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성이 성에 들어가려는 인간의 어떤 근원적 욕망과 불안을 이야기했다면, 전종서의 위성은 성에 들어갔어도 성 밖에서의 그 불안과 욕망이 쉽사리 해소되지 않음을 말한다. 이에 대해 전종서 선생의 부인인 양강楊绛 여사는 내제內題에서 이를 이렇게 요약다.
성에 둘러쌓인 사람은 도망가고 싶어하고, 성 밖에 있는 사람은 들어가고 싶어한다. 결혼도 그렇고, 직업도 그러하니, 살면서 바라는 것들이 대개 이와 같다.
围在城里的人想逃出来,城外的人想冲进去,对婚姻也罢,职业也罢,人生的愿望大都如此。
재밌는 것은, 전씨가 그리는 인물들의 욕망이 어떤 진지한 고민의 산물이라기보단 충동적이거나 유치한 동기들이 빚어낸 결과나 과정이라는 점에 있다. 주인공 방홍점方鴻漸의 이름부터가 어떤 아이러니다. 기러기가 구름을 뚫고 점점 높은 하늘로 치솓아 오른다는 뜻의 그의 이름은 화려하게 귀국한 서막과는 다르게 그가 머무는 장소는 해외에서 상하이 다시 깡촌으로 물러나는 어떤 퇴보적 경향을 보일 뿐더러, 연애에 있어서도 상해의 모던한 여성들과 이어지지 못하고 내지의 여성과 결혼하게 되는 우여곡절, 그마저도 순탄하게 흐르지 못하고 격화일로로 치닫게 되는 대략은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고 당대의 시대상과 인간상을 어느정도 반영하고 있다.
농촌이나 고향이 인간의 원초적 기억을 보지하며 동시에 인간에게 모종의 치유나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과는 다르게, 전씨의 소설은 고향과 타향, 내지와 외지, 처와 첩, 학문과 도박 등 상반되는 개념항들이 결국 인간을 둘러싸고 인간을 욕망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함을, 그리고 이 대립되는 쌍들이 둘이 아닌 하나의 성城일 뿐임을 폭로한다.
물론 주인공 방홈점의 성격이 가지는 어떤 부박함이나 불성실함이 그의 삶을 좌초시킨 것처럼 비춰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문제의 원인이거나 해답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쌓아올린 문명이나 도덕, 가치, 이기들은 그럴싸한 외벽을 가진 웅장한 성일 뿐이고 그 안에 둘러싸인 인간은 진정한 삶의 가치나 별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거나 체득하지 못함을 소설은 꼬집기도 한다.
城은 어떤 욕망의 대상이나 관계를 암시하는 메타포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론 인간 자신을 가리키기도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개방되지 못할 때 그것은 공략해야 할 성으로 비춰지고, 함락된 후에는 다시 버려지기도 하는 빈 성. 혹자에게는 자기의 자존감과 가정을 넉넉히 지켜줄 외벽이 되기도 하고, 혹자에게는 자기 자신이 깨트려야할 하나의 금기이거나 도전이 되기도 하며, 또 혹자에게는 그저 정해진 운명이 가혹할 뿐인 어떤 장벽. 그렇다면 소설은 이렇게 묻고 있는 듯 하다. "자기 자신에게 둘러싸여도 그것이 벽이 되지 않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인가, 아니면 불행한 사람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