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빈 봄
4343.삼월 보름
봄은 따뜻한 겨울의 연장이거나
추운 봄에 대한 겨울의 상대적 박탈이다
지리산에 사는 눈치 없고 약아서 호의 없이 지내는 후배한테서
뜬금없이 고로쇠(骨利水)수액을 보내주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자신이 속한 마을 공동체에서 판매하는 수액인데, 물이 잘 올라? 맛이 기막히고
아주 오래 전 함께 지리산 달마봉 등반 후 내려오다가 고로쇠나무 숲에서 형님하고 마셔본 그 맛이라나, 아울러 판로가 있으면 연락을 달란다
올 봄 비가 많이 와서 맛이 묽을 텐데, 골빈(骨貧)놈
단칼에 거절의 변(辯/便)을 토했다
인간에게 혈액이 부족할 때 물로 대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왜 고로쇠나무에 호스를 연결해 수액을 마실까
수혈을 호스를 통해 입으로 한다고 생각해 봐라
너의 피를 다른 이가 입으로 마셨다고 하자 우리는 그것을 흡혈이라 한다
모든 것을 다 먹으려 하는 인간의 입은 흡혈의 바늘 끝이다
바늘 끝 같은 혀를 뱀의 혀라고 한다
뱀은 참으로 깨끗한 동물인데, 미안하지만 너 때문에 욕먹는다
스스로 생태 전문가 운운하며 산을 허물고 깎아 만든 집에서 나무들 배어낸 자리에 채소나 심어 가꾸며, 산중에서 마구 채취한 자연의 산물들을 착취만하고 있는 너의 생태관과 자연에 대한 철학은 무엇인가
허긴 너뿐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생태전문가 중 몇몇은 도시를 떠나, 파괴 되지 않은 자연을 파괴해서 각자 개성 있는 생태학습장을 겸한 저택을 만들어 ‘자연과 함께 살기’ 합네 하며 감히 사람들에게 자연과 생태를 가르치겠다는 버르장머리, -그곳의 풍토나 미래의 기후변화에 조화롭게 적응할 수 있는 나무나 수종들은 아랑곳 없이 일반 조경으로 가득 찬 나무와 텃밭의 위용을 자랑하는 그들, 다른 한편은 자연스러움을 강변하면서도 끝내 산을 벗삼아 산다며 산속에서 도시같이 사는 자들, 그들이 존경해 마지 않는 ‘월든’의 작가 ‘헨리 소로’의 단칸방은 나무 한 그루 방해 하지 않는 곳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른 나라의 생태 전문가들은 도시 주변의 버려진 땅을 재개발해서 생태지식을 접목한다는데
우리의 황당한 전문가님들 멀쩡한 곳을 생태화 한다고 난리이다
이 정권의 사대강 사업과 다른 것이 무엇이냐
제발 포전밭이나 일구어 농부 흉내나 내지 않았으면 하는데, 숲과 정원을 가꾸는 노력의 일부로써 포전밭을 일군 ‘타샤 튜더’의 이야기는 제발 인용하지 말아라
정말 자연을 사랑하며 생태적으로 살고자 한다면 좁은 나라에서 쓸데없이 내 집을 짓지 말고 남이 지은 집이라도 잘 고쳐 살며, 도시의 후미진 곳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일에 몰두하여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자연을 도시스럽게 만들어 살지 말고, 도시를 자연스럽게 만들며 사는 것이 옳은 것 아닐까
쓸모 없는 땅에서 ‘천리포수목원’ 을 이룬 이의 교훈을 너는 아느냐
아, 지리산에서 고로쇠나무 수액 비린내가 진동하는구나
고로쇠나무에 조금 상처를 내어 마시던 예전의 산사람들과 호스를 꼽아 뽑는 행위를 동일시하고 싶지 않다만, 이건 아니다.
난 소젓도 안 마시고, 모든 채소는 땅이 있어도 사먹고 사는 사람이다, 그것도 비싸디 비싼 ‘초록마을’에서, 믿지 못할 것이라도 믿고 산다
삶에 대한 믿음이 생태(生態)의 기본이고 사물에 대한 진지함이다
-이상 여기까지-
눈치 없는 놈 한마디 더한다 ‘형님 저 남원시내로 이사했어요’
헐값으로 산에 지은 집, 비싼 값에 팔아먹었다는 것을 내 모를까 봐
골수(骨水)도 없는 놈
능청떠는 골 빈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