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폰카<점봉산상고대>
미안합니다
잘 계시지요
꽃 무덤 길을 따라
겨우내 꼬인 몸으로 꼬아놓은 언어들을 찾으러
산내리바람이 창궐하는 구름의 출생지에 점봉산에 다녀왔습니다
정상엔 사월이 다가도록 상고대가 만발했습니다
거기 꽃들의 덜 깬 의미 희미하고, 몸이 덜 풀린 개구리들이 떠내려와 여울을 막고선 바위들 틈에 쌓여, 마침 서로의 체온을 포개며 사랑을 덤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방금 만들어진 구름이 몸 안에서 발화하여 번지는 불처럼
봄 꽃의 다비를 준비하고
동공을 태우는 숲 너머
동해에서 수런거리는 바람이 진달래 불씨에게 말을 건네고
수많은 왕벗나무 불티들은 불 속의 필연을 따라
몸 안에서 산화하는 불로 다비하신 서로의 몸에서 몸으로 발화하여
막 몸을 여는 장관을 신찰 낙산사의 경내에선 이젠 볼 수 없습니다
봄은 오는 것일까요
당신이 거두어간 후로는 봄은 영 오질 않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붉은 눈물이 툭툭 떨어지는 동백 잎을 보면
지독히 푸른 감정이 배경이 된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꽃이 피고 진다 해도, 오른 팔이 저리면 돌아 눕듯이
한쪽으로 몸을 기울여 살순 없습니다
한갓되이 실버들 바람에 운다는 미당의 실버들이야말로
그의 봄날에 일제 부역에 대한 미련이나 참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봄일랑 그냥 두고서 붉혔던 감정들 툭툭 털고서 잎의 배경이 꽃을 위한 것이 아니듯
우리 배경이나 밑그림으로써 인생의 불씨나 댕기며 살면 그만인
이 봄날은 왜이리 추운지요
점봉산에 오르며 생각했습니다 오르는 것들은 모두 바닥을 향해 가는 것들이라고
오로지 땅바닥을 보고 어딘가에 있을 정상을 향해 오르고, 내려갈 때도 바닥을 봅니다
오르고 내리는 것은 불안한 심리상태이기에 바닥을 봅니다
평지를 걸을 땐 바닥을 보지 않고도 주변을 살필 수 있는 것은 평정심에서 오는 평안 때문입니다
마음이 평안하면 바닥을 생각하지 않게 되지요
예전에 당신의 마음바닥을 들여다 보려던 나의 속셈들은 모두 나의 불안에서 기인했음을 압니다
사람은 절대 꽃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꽃을 보는 당신은 참 평안한 사람입니다
가슴이 답답할 땐 억지스런 생각이라도 한 타래 굴러 왔으면 좋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존재감은 기다림의 연속이고
실버들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내가 늘어뜨린 영혼의 뿌리는 공중에 매달려
헛되고 한갓 진 몸을 꼬며 실종된 봄은 몸 안에서 타고 있습니다
27년 전 당신을 거절한 날들 모두 미안합니다 그냥 미안 합니다
고얀히 미당을 끌어 들여 사죄합니다
잘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