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위암에 걸리신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느라 몇 일 밤을 병원에서 보낸 적이 있다. 애가 타는 마음에 이것 저것 물어도 뭐라 속 시원한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의사들이 참 야속했지만 그래도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의사선생님은 외경의 대상이었다.8년 동안 외과 레지던트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아툴 가완디의 고백은 야속했던 의사들의 입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현대’, ‘첨단’과 같은 가치들로 과학의 현실 설명력을 신뢰해왔다. 그러나 닥터 가완디는 커다란 발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의학은 인체에 나타나는 현상에 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지는 못한다고 말한다. 또 그런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상적으로 환자에게 뭔가 해야 하는 의사의 일상을 긴장감 넘치는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때로는 민감할 수도 있는 소재에서 깊이 있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내가 처음 아버지의 병세를 전해 들었을 때는 너무나 절망적이었다. 어쩌면 수술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좀 더 큰 병원에서 ‘글쎄요’라는 말과 함께 69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감행했고 아버지의 위는 3/10만 남았다. 의사는 앞으로 6번의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며 위의 크기는 1년이 지나야 원래의 크기가 된다고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퇴원한지 몇 달 만에 예전의 식사량을 회복했고 결국 세 번째를 마지막으로 힘겨운 항암치료를 끝낼 수 있었다. 우리는 그 결과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학이라는 방법으로 신중하게 행한 예언(?)이 빗나가는 것을 경험한다. 여전히 현실은 불확실하다. 어쩌면 그 불확실성이 세상을 가치 있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완벽하게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면 결과가 뻔한 그 세상에 어떤 재미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