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혼 - 기억 없는 시간
감성현 지음 / 네오북스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수혼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스릴러 판타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수혼이란 단어 자체가 감성현 작가 스스로 새롭게 만들어 낸 단어이다. 수혼은 영혼을 나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책에는 주인공인 연우를 비롯해 여러 명의 수혼인이 등장하는데, 수혼인들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는 등 자신이 원할 때마다 몸을 갈아입을 수 있는 존재들이다. 다른 누군가의 모습을 마음대로 훔칠 수 있는 이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의 몸을 훔쳐 자신의 부정적인 욕망을 채우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은 수혼인에 대해 알 수 없지만, 수혼인들을 알아보고 이들을 제거하는 자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바로 살해사이다. 살해사들은 몸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는 수혼인들을 살해하는 영적인 존재들이다. ‘수혼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주인공인 연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연우의 주변인물과 연우에게 다가오는 살해사 무레르, 연우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는 수혼인들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수혼의 소재나 내용 자체는 스릴러와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수혼이 제시하는 문제의식은 독자들에게 계속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과연 다른 사람의 모습을 훔칠 수 있는 사람이 선하게 살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의 모습을 훔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내 진짜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할로우맨에서도 주인공이 투명인간이 된 뒤, 도덕적으로 타락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수혼과 투명인간 모두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혼은 더 나아가 다른 이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울 수 있다. ‘수혼에 등장하는 수혼인들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절도나 강간, 폭행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이의 몸을 함부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졌다. 책에서는 수혼인들이 증가하면서 생기는 일들을 아주 살짝 보여주기만 하고 나머지는 모두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로 채워진다. 그러나 수혼인들이 증가하면 결국 이 등장인물 각자의 이야기가 결국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책의 마지막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아닌 내가 저질렀던 일들을 정신을 차린 뒤 다시 마주하게 될 때의 기분은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으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수혼이란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책에서 수혼이 야기했던 선과 악, 도덕적 경계의 붕괴는 어떤 방법으로든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무더운 여름밤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지만 단순히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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