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들이 예상했던 시점(대략 2012년 경으로 암암리에 합의되었던 듯하다)보다 훨씬 빠르게 세계적인 공황의 국면이 닥쳐왔다. 이번 위기는 단순한 침체국면 또는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의 모순이 폭발한 것 정도가 아니며, 자본주의 자체의 몰락의 징후로 보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 언론 보도 양상을 보듯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어디까지 진전될 지에 대해선 아무도 장담을 못하고 있다. 경제적 국면은 자체의 모순과 경향성에 따라 풀려나갈 것이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후 새로운 경제시스템에 대한 정치적 합의를 모아가는 것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일각에선 '사회적 합의' 개념도 제시하고 있다던데 그것이 노동자-서민의 희생을 합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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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좀 고치기만 하면 계속
굴러갈 수 있을까.
By 이정환 on October 27, 2008 9:59 AM | Permalink | Comments (3) | TrackBacks (0)
경제 위기 보도, 진보·보수 아무런 차이도 없다.
종합주가지수 1000이 붕괴된 뒤 패닉에 빠진 것은 투자자들 뿐만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모든 언론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한국은행은 27일 오전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금리 인하를 검토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26일 긴급 경제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추가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실물경제 침체를 막겠다는 딱히 새로울 게 없는 대책을 다시 내놓았다.
27일 아침 주요 언론은 경쟁이라도 하듯 위기감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최근 경제 위기 관련 일련의 보도를 살펴보면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일정한 규칙을 발견할 수 있다. 몇 년 만에 최악이라는 등의 호들갑스러운 제목과 함께 주가 전광판 사진을 1면에 내걸고 증권사 객장의 투자자들 표정을 전달하거나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비판하고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좀 더 강력한 선제 대응을 요구하는 정도가 고정 레퍼토리다.
위기의 원인을 시장의 탐욕에서 찾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고 당연히 그 해법 역시 규제 강화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진보 성향의 경향·한겨레나 보수 성향의 조중동이나 논조의 차이는 거의 없다. 시장 원리를 강조해 왔던 경제지들도 마찬가지다. 세계를 뒤흔든 금융 불안이 자산가격 거품과 과도한 규제 완화, 감독 부실, 그리고 도덕적 해이 등이 불러온 일시적인 위기일 뿐이라는 이야기다.
어디에서도 자본주의의 과잉축적 시스템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개입으로 규제를 다시 강화하고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만으로 이를 테면 과도한 레버리지를 낮추고 자산가격 거품을 인위적으로 꺼뜨리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재정지출을 늘려 소비를 활성화하거나 세금을 풀어 금융회사들 도산을 미루면 이 만신창이가 된 시스템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주가가 무서운 속도로 폭락하면서 언론의 분석도 방향을 잃었다. 한 목소리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비판하지만 정작 아무런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정부의 개입이 위기를 키웠다고 비판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시장의 불안과 공포심리를 앞 다퉈 확대 재생산하면서 정작 한국 경제가 심각하다는 외신 보도에는 발끈해서 우리 경제는 아직 끄떡없다는 반론을 제기한다.
이런 언론이 외국인들이 유독 우리나라 주식을 더 열심히 팔아치우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때 42%에 이르던 외국인 지분 비율은 29.5%까지 떨어진 상태다. 최근 금융위기를 2년 전에 예언해 주목을 받았던 누리엘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는 최근 자신이 운영하는 웹사이트에서 "한국은 자금 흐름이 갑자기 막힐 경우 아시아에서 가장 취약한 국가"라며 또 "한국은 다른 금융위기로 향하는 듯 보인다"고 밝혔다.
루비니 교수가 지적한 우리나라 경제의 취약점은 높은 예대비율과 단기 외채의 빠른 증가, 경상수지 적자, 부동산 시장 둔화, 중소 건설업체와 소비자를 압박하는 비싼 유가와 식품가격, 수출 둔화에 직면한 대기업, 원화 가치 급락 등이다. 당장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가계와 금융 부실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명박 정부가 건설업 지원 방안을 내놓으면서 거품을 꺼뜨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정확히 미국이 갔던 길을 답습하고 있다. 미국의 위기는 곧 우리의 위기고 자본주의의 위기다. 투자자들의 패닉을 추종하면서 정부의 땜질 처방을 주문하는 언론 보도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모순을 은폐하고 모순의 해결을 가로막는다. 정부의 개입이 결국 자본주의의 기득권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임을 그리고 그 부담이 결국 노동자 서민에게 돌아올 것임을 이들 언론은 지적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조금만 잘하면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일까. 이를테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해임하고 유능한 누군가를 앉히면 상황이 달라질까. 환율 시장에 아예 개입을 하지 않았거나 또는 제때 잘 개입을 했더라면, 일찌감치 금리를 낮췄더라면 주가가 반토막 나는 일이 없었을까. 시간이 좀 지나면 위기가 자연스럽게 해소되고 다시 평화로운 일상이 시작되는 것일까.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김성구 교수는 최근 한 인터넷 신문 논설에서 "국가의 개입과 공적자금의 투입도 위기를 진정으로 극복하는 길이 될 수 없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국가의 개입은 과잉자본의 청산을 지체시키고 위기를 지연시켜 그만큼 경제회복의 동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결국 과잉자본과 부실자본은 청산되는 게 아니라 많은 부분 전가되는 것이며, 누군가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결국 국민들 세금이 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정치신문 최근호에 실린 노동자정치협회 논평도 주목할 만하다. "자본주의 공황은 단순히 경제정책의 문제나 금융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로서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법칙"이고 "신자유주의는 국가가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의 생존방식의 변화"라는 지적이다. "위기의 본질이 신자유주의나 케인즈주의라는 국가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