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카<안대>
 

눈에 밟히지 않는
                                                     4343.3.19
                                                      첫 여름, 어제 차가웠던 바람, 오늘 시원했다

일을 하다가 눈에 금속조각이 박혀, 한쪽 눈을 감고 다니는 동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근래에 들어 내가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TV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고
눈을 다쳐 형평성 없이 돌아가는 세상 꼴을 반만 보고 살았다는 것이다
좀 덜 시끄럽고, 보지 않아도 될 것 조차 안 보았으니 그나마 머리가 맑다는 것이다
검은 눈동자에 박힌 아주 작고 검은 쇳조각은 위장색 때문에 쉽게 눈에 띄지 않아
눈이 아프면서도 쉽게 발견하지 못하고, 봄철이면 겪게 되는 꽃가루 알러지쯤으로 생각한
나의 판단 미스로 늦게 가게 된 안과, 의사는 큰일날뻔했단다
지금도 눈동자에 새살이 돋지 않아 아직도 충혈된 눈으로 지내고 있지만
이래저래 이번 봄의 생산성은 떨어지는 것이 분명하다

역사는 가치관이 형성되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처럼 아물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역사적인 가치관은 그 후에 수정보완을 거쳐 시대성이나 영웅을 조작한다
그러니 역사는 패인 체 잘 낮지 않는 상흔이다. 그렇기에 자주 살펴보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습관 같은 오랜 가치관 때문에 판단을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최근 한달 간 지속된 천안함 사태에 대한 보도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백령도 근해에서 몇 차례 일어난 일련의 남북 대치 시리즈 때문에 우리의 인식은
누군가 북한의 도발이라고 모든 것을 지정하거나 가정하고서 우리의 머리에 도랑을 파고
인식을 심어도 불편해 하지도, 새로운 것으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의학적으로는 뭐라 하는지 모르지만 이런 뇌의 현실성 때문에 그 모진 상처를 안고도 견디며
인간은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달포 전에 죽은 후배의 일은 거의 잊고 산다

산 자는 살아서 눈에 어른거리고 죽은 자는 뇌리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형평성을 생각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산 자가 짊어지는 상흔이고
일기 같은 역사일 뿐이다
그런데 이 가치관 없는 이상한 나라의 영웅 양산체제는 ‘천안함’ 같은 현실을 만나 도드라진다
민주주의가 ‘천안함’ 처럼 두 동강 났을 때 우리는 울었던가
중도적 진보의 가치에 천착했던 ‘노무현’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두 동강 낸 어뢰는 검찰이었고
개발 권력의 기뢰에 의해서 좌초된 용산의 참상은 또 어떤 것이고
우리 모르게 다가와 우리 아래에서 터져버릴 개발부채의 폭뢰를 우리는 감지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난 칼을 든다
내 눈동자에 들어가 나의 판단을 무디게 한 검은 쇳조각처럼
차가운 가슴엔 얼음 칼을, 뜨거운 가슴엔 태양의 칼을, 몸과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자에게는 삼지창을, 무딘 자에게는 펜촉처럼 따끔한 칼을, 듣지 않는 자에게는 꽤 뚫을 칼을
질긴 놈에게는 녹이 슬어 들지 않는 칼을, 단단한 놈에게는 작두 같은 칼을

난 ‘천안함’의 그들을 가엾게 여길 뿐 애도할 수는 없다
다른 이의 죽음을 애도할 때는 공감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눈에 밟히기에는 믿지 못할 국가가 너무 깊숙이 개입했고 다른 죽음과 형평성도 문제이고 국가 주관은 언제나 냄새가 고약하다
삶은 여러 차례의 고비가 아니라 한차례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끝나고 멈추는 것이다
인생엔 수많은 죽을 고비가 있다. 그들은 그 고비를 넘지 못하고 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죽음 이상의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의 역사적 가치관을 바꾸는 죽음은 지금도 도처에 있다
눈에는 밟히는데 언론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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