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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긴다는 것과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긴다는 것은
게임에서 이기는 것, 가위바위보에서 이기는 것처럼
정해진 룰 안에서 다른 사람을 제치고 내가 그 안에서 승자가 되는 것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내가 갖는 것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긴장된 순간을 견뎌야 하고
게임이 끝나고 승리가 결정된 후에야 안도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진다는 것은
그냥 생각했을 때, 이기지 못했다는 것
원하는 걸 얻지 못하거나 손해를 입어야 할 수도 있고
승부욕이 강한 사람에게는 낙담과 실망을 안겨줄 수도 있는 것
질수도 있지만, 한 번 지고난 후에는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음번엔 꼭 이기리라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꼭 이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스포츠 경기에서 이겨야 하고
입시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크고 작은 게임과 내기에서 이겨햐 하며
나아가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기지 않는 것이
꼭 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내가 진 줄 알았는데
그건 진게 아니라고 누군가 말해준다면 어떨까
이기지 않으면서
지지도 않는 방법은 없을까?
<지지 않는다는 말>의 저자는 스스로 달리기를 하면서 얻은 깨달음과
지지 않는다는 것이 꼭 이긴다는 걸 뜻하지만은 않는다는 착안에서
책 안에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한 문장 한 문장 따라가며 책을 읽다보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누구를 이기지도 않았고, 지지도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내 안에 생긴 깨달음에 미소짓는 내가 있을 뿐이다.
이제는 이기는 것과 진다는 것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늘 이겨야 한다고 나를 몰아붙이기 보다
좀 더 기쁜 마음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나를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다.
그 한걸음 한걸음에 인생의 의미가 있고
그 모든 걸음들이 내가 가장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 준다면
누군가를 제치지 않고서도 지지 않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 처음 대회에 참가해 결승점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기록으로 뛰는 둥 마는 둥 고개를 푹 숙인 채 경기장 초입으로 접어드니 길 양옆으로 우리가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족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꼴을 보고 있구나, 그런 부끄런 마음이 드는 순간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들이 내게 박수를 치면서 이제 조금만 가면 된다고 격력해 주는 것이었다. 그 환호를 대하자마자 내 등이 쭉 펴지면서 온몸에 생기가 도는 게 느껴졌다. 누가 봤다면 곧 세계신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하려는 선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달리기를 통해서 내가 깨닫게 된 일들은 수없이 많다. 뛰어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바로 그 순간이 달리기를 하기에는 제일 쫗은 때다, 아무리 천천히 뛴다고 해도 빨리 걷는 것보다는 천천히 뛰는 편이 더 빠르다, 앞에서 누군가 사진기를 들고 달리는 사람들을 찍고 있다면, 아무리 힘들더라도 등을 곧추세우고 웃어야만 한다(안 그러면 반라 차림에 일그러진 얼굴로 괴로워하는 사진이 인터넷을 떠돌지도 모른다) 등등등.
그중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