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바다

가슴을 말리다
                                                          4343.4.9 자의식이 비에 젖다
작년 이맘때 말려둔 가슴으로
눌러 담은 도시락 같은 빽빽한 아침에
승산 없는 시간들을 발라내고
오늘이라는 말기 현상을 밀어내느라
난 변기에 앉아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읽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나의 자양분은 식사도 아니고 밀어내는 변도 아닌
눌러 담은 도시락 같은 현상에 기인하는 이 빽빽한 분위기가 나를 승산 없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그래서 변기에 앉아서도 구린내 나지 않은 오늘은 내 미래의 말기현상이자
어제의 내일이자 오늘의 변소이다

사람을 말려 죽이는 형벌이 있었다
더 한 형벌은 가슴을 말리는 것이다
전자는 형장에서 행해지며 후자는 일상에서 행해진다
그래서 일상은 형장 보다 무서운 형벌이다

나의 노동은 머리 속을 말리며 동시에 모든 양심을 말린다
오늘 석면을 흙 속에 섞여 버리는 일에 가담했으면서도 아무 말 못했다
가해자도 가담자도 방관자도 모두 침묵으로 암암리에 양심을 달랬다
의식은 죄요 무의식은 죄가 아니다
노동은 의식을 말려 무의식의 상태를 만든다
이 정권에 들어서 나의 분노도 준설되어 말라가는가
무서운 형벌이다

멀리 비가 오는 풍경을
아무 생각도 없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풍경을 작년 이맘때 한번 느낀 이후 일년만이다
노무현이 죽은 후다
그때도 비가 왔었다
가슴이 아팠다
바싹 마른 가슴이어서
비의 자국 선명하고 더 아프게
모든 마른 삶의 표면에서 튀어 오르는 빗방울 때문에
현상은 황사 뒤처럼 얼룩 가득했다

그래도 한때 마른 가슴으로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행복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