걸 보니 이 책을 만화책이라 부르기는 조금 모호한 면이 있다. 그녀의 블로그도 검색이 되길래 들어가 보았다. 총 180개의 글이 있는데 2018년 1월 이후에 글이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아마 많이 바쁜가 보다.
그림에서 보듯이 괜찮아yo 캐릭터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솔직히 말하면, 이거 초등학생이 그린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처음에는 웹툰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 하여 대학생이 갓 된 둘째 딸에게 책을 건네주었다. 함 읽어봐. 그랬는데 좀 유치하다면서 그닥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럼 아빠가 읽을 게. 하고 다시 건네받았다.
사실 이런저런 일이 겹쳐 머리가 많이 무거웠고 숨 돌릴 틈 없이 옥죄는 업무 스트레스가 턱 밑에까지 차올라 있어 긴장과 불안은 최고조에 달해 있던 상태였다. 전날인 토요일도 아침부터 일터에 나가 밤 아홉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으니 그 엉망진창인 기분과 체력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심리상태가 작용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머리도 띵한데 조금 보며 머리를 식혀야 겠다, 생각을 하고 한 장 두 장 넘기며 읽기 시작했는데, 손이 가요 손이 가, 하는 광고음악처럼, 옆에 무심코 놓아 둔 과자처럼 손이 계속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급기야는 오늘 이걸 다 읽어야겠다, 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고, 혼자 주인공 버내노의 보통 일상을 함께 웃으며, 마음 아파하며, 고개 끄덕이며 길게 길게 동행하고 말았다.
월급을 꼬박 받는 직장인에서 프리랜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고 나오는 장면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인에게서 통쾌한 대리 카타르시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 과정의 심리적 묘사가 탁월했고 물론 그 이후의 비참하거나 힘들거나 아픈 삶이 주는 실질적인 묘사 역시 또 다른 위안을 준다. 그것은 직장 안이거나 직장 밖이거나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과, 그런 시간과 삶이 하루하루 모여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보통씨의 일상이기에 놀라운 일도, 드라마 같은 일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고백한 세 살 연하 남친의 이야기는 따뜻하게 드라마틱해서 눈물이 찔끔했고,
연재라는 일정의 압박이 주는 무리로 인해 갑상선 암을 치료받는 이야기도 짠해서 눈물이 찔끔났다. 안구건조증인데, 완전히 말라버리진 않았나 보다.
타인의 삶을 훔쳐보는 책이지만, 내 삶을 훔쳐보는 것 같았고, 그래서 우리는 하나가 된 것 같았다. 묘한 치유가 일어났다.
웹툰 하나 보고 치유라니.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모든 이야기는 치유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너와 나만이 아는 비밀이다.
이 책이 그랬다.
사실 안 괜찮지만,
괜찮다고 말하며 사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월요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을 투명하게 비추어준 버내노에게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