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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 죽음에 이르는 가정폭력을 어떻게 예견하고 막을 것인가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황성원 옮김, 정희진 해제 / 시공사 / 2021년 3월
평점 :
일시품절

집은 어떻게 여자들에게 위험한 장소가 되었나?
'가정폭력'
어떤 경우에서든 '폭력'은 인정할 수 없지만 그 앞에 붙은 '가정'이란 단어가 폭력의 강함을 무력화시킨다. 그리고 왜인지 '끼어들 수 없는' 상황으로 포장된다.
그렇게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이 많은 여성들이 친밀한 반려자에 의해 희생된다.
이 책은 미국의 가정폭력 메커니즘을 추적한 르포르타주로 가정폭력의 현실과 살인에 대한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매달 50명의 여성이 반려자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는다.
남편이 쏜 총을 맞고 죽은 미셸도 그런 사례다.
10대에 혼전 임신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 나가는 그런 아이들도 아니었고, 성인이 되기 전에 이미 두 아이의 엄마였지만 유모차를 밀며 고등학교를 마쳤고, 아이들을 위해 버텼다.
미셸을 총으로 쏜 남편은 평소 말이 별로 없는, 그러나 여러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했다. 시도하고 또 시도했지만, 문제는 떠나느냐 남느냐가 아니다. 사느냐 죽느냐다. 그리고 이런 맥락을 간파하는 훈련을 충분히 받은 모든 사람이 보기에 그녀의 떠나지 않음은 않음이라기보다는 자유를 향해 조심조심 걷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p.127
빈틈이 많은 시스템도 가해자들이 활보하도록 돕는다. 이 부분을 보면서 '조두순' 사건이 떠오르는데 가해자는 보란 듯이 시스템을 조롱하고 피해자를 괴롭히고, 시스템 안에서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피해자는 무력함과 절망, 공포 속에 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가혹했고 화가 났다.
2부에는 가해자의 이야기도 담겨 있는데, 그들을 동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도 또 다른 피해자였다.
그렇게 피해자가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정폭력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회와 시스템, 그리고 관심과 배려가 함께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여자는 왜 남자랑 헤어지지 않은 거야?" 라는 질문은 마치 "그는 왜 교도소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거야?" 와 같다는 글을 읽으며,'정말 막을 수 있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총기가 허용되지 않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드는 한편 지금도 가정에서 자식들을 위해, 무력화된 자신 때문에 괴롭힘과 폭행, 위협 스토킹 등의 폭력을 견디고, 버티고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나가야 할까?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지만 친밀한 반려자의 테러와 가정폭력 살인 사건의 증가 양상은 어느 나라건 동일하다. 공격적인 행동, 젠더화된 역할 구분, 강압, 피해자 행동 이면의 심리 상태,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하게는 위험 지표들. 이런 것들이 전 세계 사례에서 등장하고 또 등장한다. 나는 이 책이 포괄적이면서도 길게 이어지는 국제적인 논의의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