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폭력 - 고대 그리스부터 n번방까지 타락한 감각의 역사
유서연 지음 / 동녘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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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더 이상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전지전능한 자, 카메라 앞의 여성을 비롯한 타자들을 착취하고 관음증적 눈으로 훑으며 지배하는 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여성 광인은 결국 관조적이고 탈신체화된 지성적 시각에서 비롯되는 관음증적 시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들, 특히 촉각과 통감각적으로 연결된 새로운 시각을 통해  카메라를 다시 들어야 한다." <새로운 시각은 가능한가> 중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보는 기술'의 그늘... 바로 '보는 폭력'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N번방이 조용히 잊혀져갔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인 조주빈은 현재까지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반영해 3년 감형된 42년형을 선고 받았다. 해외 사례를 보면 900년씩 받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서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가 그렇게 가지 않으려고 했겠지. 고작 1년 6개월...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디지털 기술의 진화 속도는 눈부시나 법은 여전히 '사후 대책'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마저도 위의 사례에서 본다면 한참 뒤처진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의 제1장 <성적이상>에서 관음증과 노출증은 종이 한 장 차이임을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보는 즐거움이 성 목적으로 바뀌는 경우는 노출증 환자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진다. 예전 한국의 여중ㆍ여고 앞에 출몰하곤 했던 '바바리맨'들의 노출증적 도착은 '나의 것을 보여주었으니, 너의 성기도 보여다오' 식의 호혜적 '봄'의 관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각종 SNS를 통해 과시적으로 자신의 일상을 노출하고, 이를 절시증적 욕망을 가진 불특정 다수가 보고 소비하며 '좋아요'를 눌러주는 현상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관음증의 탄생> 중에서



저자는 각종 언론매체를 장식하는 디지털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법 처벌과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디지털 기기 사용자의 윤리의식 정립 등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동시에 저변에 깔려있는 '여성의 시각적 대상화와 시각중심주의의 광기'라는 매우 오래된 문제의 근원을 서양 철학의 역사와 그것이 배태한 관조와 관음증의 역사 속에서 추적한다.

망원경·카메라·영화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렌즈의 발달, 그리고 이것들이 여성 혐오와 결합되어 어떻게 '모든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광기'로 나아가는지 보여준다. 


"철학은 평면거울을 통해 세계의 빛을 비추고, 그러한 시각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는 남성 주체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반사하고 시각적으로 나르시시즘적인 자기동일성을 재확인하며 구축한 남근시각중심적인 세계이다. 여기서 여성은 자기 자신을 시각적으로 재현할 도구가 없기 때문에 나르시시즘적인 남성 주체와 자기를 동일시하며, 그러한 '남성적 반사구조'속에 갇히게 된다."p.207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화가 나지만 분노와는 다른 시각으로 나를 이끈다. 저자는 객관적이고 깔끔한 문체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현재의 상황과 괴리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사실 남자들이 읽고 불편했으면 좋겠지만 읽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대신 강자들의 먹잇감(참 싫은 표현이지만)이 되지 않기 위해 여자들이 읽고 말하고 선언해야 한다. #MeToo 와 #디지털성범죄아웃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추적단불꽃 의 활약들이 점점 세상을 불편하게 할 것이다. #당신을이어말한다 #이길보라 감독의 외침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자 연장선이고,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포섭될 수 없는 태생적으로 '저주받은 여성'들이며, 조직을 움직이는 남성들과의 공모 아래 명예남성의 자리에 안착하기보다는 차라리 수치심을 모르는 광인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나 하나 참으면 이 가족이, 이 조직이, 이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가부장제 아래 여성의 미덕 따위는 벗어던진 지 오래다." <렌즈를 깨는 여성 광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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