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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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상영된 후 갖게 되는 관객과의 대화.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거나 관심 있어서 직접 보러온 관객과의 서비스 시간이지만 감독이나 배우들이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시간.

그곳에서 빌런으로 불리는 한 사내가 있다.

베레모를 쓰고 항상 객석 제일 뒤에 앉아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중년 남자.

이미 그는 이 바닥에 나름 유명인사였다.


"우선, 영화 잘 봤습니다. 그런데..."


조혜나 감독은 자신의 첫 독립 장편 영화 '원찬스'가 혹평을 받으면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삶의 목표도 의미도 찾지 못한 채 무력감에 빠져있던 어느 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GV빌런 고태경을 만나고 그에 대한 관심에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인물 다큐라는 것이 그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절대 찍을 수 없기에, 먼저 그와 친해지려 노력하면서 고태경의 인생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된다.

흥행이 보증되었던 영화가 엎어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자신을 버리려 폐인의 삶을 살았던 그였지만 영화에 대한 사랑과 자신을 믿어주는 두 사람을 생각하며 삶을 바로 잡았던 그를 보면서, 조혜나도 자신의 인생에 이정표를 그리기 시작한다.


"노 굿(NG)을 오케이(OK) 하면서 살아온 인생,

변명 같은 인생.

관객들은 그런 사정에 관심이 없다.

영화는 영화로 말하는 것이다."


방송 바닥에 있으면서 무한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열정페이로 버티는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나도 20대 때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렇게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았기에...

그런데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세상의 틀에 맞춰가는 나를 보게 된다.

그렇게 누구는 이 바닥을 떠나고... 남는다고 하더라도 보장된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인생은 오롯이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리고 선택한 후 남겨진 후회는 사치에 불과했다.


"우리의 삶이 영화 같을 줄 알았는데...... OK는 적고 NG만 많다.

편집해버리고 싶은 순간투성이야."


조혜나가 고태경을 알아가는 사이 이야기들은 재치 있고, 웃음을 주는 상황들도 많았지만 읽고 나면 긴 여운이 남았다.

'앞으로 만나게 될 세상은 더 좋은 일만 가득하니 버텨랴' 도 아니고, '늘 이렇게 살 수도 있으니 만족해라' 도 아니다.


다만 내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그려나가면 좋을지, 나를 더 사랑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한 번뿐인 내 인생, 그것으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의미가 전해졌다.

우리는 뭔가 화려함을 떠올리면 '영화처럼, 드라마처럼 사는 인생'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그 영화와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은 오늘도 묵묵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보태는 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걸 미워하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걸 더욱 사랑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어


세상의 시선으로 보면 패배자의 무늬를 하고 있던 두 사람...

그들은 자신의 인생에 맞는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을 뿐이다.


나의 인생이, 그리고 당신의 인생이 보잘것없어보여도 우리는 오늘 하루를 잘 버텨내고, 또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아직 오지 않은 기회를 탓하기 전에, 언젠가 주어질 지 모르는 기회를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오늘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 보자.

나를 미워하는 시간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 만큼, 내 인생 한번 잘 살아보자!


"조 감독, 영화를 만들자!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상영하자.

우리는 빛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빛을 보려면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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