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물리학
림태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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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유럽으로 떠나기 전 친한 남동생에게 빌려서 봤다가 홀딱 반해서 구매하게 된 책.

 

책 제목도 ‘관계의 물리학’이라니 얼마나 그럴듯하고 멋있고 문과 감성에 이과적 사고를 녹여낸 제목인지 책도 아주 술술 잘 읽혔다.

 

한 번은 정말 인간 관계에 대해 회의감을 갖고 있을 때 읽었고, 두 번째 읽을 때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을 때 읽어서 느낀 바가 그 전과 달랐다.

 

 

관계의 우주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사귄다는 것은 다른 존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일이고,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닮아가는 일이며,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에 스며드는 일이라고 한다.

 

 처음에 당신과 내가 너무나도 성향이 달라서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다가 당신과 나 사이에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내가 당신의 내면에 반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내 말버릇이나 행동을 닮아가는 당신을 보며, 당신을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우리의 관계가 진전이 되고 내가 당신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종을 심을 때 마냥 가까이 심지 않듯 사람과의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정해져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서로 상처를 내는 일도, 상처를 받게 되는 일도 없을 텐데…
좋으면 좋아서 꼭 그 관계를 붙들고 있게 되고, 멀어지면 멀어질 까봐 꼭 붙들게 되고 결국에는 나의 욕심으로 억지로 붙들고 있던 관계에 상처만 남는 것 같다.
당신과 나 사이에 최적의 거리가 어디일까?

 

 물론 책에서처럼 당신과 나 사이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당신과 나의 마음속에 따라 서로 천국을 보여줄지 지옥을 보여줄지 결정되게 된다고 하는데, 항상 당신에게 천국을 보여줄 수 없을까?

 

그건 나의 욕심일까?

 

 

 호의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게 여기는 그 순간이 관계의 첫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겪어봐서 알면서도 가깝고 친해지면 나도 모르게 그 관계에 있어 방심하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 같다.
‘나랑 친하니까 이 정도쯤은 이해해주고 넘어가 주었으면…’ 하는 못된 마음들이 쌓여서 상대가 소홀과 무례를 느껴 그 관계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되고 나 자신이 알아 차리게 된 때는 이미 늦으니 방심하지 않고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항상 고마워 하는 마음을 갖고, 표현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많이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의 관계가 나의 방심과 자만으로 멀어 지게 된다고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고 속상하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 관계를 놓쳐버리며 후회하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
10대 때에는 한 서른이 되고 나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느 정도 달인이 되거나 능숙해 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아니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당신과 나의 관계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 될 수 없고 흥정 할 수 없는 절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해하고 위로를 건네는 것이 상당히 자기 자신에게 자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사람의 생각과 배경과 행동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없고, 같은 부모님 밑에서 나고 자란 나와 동생의 사고도 이렇게 다른데 누가 누구를 이해하며, 누군가에게 건네는 위로가 '그 사람의 마음에 가서 과연 와 닿을 수 있을까?' 하고 나는 그 부분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는 사람이어서. 그 어떤 위로나 말로도 상대방이 맞닥뜨린 일들을 치유하거나 변화시켜주지 못 한다고…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기를 그래도 우리는 이해한다고 말을 하고 위로를 함으로써 우리의 관계를 확인하고, 위로를 받음으로써 나의 존재를 인정받게 된다고.....

 

 

 내가 당신을 만나서 좋은 인상을 받고, 당신을 자주 만나고, 당신을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렇게 질량을 갖게 된 감정은 가까워질수록 끌어당기는 힘도 커진다고 한다. 서로의 인력은 햇볕과 빗방울을 끌어당겨 사과 나무의 잎을 피우고 사과가 가지에 매달리게 하고, 그 사과가 땅 위로 떨어뜨리게 만든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좋아하는 일은, 그러므로 지구에 안유인력이 작용하도록 만들고, 지구의 모든 사물이 흐트러지지 않고 올바로 서도록 만들고,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는 아름다운 질서를 창조한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고 흔하게 정의하고 노래에 지겹게 등장하는 그 감정 하나가 지구와 태양과 달이 친밀하게 공존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의 온도가 이 천체의 존속에 공헌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들이 말을 받아들이고 해석 하는 것은 마치 인상파 화가와 같다고 한다.
인상파 화가들은 사물을 보이는 색깔대로 그리지 않고 어떤 화가의 그림에서 사과는 검은색으로 변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그림에서는 노란색으로 칠하기도 하고 그때그때 자신의 심상에 따라 사물들이 다르게 인식이 되고 표현이 되니까.


그러고 보면 말도 참 그런 것 같다. 똑 같은 말을 내 뱉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상에 따라서 각양각색으로 마음에 칠해진다. 말의 화살은 쏜 사람에게는 흔적이 없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이란 과녁에 선명한 자국을 남기게 된다. 말은 하는 자의 소유가 아니라 듣는 자의 소유가 되니까.
내가 아무리 장난으로 한 말이 당신에게 와 닿아서는 상처가 되듯이…


 사실 이건 오늘 있던 아주 따끈따끈한 일인데, 점심때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남자친구가 나에게 “너가 그럴 때 마다 무서워.”라고 했다.


종종 다른 사람에게 무섭다는 말을 들어와도 그건 결코 상처가 되거나 내 과녁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당신의 입에서 나온 그 ‘무섭다’라는 단어가 내 과녁에 와서 크게 자국을 남겨버렸다. 생각보다 큰 자국이 남아서 나 스스로가 그 자국을 보고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깐만 전화를 끊고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달라고 하였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말이었고, 나의 날이 선 반응에 당신도 많이 당황했을 것 같았지만 일단 그것과는 별개로 내게 그 말이 상처가 되었다는게 내겐 더 컸다.


‘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좋아하는데? 근데 내가 무섭다고? 왜? 내가 뭘 잘못 했는데? 어느 포인트 어느 부분에서 도대체 어디가 왜? 다른 사람들이 그래도 당신은 내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거 아니야?’하는 마음에….


내가 당신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별거 아닌 마음에 이렇게까지 혼자 놀라고 상처받은 내가 어이가 없었다. 오늘 일을 살펴보면, 말은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에 따라서도 흔적으로 남을 수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 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 알고 싶으면 타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야?’하고 물어보기 보다는, 평상시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사는지 스스로 살펴 봐야 한다고 한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사고하는 방식을 바꾸고, 말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고 한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말의 색채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니까.


 사람의 심장에 보관된 말은 소멸 시효가 없다고 한다. 심장에 박힌 상처가 된 말은 말의 주인과 상관없이 한 존재의 일생을 잔인하게 갉아먹는다고 한다. 나도 15살 때 누가 내가 웃을 때 윗 잇몸이 많이 드러나서 징그럽다는데 그거를 확인 하고 싶다고 갑자기 내게 “야, 한여린. 웃어봐.”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그 이유를 알고 나서 그 무렵의 나를 참 잔인하게 갉아 먹었다. 어디를 가도 속 편하게 웃지 못 했고, 혹시나 내가 활짝 웃으면 누군가에게 추하게 보일까봐 의식적으로 웃을 때 손으로 입을 가리게 되고 최대한 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 말이 참 나를 많이 상처 입히는 때가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줄 가능성이 있으니까 항상 조심하고 싶다. 당신들의 마음의 과녁에 엉망으로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감정이 메말라 간다고들 한다.
이 책의 작가도 그렇다고 했지만 나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미안해 하는 감정은 마음속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감정이다.
감정이 메말라 가는게 아니라 그 마음을 표현하는 정성이 메말라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가둬두고 밖으로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친구한테 종종 도대체 내가 왜 좋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내가 참 표현을 많이 해줘서 좋다고 한다. 예전에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친구들이 나에게 어찌보면 좀 오글거리는 말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표현하는 것이 참 신기하다고 했다.

 

 

아낌없이 주고도 펑펑 남는 마음을 왜 그렇게 아끼고 사는 것일까?
죽으면 쓸모도 없는 따뜻한 말들을 왜 그렇게 아끼고 안 쓰는 것일까?
사람의 감정은 표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알 수 없다.


나는 오해와 서운함도 거기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지 않아도 당연히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하는 생각은 너무 오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는 절대 알 수 없다.
일단 그리고 좋은 감정들이나 따뜻한 말은 나는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마음껏 표출하고 싶다.
내가 언젠가 당신과 나의 관계를 뒤돌아 볼 때 당신에게 더 좋은 말을 해줄걸, 따뜻한 말을 건넬걸,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다고 후회하지 않게.

 

 

 

 작가가 영국 런던의 해머스미스라는 지역에 갔다가 시내 한가운데에 마그러빈이라는 공원묘지가있는데 거기에 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 있는데,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여행 하고 있을 때였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에 구글 지도를 보고 관광지라고 되어있는 곳에 발길이 닿으면 가곤 했는데, 한 교회(혹은 성당) 옆에 묘지가 많았다. 묘지 주변을 돌아다니며 산책을 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침울하거나 어두운 분위기가 아니라 환하고 고요했다.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 묘비석들도 다 제각각 개성이 다르고 죽은 사람의 애틋한 이름과 곧게 서있기도, 조금은 비뚤어진 형태로 서 있는 묘비석과 여러 천사 형상의 석조물들, 그리고 묘비 근처에 놓여있는 꽃들 사이로 햇살이 물에 물감이 번지듯 밝게 번졌다.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유럽의 묘지를 보고 마음이 참 싱숭생숭 했다. 한국은 아무래도 님비 현상으로 납골당이나 묘지는 도시 한가운데에 있지 않고, 보통 어딘가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숨겨져 있는데 이렇게나 도심 한 가운데에 버젓이 죽음이 존재감을 내고 있어서. 세상에 삶만 존재 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가까운 곳에 죽음도 존재 한다고...병원에서도 장례식장은 지하에 있고 화장터는 저쪽 멀리 벽지에, 무덤은 산속으로 밀려나 있는데.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 마치 없는 것 처럼 안 보이는 곳으로 떨쳐내고 마치 죽음은 없는 것 처럼 삶을 살아가는데….

 

 

 지구 표면을 둘러싸고 있는 지각에는 산소, 알루미늄, 철, 칼슘 등 90여 종의 원소가 존재 한다고 한다.

그중에 프랑슘이란 원소는 원소 중 맨 나중에 발견된 원소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좀 특별한 원소다. 

가장 불안정하여 반감기가 22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지각 전체에 존재 하는 양도 겨우 30g이 채 되지 않는 극미량. 그래서 과학자들이 프랑슘을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물질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각자의 삶에서 미량으로 생성하는 행복 에너지가 87번 원소인 프랑슘을 닮았다고 한다.
보통 슬픔이나 우울, 좌절 등 무겁고 음습한 감정들은 오래 생성되어 있고, 행복이나기쁨은 프랑슘 처럼 금세 생성되었다가 사라져버리곤 한다. 즐거운 감정을 끊임없이 만들어내지 않으면 다른 어두운 감정들이 마음의 지각을 장악해버리고 마니까.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 저마다의 방법들을 구사하며 살아가는데, 대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맺는걸 선택한다. 이 관계를 잘 유지하는 동안 행복이라는 프랑슘이 분출되는 걸 직접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겠지.

행복은 금세 휘발되어 버리기 때문에 부지런히 내 안의 우물에서 펌프질을 해야 갈증을 해결 할 수 있고,

그 갈증을 해결하기 위해 사소한 일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내 역치를 낮추어야 한다.

 

내가 나의 프랑슘이어야 한다.

그리고 당신 또한 내 행복의 원천이므로 당신도 나의 프랑슘이다.

나의 프랑슘을 많이 생산해 내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당신에게 말한다.

너를 참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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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늘보라도 괜찮아
이케다 기요히코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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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몸 상태가 최악을 달리면서 도대체 왜 아픈 건지 여러 병원에 검사랑 진료 받으며 전전하다가, 아프다고 맨날 누워있을 수도 없고, 혈액 검사 중 비타민D가 너무 낮다고 하여 햇빛도 쐴 겸 베란다에 앉아 읽은 책인데 정말 칠 할에서 팔 할은 있어 보이는 말로 포장해놓은 헛소리가 가득한 책이다. 내 주변 그 누구에게도 추천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책. 왜 이런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된 건지, 왜 번역까지 되어서 팔린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책이다.

 

 제목 보고서 혹 해서 구매했는데 게임에 돈을 쓴 것 보다 더 돈을 낭비 했다는 생각이 드는 책. 누가 읽는다고 하면 아주 뜯어 말릴게 분명하다. 아무튼 마지못해 쓰는 도서 리뷰.

 

 

 챕터 4까지는 딱히 공감 되는 말은 없었지만 설렁설렁 읽고 있었는데 챕터 5에 작가가 요즘 날의 사회는 목표 과잉 사회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런 목표 과잉 사회에서, 목표가 별로 없는 사람은 세상을 겉돌게 되고 더 나아가 쓸모 없는 인간이라는 딱지가 붙을 수 밖에 없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을 보고 최근에 엄마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 났다.

 

 엄마랑 나는 ‘꿈’혹은 ‘인생의 목표’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엄마는 내게 “엄마는 인생을 살면서 꿈이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라는 말을 하셨다. 나는 아주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아주 어릴 때(만4-5살)부터 엄마에게 줄곧 “엄마는 꿈이 뭐야?”, “어렸을 때 엄마 꿈은 뭐야?”, “엄마는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등등의 질문을 정말 많이 했었다.

엄마의 대답은 옛날도, 지금도 한결같이 그런 것이 없다면서 항상 미래를 꿈꾸며 사는 나를 부러워하고 신기해하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말이 너무 마음 아파서 어떤 말을 엄마에게 해줘야 엄마가 조금이라도 기분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꺼낸 말이

엄마. 나는 그냥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뭘 좋아하고 잘 하는지,

뭘 원하고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지 생각을 많이 했고,

시간을 그런 생각을 하는데 할애 할 만큼 안 바쁘게 살았던 것뿐이야.

 

엄마가 꿈이나 이루고 싶은 목표가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 하는 건 그만큼 엄마가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던 것 뿐이잖아.

누군가는 나처럼 미래를 주로 보고 사는 사람도 있고, 엄마처럼 당장 오늘 하루가 빠듯해서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그러는 거지.

대신 엄마가 꿈이 없었다고, 인생에 목표나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고 엄마의 인생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

목표하는 바나 이루고 싶은 바가 없는데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

근데 엄마는 그 시간을 탓하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늘 한결같이 착실하게 매일을 살아왔잖아.

그런 거 정말 쉽지 않다고 생각하고 난 엄마의 그런 점이 정말 멋있고 대단하다고 생각해.

엄마가 엄청 현실적이고 여유가 별로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았을 뿐이야.라고 엄마에게 얘길 했다.

 

이 책의 저 구절은 가까이는 우리 엄마, 멀리는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문장이어서 너무 기분이 나빴다.

작가가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누군가의 인생을 문장 하나로 통째로 부정하고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지 너무 불쾌했다.

목표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세상을 겉도는 건 아니다.

목표가 있어야만 열심히 살았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 아니듯.

 

 

챕터 6으로 넘어오면서 이 책은 감동에 대한 얘길 한다.

 

‘감동했다는 말은 한 순간에 무엇인가를 전부 해결하게 만드는 듯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매일 여기저기서 들리는 ‘감동적인 이야기’들은 감동에 빠지는 당사자를 잠깐 동안 환상의 세계로 이끌지만 그 다음에 새로운 무언가가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은 아무쪼록 쉽게 감동에 빠져서 현실의 무게를 잊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라는 내겐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물론 작가의 말 처럼 ‘감동만으로 일을 하거나, 감동만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 할 수 없다.’라는 말에는 공감하지만 감동 다음에 새로운 무언가가 이어지는 일이 거의 없다고?

쉽게 감동에 빠져서 현실의 무게를 잊어버리면 안 된다고?

그러면 삶을 살아가면서 감동할 순간이 별로 없는 현대인들은 어디에서 무언가에 현실의 무게를 잊어버릴 숨통을 찾을 수 있을까?

그런 출구조차 없이 빡빡한 삶을 살아 가라는 건가?

그러면 사람은 정신이 메말라서 시들어버리지 않을까?

감동을 찾고 거기에 환상을 갖는 것이 도대체 왜 나쁜 거지?

 

감동에 빠져서 당장 무언가 새로운 것이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고, 행동이나 가치관을 바꾸고 더 나아가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긍정적이고 선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는데 왜 그런 것들을 송두리째 부정하려는 건지 너무나 황당하다.

 

 이 책을 쓴 작가는 정말 근시안적인 삶을 사는 사람 아닌가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그러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특히 예술 관련한 직업 종사자들은? 음악이랑 미술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작가의 저 말은 정말 거지같은 문단이 아닐 수 없었다.

 

 

챕터 7로 넘어가면서 또 한 번 신박한 개소리가 나온다.

 

‘혈압이 높은 사람은 높은 혈압으로 사는 것이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한 조건일지 모른다. 그것을 약으로 무리하게 내리면 오히려 상태가 나빠져 생활에 지장을 일으킬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스스로 판단 하에 병원에 가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내 경우는 그렇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리면 암의 종류에 따라서 수술을 할 수도 있고 항암제로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그냥 방치해둘 것이라고 생각한다.’

……;

이 무슨 최근 논란이 되었던 안아키 같은 신박한 헛소리일까?

제정신일까?

 

생물학자라는 사람이 이런 무식한 말을 쓰고 심지어 책으로 냈다고?

물론 안아키의 근간이 되는 사람도 한의사였지만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한 거 아닌가?

마치 어느 막장 드라마에 나왔던 암세포도 생명인데 어떻게 암세포를 죽여서 치료하겠냐는 대사가 생각나며 어처구니를 상실 한 건 나 뿐일까?

 

 물론 인간의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당연히 하나 둘 제 기능을 다 못 하고 저하 되는 게 필연이겠지만 이 사람은 정녕 심각하게 아팠던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런 헛소리를 할 수 있는 걸까?

평생 자잘하게 아파 본적은 있었지만 올 해는 처음으로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아파서 많이 힘들어서 일상 생활이 상당히 불가능 할 정도로 건강이 망가지면서 삶의 질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과 나를 아껴주는 내 지인들에게 걱정 끼치는 요즘을 살고 있는 나는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데 항암 치료를 하면 나아질 수 있는데 그걸 미련하게 방치하고 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건강검진이 병원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니 정말 하나하나가 다 개소리라서 더 이상 읽을 가치도 없는 책이라고 강렬하게 느꼈었다.

 

예방의학 대해서 배웠던, 배우지 않았던 이건 너무 상식적인 부분 아닌가?

정부가 예산을 쏟아 생에 주기 별 건강검진을 왜 할까?

현재가 건강하고, 건강 검진 결과에도 건강하다고 나왔다면 물론 건강검진 비용이 아까울 수 있다.

 

하지만 건강검진을 전혀 하지 않고 결국 병이 있는데도 조기에 발견하지 못 하고 한참을 방치된 상태로 있다가 이미 늦은 시기에 병을 발견하게 된다면 그 병을 치료할 확률도 아마 상당히 낮아 졌을 거고, 간단한 치료로 끝날 병 이였어도 수술로도 그 어떤 치료 방법도 없는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그 병을 어떻게든 치료해보겠다고 들어가는 건강보험 재정이랑 환자의 시간과 체력은?

정말 하나도 모르고 둘도 모르는 무식한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정말 실소를 금하지 못 한 구절이다.

아직도 이 구절을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난다.

 

 

개소리 챕터를 지나 또 다른 헛소리 챕터가 나온다.

왜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잔뜩 써놓은 책을 읽고 있는 내가 한심해지는 시점 이였다.

 

‘자기다움이라는 말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성이나 독창성이라는 것도 사실은 전부 다른 사람을 흉내 낸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것뿐이다.’

 

자기다움이 왜 그저 환상 인 거지?

 

 나는 프랑스 인상파 화가인 ‘클로드 모네’를 참 좋아하는데 ‘클로드 모네’가 날 때부터 저렇게 ‘산책’같은 작품을 그렸을까?

모네의 독창적인 기법도 환상이 아니라 한 네덜란드의 풍경화가의 영향을 받아 자기만의 기법이 생긴 것인데. 나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굳게 믿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작가의 저 말이 공감이 안 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함이나 자신만의 색깔을 모르고 살다가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누군가를 따라 하며 익히고, 그 사람을 따라 하고 따라 한 것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발견하거나 자신의 특별함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분야이던지 처음부터 자신만의 색깔을 내는 사람은 없다.

그 누구라도 다른 사람을 흉내 낸 다음에 그것을 바탕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 무언가가 자신의 특별함이 되는 것이다. 그건 결코 환상이 아니다.

 

 또 작가의 헛소리가 계속 이어지는데 더는 작가의 헛소리에 대해 뭐라고 주석을 다는 것도 너무 피곤하다.

 

 

마지막으로 비판할 헛소리 챕터.

 

‘좋아하는 일이야 말로 재능으로부터 이어지는 게 분명한데, 좋아는 해도 재능이 없는 사람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우선은 자신의 재능을 세밀히 파악해두는 게 현명하다. 어릴 때부터 다른 놀이는 거들떠보지 않고 오로지 바둑에만 열중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그 방면에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번역이 잘 안 된 건지, 작가가 말을 뭐라고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내가 생각하기론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재능이란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것 이란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좋아하는 것에 열중하는 것과 재능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나를 예로 들자면 8살적 우리 집 컴퓨터는 window 98이였는데, 난 그 때부터 22년간 거의 매일 게임을 해왔고,

게임을 좋아하는데, 내가 22년동안 게임에 열중해있었고 게임을 좋아했다고 게임에 재능이 있는 것인가?

나는 단지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지구력을 요하는 게임은 잘 하지만,

전략 전술이나 순발력과 암기력을 요하는 게임은 전혀 못 한다.

 

22년을 거의 매일 게임을 해 왔음에도.

 

전에 SNS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언어를 잘하는 것은 상당히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언어를 받아들이고 잘 번역하는 것과, 언어를 잘 이해하고 글을 잘 쓰는 것과, 언어를 타인에게 잘 가르치는 것과 언어에 대해 잘 이해하고 언어학적으로 잘 아는 것은 다 다른 분야라고. 좋아하는 것은 단지 자신의 취향일 뿐이다.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럼 나는 미술이랑 음악으로 세계 예술사에 한 획을 그었겠지.

나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 범재들이 넘쳐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읽는 내내 너무 피곤하고 짜증나고 그다지 볼 가치도 없는 책이었다.

참 여러 가지로 느끼는 게 많다. 이런 헛소리도 책으로 나오고 번역 되어서 판권이 수출되는 마당에 내가 자신감을 안 가질 이유는 없는 것 같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다면 반드시 뜯어 말릴 것이다.

내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제목이랑 내용이랑 무슨 관련성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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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마음에게 - 스치는 생각
김준 지음, 김연경 그림 / 지식인하우스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취미 중 하나는 책을 사면 주는 사은품 같은 것을 얻기 위해 책을 사는 것이다.

취미 중에 유일하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취미 중에 하나인데,

2015년도 연말부터 매 해 별별 증정품(?)을 받기 위해 책을 참 많이도 샀고, 그 때 휩쓸려서 제목만 대충 보고 샀다가 드디어 읽게 된 책이다. 그래서 2016년의 감성이(ㅋㅋㅋ)담겨있는 책.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옛날 싸이월드 감성, 요즘의 인스타 감성 같은 글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번에 독서평을 쓰려고 조금 읽은 책들이 다 너무 난이도가 높거나,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책이거나 혹은 독서에 시간을 너무 오래 소모해야 하는 책들이라서 결국 후루륵 읽기 쉬운 책을 읽었다.

 

묵묵히

나의 계절을 기다린다

벚꽃은 봄 내음 그윽함과 함께 춤추고

동백꽃은 겨울 눈과 함께 내린다

나의 계절이 오면 나도 피어나겠지

 

아프면서 전에 없던 잡생각들이 참 많아졌는데 곧 서른을 앞두고 있어서 주변에서 하도 “곧 서른인데~~~”이래서 더 그런지 나도 모르게 압박감이나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나보다. 일단 내가 그린 미래의 모습에 나이도 지정해놔서 그런지 “벌써 서른이라고??, 나 아직 해놓은 것이 별로 없는데? 큰일났다.”하는 마음이 많이 들기도하고…

이 글을 읽었을 때 ‘나의 계절이 오면 나도 피어나겠지.’이 부분이 유독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최근에 정말 좋아하는 글이 있는데

 

“New York is 3 hours ahead of California, but that does not make California slow.

Cameroon is six hours ahead of New York but it does not make New York slow.

Someone graduated from college at 22 but waited five years before securing a job.

Someone became a CEO at 25 but died at 50.

Someone became a CEO at 50 but lived to 90 years.

Someone is still single, While another is married with children.

 

Absolutely, everyone in this world works based on their own time zone.

People around you might seem to be ahead of you.

That’s total fine. Some are behind you.

Everyone is running their own race in their own time zone.

 

Don’t envy or mock them.

They are in their own time zone and you are in yours.

Life is about waiting for right moment to react.

So RELAX.

You’re not late You’re not early.

You’re very much on time.”

 

이 글이 생각 나면서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면 언젠가 나의 계절이 오고 나도 피어나겠지 생각이 들었다. 언젠간 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조급해 하지 말아야지.

 

 

왜 두려워하나요?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서요

상처는 시간만 흐른다고 지워지지 않아요. 손을 줘요. 조금 걸을까요?

 

이 글을 읽고 나였다면 나는 공감능력에 문제가 있는지 누가 상처가 지워지지 않아서 무엇인가를 두려워한다고 말한다면 나와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저 말에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친한 사람이라면 조언을 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채찍질(?) 할 것 같은데 손을 잡고 걷는 것 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구나…

저렇게 고급지게 위로를 건넬 수 있다니.

나는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스스로는 못 할 생각이다 싶었다.

나같이 냉정한 사람한테는 하기 어려운 생각이다.

 

우린 참 괜찮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던 날

계절 타고 오는 바람이

손이라도 잡아 줄까 하여

새벽 네 시를 걸었다

 

나와 같은 마음 여럿은

이미 그곳을 거닐고 있었다

나와 꼭 닮은 마음들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안아 주었다

누가 뭐래도 참 괜찮은 마음이라며

바람 한 점씩 나눠 가졌다

 

그래, 우리는 참 괜찮은 마음이다

어느 곳에 두어도 괜찮은 마음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보면서 나는 좀 글렀다고 느끼는 점이,

나는 상당히 이과적 사고를 하면서 문과적 감수성을 갖고 있어서 ‘새벽 네 시를 걸었다’라는 표현을 못 쓸 것 같다.

 

아무리 각잡고 멋있게 문장을 써보자고 해도 냉소적이거나 비판적인 글은 잘 쓸 수 있어도 다정하고 저런식으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표현은 내가 하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

이 책 보면서 그래도 “아!”하게 만드는 문장들이 있어서 좀 놀랐다.

이런 유형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역시 무슨 책이던지 일단 편견 없이 읽어보는 것이 좋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표현도 있다는걸 몰랐겠지.

 

달과 나의 속셈

유난히 달이 밝고 둥글다

아마 네가 소원을 빌었나보다

나는 달에게 말을 건다

네가 무슨 소원을 빌었냐고

나는 또 너의 꿈을 이뤄주러 가야겠다

너는 모르겠지 달과 내가 같은 속셈이란 걸

어떻게 달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지?

역시 글을 쓰려면 무언가 하나를 보고도 생각이 남달라야 하나보다.

이런 문과적 발상을 도저히 못 따라가겠다.

나는 달을 보고 ‘나도 역시 평생 달의 뒷모습은 못 보고 살겠네.’ 정도의 생각밖에 못 하는데 ‘속셈’이라는 단어 자체도 엄청 오래간만이고(보통 꿍꿍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거나 간계奸計를 많이 쓴다.)

누군가의 소원을 이루어주겠다는 발상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 아 정말 메마른 삶을 살고 있지 싶다.

 

너를 보며 생각해

낮의 웃음보다 밤의 네 슬픔을 읽고파

겉의 평온함보다 네 속의 태풍을 보고파

너의 차갑고 날카로운 고민을 안아 주고파

세월에 감춰진 네 상처에 손 올려 주고파

조명이 꺼진 무대에 올려진 너의 모든 것과 떠나고파

 

내가 얼마나 냉정한 사람인지 뼈져리게 반성하게 만드는 책인 것 같다 아무래도 이 책은…

나는 너무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해서 그런지 본인의 슬픔은 본인이 감당하고 속안의 태풍은 본인이 잠재워야지 왜 그거를 다른 사람이 읽고 보고 안아주고 해야 하는지 너무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는거 아닌가?

하긴 그렇게 해달라고 한게 아니라 그렇게 해주고 싶다는 건데 너무 오만한거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을 위해주고 싶은 마음이 평상시에 전혀 없어서 그런지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발상을 하지 싶었다.

확 와 닿는 표현도 있어서 나중에 이런 표현도 써봐야겠다 싶었고…

그런데 이런 표현 알아봤자 언제 누구한테 쓰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저번 강연때 EQ점수였나 공감능력 테스트했던게 왜 14점 나왔는지 잘 알겠다.

반성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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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들어온 너에게 창비시선 401
김용택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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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언제 가장 우울하고 스스로를 많이 망쳤을까? 되돌아보면 단언하건대 그건 스물 여섯때.
그 때 당시의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였으며 자학하고 미워하고 스스로를 탓하느라 우울에 허덕이며 눈을 감고 세상을 대하는 느낌이었을 때였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다르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며 똑 같은 일을 하더라도 각자 주어진 능력 치가 다른데 ‘왜 다른 사람들은 하는데 나는 안 되지? 왜 나는 여기까지 밖에 못 하지? 왜 나는 이정도 밖에 안 되는 거야.’등등 스스로를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해가며 내가 나를 상처 입히며 고문하고 미워 했던 때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한창 내 마음이 스스로 불빛 하나 없는 외딴 숲 속에서 늪지에 반쯤 잠긴 채 걸어가던 시기에 출간된 시집이다. 제목부터 너무 서정적이고 마음을 아찔하게 해서 도저히 손이 안 갈 수 없었다. 그래서 만약 내가 그 때, 그러니까 스물 여섯에 이 시집을 읽었다면 늪지대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됐을까? 결단코 ‘아니요.’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 시집에 대해서 얘기를 하자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가?

일단 제목에 대한 기대감으로 섬세하고, 서정적이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적셔줄 시들을 기대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시인의 주파수와 내 주파수가 완전 다르다. 그래서 당최 김용택 시인은 이 시로 하여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마치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 때까지 문제를 풀기 위해 읽어왔던 문제집 속의, 혹은 기출문제 속의 시를 읽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와 닿는 시는... 솔직히 말한다면 글쎄...?

제목과 시 내용의 조화도 개인적으로는 아리송해서 정말 고등학생 때 시험지를 붙잡고 씨름하던 그 때의 향수만 느꼈다.

 

 

 일단 이 시집의 제목이자 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인 <<울고 들어온 너에게>>는 어떤 시인가?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 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아랫목의 따스함은 나도 겪어 봤고 아주 잘~ 알겠다.

일단 나는 추위를 아주 격렬하게 싫어하는 사람으로써 손이 시릴 때에 나도 엉덩이 밑에 두 손을 넣는 때도 많다.

 하지만 두 번째 문장인 그 손으로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라니… 나는 여기에서 나는 시를 감상하기엔 글렀다 싶었던 이유가 ‘아... 정말 비위생적이다. 남편이 나한테 저러면 최악인데? 자기 엉덩이 밑에 깔고 있던 손을 감히 내 얼굴에 가져다 대? 자기가 엉덩이로 뭘 깔고 앉았을지 알고? 제정신인가? 얼굴에 생화학 테러를 감행하네? 정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고 싶었던 것이라면, 비누로 꼼꼼히 닦고 따뜻한 물로 손을 충분히 씻고 깨끗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낸 따뜻한 손으로 온기를 나누면 안 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 새도 그 추위에 움츠린 겨울의 꽝꽝 언 들을 헤맨 네 볼이 얼마나 빨개졌을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체온을 빼앗겨 버렸을 네 뺨에 화자의 온기와 더 나아가서 당신을 염려하는 마음까지 전하는 방법이 저런 방법뿐인지…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완전 망했다 싶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내게 어려운 시집이었다. 농촌 분위기가 곳곳에서 묻어나는 이 시들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제목에 낚인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으니… 참담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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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별이 남긴 먼지입니다 - 최고의 과학자 13인이 들려주는 나의 삶과 존재 그리고 우주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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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늘 어렵고 막연하고 동경하게 된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2014년도에 트위터를 하다가 내가 팔로잉 하던 사람이 이 책이 좋았다고 글을 올렸길래 호기심에 사봤던 책으로 기억한다. 서두에도 적었지만 과학은 늘 내게 동경의 대상이다.

 마치 저 멀리에서 반짝이고 있는 별에 절대 닿을 수 없어 만지는 상상만 하듯 생각하려고 하면 언제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 깊이를 탐구하기엔 낯설고 어려워서 동경만 하게 된다.

 아무쪼록 나의 동경하는 마음들이 가끔 내 안에서 빅뱅이 일 때 이렇게 과학 관련 에세이나 서적 등을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에 팔 할 이상은 내 머리맡에서 항상 그 자리만 묵묵히 지키게 된다.

 사실 이 책을 6년만에 꺼내게 된 계기도 역시 트위터 때문이었다.

바로 트위터를 하다가 내 타임라인에 우연히 흘러 들어온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구본철 교수님이 MBC 뉴스에 나왔던 짤 때문에 이 책을 꺼내게 됐다.

 그 짤을 보여주자면 바로 아래와 같다.


 왜 구본철 교수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잊고 지내는 사실 중의 하나가 우리가 별의 자녀라는 사실이죠.”

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그렇듯 나도 이 짤을 보고 문, 이과를 둘 다 관통하는 멋진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아무쪼록 우리가 왜 별의 자녀인고 하니 우리의 DNA를 이루는 질소, 치아를 구성하는 칼슘, 혈액의 주요 성분인 철, 애플파이에 들어 있는 탄소 등의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가 모조리 별의 내부에서 합성됐다. 그러므로 우리는 별의 자녀들이다.  코스모스;칼세이건

 이런 식의 비유가 우리를 우주와 더 가깝게 이어주는 오작교 역할을 한다.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우주를 탐구하는 데는 이성과 감성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 하기 때문에 우리가 유독 ‘우주’에 있어서 만큼은 다른 과학 분야에 반해 더 감성적으로 접근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별을 구성했던 수 많은 별의 조각들이 나와 우리라는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다.

그래서 다른 생명과 접촉하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별에 닿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감히 인간으로써는 그 크기를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에서 하필 내가 당신이 돌고 있는 궤도에 우연히 접근하여 당신이라는 별을 만나 관계를 맺게 되고, 당신이란 별을 알게 되는 그 엄청난 우연.

그 우연 자체가 우주가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 아닐까?

 내가 엄청 낭만적으로 열심히 포장을 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영국 왕립 천문학자인 마틴 리스는 이를 다르게 표현한다.

바로 우리 자신이 다름 아니라 별이 남긴 먼지예요. 모든 원소가 별의 내부에서 수소와 헬륨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 결과로 발생했지요. 이런 표현이 조금 거슬릴지 모르지만, 인간은 별이 남긴 원자쓰레기라고 할 수 있어요.”라고……

 정말 아 다르고 어 다른 건데 같은 내용이라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하니 느낌이 너무 천지 차이이다.

나는 마틴 리스 같은 표현을 하는 사람보다는 칼세이건 같은 사람의 표현을 많이 하고 싶다.

원래는 2020 연말 휴가때 크리스마스 이브 오후부터 이듬해 1월 3일까지 쭉 휴가였는데, 회사 사정으로 휴가를 반납하느라 휴가때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해보려던 계획이 실행으로 옮기기도 전에 실패로 돌아갔다.

도저히 평상시에는 잘 읽지 못 할 것 같아서 '코스모스'를 읽는건 또 2021 겨울로 미뤘다. 연 초 부터 읽으면 진이 빠질것 같아...


 코로나로 인해 모두들 힘들어하고 우울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나는 항상 아름다움을 탐미하는 사람인데 이 망할 바이러스 때문에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운 별들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가 완전히 종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은 시간을 보내기 어려워 졌음을 안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인하여 다른 별들과 우리 사이의 불신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소중한 별들의 주위를 돌고 도는 위성이고 싶다.

이 자리를 빌어서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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