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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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였을 것이다. 이 책이 그냥 눈에 띄었다.

평상시 어린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그렇다고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출산을 하는 건 끔찍할 만큼 싫다.) 5월에는 어린이 날도 있고 하니 어린이날에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구매를 했다.

그리고 5월 5일에 읽으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전날부터 내 방 가구의 대 이동 및 봄 맞이 옷 정리를 하느라 꼬박 이틀을 소비하는 바람에 어린이날에 이 책을 리뷰하려던 나의 야심 찬 계획은 그만 물거품이 돼버렸다.

그래도 더 늦기 전에 이 책을 읽고 리뷰를 남김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 것 같다.

 

나는 상당히 냉소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생각에 별 관심이 없다.

일단은 학창 시절부터 겪어온 사람들에 대한 나의 방어기제이자 다른 사람들에게, 특히나 튀는걸 못 참아하고 보수적인 한국 사람들의 시선에는 내가 남들과는 다른 취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숱한 시선을 받고 자라와서 그런 거라고 추측한다.

아무쪼록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나에게 조금은 특이한 취향이 있는데 그건 바로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른 사람의 신념, 생각, 가치관, 경험, 느낌들로 범벅된 새로운 세계에 초대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세이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유영하다가 온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는다.

그런 느낌이 내겐 깨나 신비하면서도 새로워서 자주 에세이를 읽으며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초대받곤 한다.

 

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작가인 김소영 씨가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상냥하고 다정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에세이다. 무의식적으로 지우려고 한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때의 생각이나 기억들이 별로 없는 심심한 어른이다. 가끔 누군가의 추억여행 글을 봐야 '아, 그래... 나도 저런 걸 본/경험한 적 있었지...'하고 겨우 떠올릴 만큼 어렸을 때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을 읽을 때는 아직 내 자아 안에 웅크리고 있던 어린이인 내가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렇고 그런 어른이 되어버린 철저히 어른인 나의 입장으로써 책을 읽었다.

 

일단 이 책을 읽고 가장 충격받았던 구절은 이 구절이다.

 


얼마 전에도 SNS에서 "여러분, 우리 아이를 낳지 맙시다."라는 문장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출생률 때문이 아니라, 이 순간을 살아가는 '아이'때문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라."하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지 말자."라고 받아치면 안 된다.

이 말은 곧 사회가 자격이 있으면 상으로 아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는 말은, 애초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그 끝이 결국 아이를 향한다.

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된다.

(중략)

이상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가 약자를 배제하자는 결론으로 향하는 것이.


나도 SNS를 하면서 아이를 낳지 말자는 주장들을 숱하게 봐왔다. 심지어 나는 좀 더 극단적인 생가을 갖고 있는 편인데, 지구에 인간이 하등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사람들이 더 이상 아이를 출산하지 않거나, 소수의 사람들만 아이를 낳아서 인간의 개체수가 줄었으면 좋겠다. 그로 인해서 다른 생명들이 덜 고통스러워하고 지구가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상당히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나는 어린이를 혐오한다기 보단 그냥 사람 자체를 혐오하고 끔찍하게 여기니까.

그것과 별개로 나는 내가 '출산'을 하고 아이를 '양육'한다는 게 나에게도, 태어날 아이에게도 너무 끔찍할 거라 생각해서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난 상당히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완벽하지 못한 내가 감히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면 내 우주가 통째로 흔들려서 나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들을 야기할 것 같아서 절대로 낳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완전무결한 사람만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같이 철저히 나밖에 모르고 타인에 대해 너그럽지 않으며 조금도 희생이나 양보를 할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부모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에는 상당히 극단적인 미래까지 상상해보는 편인데 내게 출산 및 육아는 항상 좋지 못하다.

나는 아이를 낳을 생각이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를 낳지 맙시다!!!"라는 문장을 보고 쉽사리 지나치면 안 되는 건데 나의 안일한 생각이 부끄러워졌다. 몹시 창피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어린이들을 향한 다정함에, 상냥함에 눈물이 아롱졌다.

사회에 김소영 작가 같은 따뜻한 시선을 가진 어른들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하는데 나는 왜 이런 어른으로 컸을까 숨고 싶어 졌다. 왜 난 어린이들을 존중해주겠다고 하면서 은연중에 무시를 했던 걸까 후회도 되고 많은 반성이 됐다.

나도 기억 못 하는 사이에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상처를 준건 아닌지, 어른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나 인상을 심어준 건 아닌지 뒤돌아보게 됐다.

사람의 인격은 언제 성숙하게 될까?

아이를 낳으면 성숙해질까?

아니면 아이를 낳고 다 길러내면?

노인이 되면?

죽을 때가 다 되어야 성숙해질까?

 

김소영 씨처럼 다정하고 상냥한 시선으로 어린이들을 볼 때, 불합리한 사회나 편견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성숙한 인격을 소유한 어른이 되는 건 아닐까 싶었다.

 

 

최근에 만난 중학교 동창이 자꾸 내 동생을 지칭하며 "OO 이는 잼민이때부터 봐서 그런지 아직도 어른인 게 믿기지 않아."라면서 '잼민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사용했다. 한두 번은 무시하고 넘어갔지만 4-5번이 반복되자 슬슬 기분이 나빠졌다. '잼민이'의 뜻은 정확하게 몰랐지만 이런 유의 인터넷 용어는 대개 사회적인 약자인 어린이, 여성, 노약자, 장애인 등을 비하하는 뜻으로 향하기에 어원을 찾아봤고 어린이를 비하하는 용어니까 쓰지 말자고 했다. 친구는 내게 사과의 말을 전했지만 나는 여전히 기분이 나쁘다.

하루에도 숱하게 약자들을 향한 신조어들이 생겨난다. 그런 신조어를 불편해하고 사용을 지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런 혐오 콘텐츠를 생산하지 않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아이의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세상이, 아이의 죽음을 희롱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게 어른으로써 우리들의 과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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