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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의 경제학 - 정보 비만과 관심 결핍의 시대를 사는 새로운 관점
토머스 데이븐포트.존 벡 지음, 김병조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2006년에 발간된 경제경영 트렌드서 중에서 <롱테일 경제학>과 함께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두 책 모두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대변되는 정보 폭증과 디지털 혁명으로 요약되는 오늘날 경제사회를 바라보는 긴요한 통찰을 남긴다. <롱테일의 경제학>은 잘 알려져 있으므로, <관심의 경제학>에 대해 얘기해보자.
심리학자 먼셀은 "관심(attention) 그 자체에 대해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다. 사려 깊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관심의 본질과 조건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라고 말했고, 윌리엄 제임스는 "관심이 무엇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관심의 중요성을 잊곤 한다. 듣고 나면 자명한 사실이기에.
그런데 관심을 대인관계라든가 자기계발의 측면(예컨대 비슷한 시기 발간된 <관심>과 <뜨거운 관심>에서 보듯)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사회질서의 중요한 희소가치, 그리고 기업 경영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체로 연결지어 바라보는 것이라면, 그건 다른 문제가 된다. 저자들에 의하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허버트 사이먼은 일찍이 "정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는 분명하다. 바로 정보 수용자의 관심이다. 따라서 정보가 넘쳐나면 관심은 부족하게 된다"고 통찰했고, 미첼 웨이드는 인터넷의 무한한 잠재력을 제약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의 관심이라고 말했으며, 톰 포르탄트와 론 타로는 10년 전 <와이어드(Wired)>에 기고한 글에서 정보경제 시대에 가장 부족한 자원은 관심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골드하버는 이 책의 원제(The Attention Economy)에 영감을 주었고 인터넷이야말로 관심에 관한 훌륭한 시장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었다.
스스로 밝히듯, 저자들은 관심이란 주제에 관해 처음으로 주목하거나 최초로 책을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들은 감히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이 관심의 경영학적 의미를 상세히 연구한 최초의 책이라고 믿는다." 정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생각엔 그렇다. '(관심의 경영학적 의미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서적)'이란 조건을 단다면 주저 없이 그렇다고 인정할 수 있다.
공동저자인 토머스 데이븐포트는 고(故) 피터 드러커, 톰 프리드먼과 함께 3대 경영전략가로 불린 세계적인 컨설턴트이자 학자이고, 존 벡 역시 높은 명성을 지닌 컨설턴트이자 학자이다. 저자들이 단순히 학자가 아니라 정상(급)의 컨설턴트라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책의 경우 '관심')을 캐치해내고, 이를 화두 수준이 아니라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하나의 전면화된 성과물(논문을 넘어서 '책')로 빚어내며, '학자들만의 리그'가 아니라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는 글을 써내고,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사례들을 예로 들면서 풍부한 근거를 마련해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 이후(원서는 여러 해 전에 발간되었다), 학계에 '관심'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고 관심경제 혹은 주목경제란 이름으로 지금도 주요한 경제경영 화두로 학자들 사이에 논의되고 있다. 미국에서 출간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음은 물론, 아마존닷컴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 '올해의 도서'로 손꼽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그리 난해하지도 않다. 이 책은 대학과 연구소가 아니라 기업 현장의 독자들에게 눈 높이를 잘 맞춘 책이라는 판단이 든다. 이는 북 디자인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이 책은 전형적인 단행본 레이아웃에서 탈피하여 매거진 스타일의 레이아웃으로 꾸며져 있다. 쭉 흘러나가는 본문 텍스트 사이사이에 핵심적인 내용을 한두 문장으로 정리해주는 '○○의 법칙'이 있고, 딱히 어느 구절에 관한 주석은 아니지만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를 발췌한 글이 좌우 박스에 들어 있으며, 촌철살인에 가까운 짧은 경구 혹은 잠언 역시 좌우 빈 공간에 큰따옴표(" ")로 쳐져 삽입되어 있다. 요소가 많아서 다소 산만해 보일 수 있다는 단점은 인터넷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선형적 가지치기로 풍부한 생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전의 양면이다.
저자들이 얼마나 감각적이고 대중적인가는 본문의 시작을 롭 리핀코트라는 실제 인물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그의 사례는 오늘날 관심이 얼마나 중요하고 희소한 가치인지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이 책을 펼치자마자 몰입하게 하는 훌륭한 장치이다.(개인적으로는, 첫 구절이 팔할을 좌우하는 멋진 신문 칼럼의 들머리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외에도 GE, GM, 시어스, 소니, 시스코, 아마존닷컴부터 삼성(!)까지 여러 기업의 사례들이 풍부하게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사례가 흥미로웠다. 관심을 얻으려는 경쟁이 가열됨에 따라 관심 획득을 위한 과도한 기술 사용을 금지시키는 조치가 내려지기도 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사장인 스콧 맥닐리는 사내에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고, 또 어떤 사장들은 사내용 문서를 컬러 프린트로 인쇄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유는 관심을 얻기 위해 쓸데없이 많은 돈과 기교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서다. 직장인이라면, 얼마나 많은 직장인들이(물론 자신을 포함해서!) 파워포인트와 워드 문서를 화려하고 컬러풀하게 꾸미기 위해 허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지 잘 알 것이다.
비서에 대한 저자들의 견해 또한 신선할 듯하다. 흔히 비서를 사양직종으로(심하게는 이제 쓸모 없다고) 여기는데, 저자들은 비서가 수많은 정보들(그 가운데 긴요하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을 필터링해서 1분 1초가 중요한 경영진의 관심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비서가 간과해선 안될 존재임을 피력한다. 경영자든, 말단 사원이든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직책에 맞게 관심을 집중해서 일할 수 있으려면, 관심 집중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걸러주고 대신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며 그렇게 하는 게 비용절감과 효율성 면에서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인간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라는 관점을 견지한 4장 '아메바에서 유인원까지: 관심의 정신생물학' 내용도 합리적 모델에 대한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만하다. 20세기 초반 포드 자동차공장의 사례(외국인 노동자도 금세 익힐 수 있는 간단하고 반복적인 작업과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물질적 보상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책 2년도 되기 전에 공장을 그만두었다), 인간의 관심과 행위의 우선순위는 1차적으로 본능적인 면에 좌우되며(여전히!) 특히 생존에 관련된 사항은 무엇보다 우선시된다는 주장(생명과 직결된 사건이나 상황은 최우선시되며, 살인이나 끔찍한 교통사고에 우리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은 공감 여부를 떠나 곱씹어 보아야 할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얘기가 너무 길어졌으니, 이쯤에서 정리하자. 이 책은 지금의 경제사회를 읽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관심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책이며, 원서가 나온 지 여러 해 지났기에 개별 사례의 시의성은 간혹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큰 맥락에서 (정보 비만과 관심 결핍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후로도 오랫동안 시의성과 가치를 지닐 책이다. 경제사회 트렌드와 새 경영기법에 주목하는 이라면, 이 책은 읽어두어야 할 가치 있는 책이다. 어떤 의미에서, 아마존닷컴 '올해의 도서'에 선정된 책이니, 국내 도서전문가가 추천한 '이 달의 종합 우수도서'니 하는 훈장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더 널리 알려지고 읽혀야 마땅한 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