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의 에드워드 사이드 읽기
박홍규 지음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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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대한 나의 시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산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분량에 눌려 지금껏 먼지만 쌓여 있다.-_-;; 그러던 중 우연히 알라딘에서 이 책을 발견해서 읽게 됐다.

 이 책은 2003년 세상을 떠난 에드워드 사이드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박홍규 교수("오리엔탈리즘"의 역자)가 쓴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개론서다. 머릿말에서 그가 밝혔듯이 에드워드 사이드가 죽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고 무엇이라도 해야겠기에, 급하게 그에 대해 써놓았던 이전의 글들과 평상시의 자신의 생각의 편린들을 모아 펴냈고 그것이 하나의 책이 되어 나온 것이다.  


박홍규 교수의 말빨(?)탓에 쉽게 읽힐 수 있는 재미있는 개론서 하나가 태어나기는 했지만, 책이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성된 것은 아닌듯 싶고, 앞부분은 내게 조금 어려웠다. 사이드에게 영향을 주었던 이탈리아의 철학자 잠바티스타 비코에 관한 장이었는데, 철학적인 깊이가 없는 나로서는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다.(난 추상적인 개념을 별로 안 좋아하거덩-_-;) 


이 책에는 사이드가 입에 거품을 물고 말했던 "서구에 의한 동양개념의 날조", "문화적 제국주의",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론"에 더해 남한에서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를 "남한의 번역의 문제와 영어교육, 서구의 기준에 매몰되어 우리 자신을 잃어버린 인문학강단 "에서의 사례를 들어가며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내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나도 지금껏 영어의 문제나 서구의 여러 이론에 대해서 일종의 컴플렉스를 느껴왔다는 뜻인데, 서양과 동양을 가르는 이분법 자체가 사라짐으로써 내가 느끼던 컴플렉스 또한 사라졌던 것 같다. 


사족) 이 책속에서 사이드가 자신의 지식인론(지식인의 고향은 세계)을 말하며 인용했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고향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도 부드러운 초보자이다. 모든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강한 사람이다. 그러나 전세계를 하나의 타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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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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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가 읽고서 권해주길래 지하철에서 읽었다. 장편이라기 보다는 중편에 가깝다. 그만큼 분량에서 부담이 안되는 박민규씨의 재치가 느껴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미국중심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를 슈퍼맨, 배트맨, 로빈, 아쿠아맨 등 만화속의 영웅들을 통해 그려냈다. 그의 첫번째 장편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그의 대표작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비해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겉은 황인종이지만 머릿속의 관념은 순종백인임을 자처하는 주인공 "바나나맨"의 독백을 통해 소설이 서술되는데, 그의 독백은 의미심장할지는 몰라도 독자를 웃기지는 못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분위기와 주인공의 독백이 연상됐다. 그만큼 이 소설의 서술은 담담하다. 하지만 그것만큼 가볍지는 않으며, 소설안에서 자신이 쓰고자 하는 바를 위한 준비도 철저한 것 같고, 일단 하루키보다 재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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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가족 이야기
조주은 지음, 퍼슨웹 기획 / 이가서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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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올해 5월부터 "대화"라는 기획연재가 시작되었다. 그 첫번째 코너로 이 책의 저자인 조주은씨와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의 저자 전순옥씨와의 대담이 "우리는 왜 그렇게 혁명을 갈구했나"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다. 그때 너무나 재미있게 기사를 읽은 나머지 두권 모두 구매를 했었는데 아직 읽어보지도 못하고 쳐박혀(말 그대로다. 포장박스째 방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있던 걸 몇일 전에야 읽게 되었다.

70년대 여성노동운동사를 학술적 방법으로 다룬 전순옥씨의 책은 다소 읽기에 힘들 것 같아 조주은씨의 책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마치 우리가족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아 책장을 넘길수록 흥미가 더해왔다. 왜냐하면 내 고향은 울산으로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대학에 입학하기까지 20년을 살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가 조주은씨가 현대자동차가족의 일상을 지적할 때마다 나는 "맞아. 맞아"라는 말을 연발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것들이라 너무나 당연스럽게 생각하거나 으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부분을 조주은씨는 날카로운 시각으로 집어내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낸 이 책의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저학력 저임금의 노동과 넉넉지 못한 가정환경의 미혼여성들에게 결혼이란 일종의 탈출구 내지는 환상으로 작용한다는 것
  2. 대기업에서 일하는 남편의 상대적 고임금수준과 기혼여성을 퇴출시키는 노동시장의 상황이 기혼여성들에게 전업주부의 길을 강요한다는 것
  3. 노동자계급내에서 상대적인 고임금이 자녀들에 대한 계층상승욕구를 충동한다는 것
  4. 인간의 노동력을 극도로 착취하는 노동환경(2교대 혹은 3교대 컨베이어작업)에서 남성노동자들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교묘한 좋은아내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
  5. 이러한 기제를 통해 가정중심성이 강화되고 있으며 여성은 자본과 가부장제에 대해 이중으로 착취를 받고 있다는 것
  6. 노동자간의 집단거주방식이 올바른 형태의 여성공동체형성을 위한 기반 혹은 여성자신을 억압하는 기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등등...

나는 어머니로부터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무슨 일을 했었고 학교 다닐 때의 추억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거의 들은 바가 없다. 아마도 어머니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가정형편은 힘들었을테고 아버지와의 결혼이 단조롭고도 고난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의미하였을수도 있다. 또한 세명의 아이들에 대한 양육과 울산이라는 기혼여성노동자가 일자리를 구할 길이 막막한 환경 속에서 전업주부로 생활이 강요되었을테고 남성중심의 지역문화와 좋은 아내를 강조하는 기업들의 전략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아이와 가정에서 찾으려고 했을 것도 같다. 그렇게 보면 어머니가 자식들에 대해 그토록 큰 집착을 품고 계신 이유와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이웃들과 거의 경쟁을 하듯 교육에 관심을 가지셨던 이유도 쉬 납득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퍼뜩 이제는 어머니 자신의 삶을 찾도록 도와 드려야 할 때이고 좀더 어머니와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말씀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머릿속에 그리고 몸 속에 녹아있는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 급선무라는 것도 알겠고 말이다. 근데 맨날 생각은 이렇게 해도 부모님 앞에 가면 말은 왜 반대로 나오는지... 갑갑하다. 머리 속에 든 것과 실제 행동을 일치시키는 일은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숙제인 듯 싶다.

이런 이유로 책을 읽다가 먼저 눈길을 끈 건 조주은씨의 특이한 인생내력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가정에서 성장하여, 서슬퍼렀던 공안당국의 탄압과 뜨거운 운동권적 투쟁열기가 뒤덮고 있던 80년대 대학이라는 전장(?)을 현명하게(?) 잘 넘기고 사회로 진출했던 여성이 갑자기 자신의 생활을 통해 늦깎이 운동권이 되다니.. 또 여성학을 공부하기 위해 젖먹이 아이들을 이끌고 상경을 감행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삶을 그만큼 진지하게 바라보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직접 목격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바꾸기 위해 일어서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육아와 가사의 쳇바퀴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에 대해 자각하고 현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저자의 경험을 통해 삶의 문제를 제기했기에 훨씬 흥미롭고 값진 저작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서 노동 주체를 상정해야만 남성들을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여성들의 사회적 노동이 가시화되는 계기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이 남녀 모두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한 노동의 기회를 갖게 되고 가정 내 책임을 공유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감명깊은 말이다. 하지만 레니님이 말했듯 당신의 투쟁이 나의 투쟁이 되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어려운 문제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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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덫 세미나리움 총서 1
한스 피터 마르틴 외 지음, 강수돌 옮김 / 영림카디널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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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걸려서 읽은 책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2인이 쓴 책이기도 하고, 옮긴이인 강수돌 교수가 번역을 잘 하기도 해서인지 문맥이 쉬우면서도 잘 읽히긴 했다. 그래도 굵기나 무게가 좀 나가는 책이어서 출퇴근 시간에 오며가며 읽기에는 부담감이 느껴진 건 사실이다. 그래서 머리맡에 놓아두고 잠들기 전에 잠깐씩 읽다가 어제서야 끝장을 봤다. 한번에 원샷으로 읽지 못하고 오랫시간에 걸쳐 야금야금 읽어서인지 뭘 읽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이런~~~-_-a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실체와 그 대안에 대해 서술한다. 언론인 저자들답게 유럽과 미국의 풍부한 사례들과 인터뷰들을 섞어 써서 그 양은 상당히 늘어났지만, 물 흐르는 듯 쉽게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구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세계정세를 파악하는데도 상당한 도움을 주는 책이다. 또한, 우리보다 먼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폐해를 겪은 독일에서 1997년경 씌여진 책인만큼, 책의 곳곳에서 현재 우리의 모습과 그 대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들는 유럽연합과 국제연합 등 세계기구 차원에서 국가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국제적 투기자본의 흐름을 차단하고 정치적, 생태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자고 역설한다. 대안은 있으되 자본과 권력자들에 의해 행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식이다. 하지만 그 국가 혹은 정부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난 아직 어떤 확신도 없고, 그런 이유로 저자의 말이 가능할지의 여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의해 갈수록 우리들의 삶이 팍팍해지는 것이 사실인만큼 무언가 대안이 있다는 것이 내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세계화론자다. 하지만 "저들"처럼 "자본의 세계화", "범죄의 세계화", "착취의 세계화"만이 아닌 "자유와 평등의 세계화", "인권과 생태의 세계화"를 원하는 진정한 세계화론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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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트로이카 - 1930년대 경성 거리를 누비던 그들이 되살아온다
안재성 지음 / 사회평론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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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파업'의 작가 안재성씨가 1930년대 조선내 사회주의자들의 자취를 뒤쫓아가며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조선내 자생적 사회주의 그룹이었던 "경성트로이카"를 이끌던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동지들이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라는 章에서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고 있다. 1990년대초 소장파 사학자 김경일 교수에 의해 발굴되어 비로소 활자로 기술된 "이재유 연구"와 이효정 할머니(경성트로이카조직의 유일한 남한내 생존자)의 아들 박진환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작가인 안재성씨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보고 허탈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이재유는 해방을 1년 앞둔 채 감옥에서 죽음을 당했고, 해방정국과 6.25를 거치며 남로당 총책이었던 김삼룡과 빨치산 총대장으로 활동했던 이현상도 남한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또한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순박한 이상주의자 이관술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일제의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버림받고서 설자리를 잃고 죽어갔다. 박헌영 또한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북한에서 총살당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혁명적 좌익세력이 생각났다. 인류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페인의 혁명적 좌익을 탄압하고 심지어 사살했던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생적이고 현장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인 경성트로이카를 견제했던 국제파의 모습이 과히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숭고한 의미를 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후에도 일제하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와 그들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2004년 6월의 어느 초여름밤 경성트로이카 조직의 일원이었던 남한내 유일한 생존자 이효정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 그의 삶은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모진 핍박만 받았던 한많은 생이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등진 것일까? 세월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건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딱딱한 역사서같은 구성을 피해 소설적 장치를 차용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씌여졌으며, 인물을 중심으로 당시의 사회주의 운동의 전개과정을 시대순서에 따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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