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구폰카질<속초중앙시장 막걸리집 알몸졸업 격론중인 양반들>
알몸으로 빵꾸똥꾸(저급한 사회를 위한 퍼포먼스)
4343. 정월 초 닷새
저 맞지도 않는 옷을 입고 돌아댕기는 알몸 총리는 그만 봤으면
살아있는 것은 모든 것들은 알몸으로 산다
그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누더기가 될 포장물에(옷) 집착한다
뭇 이들이 애완동물들에게 입히는 옷이 난 왜 그리 불편해 보이던지
‘아마존의 눈물’이란 프로그램에 집중할 때 나는 그들의 삶보다
그들의 알몸에 더 열중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문명이란 몸을 덮을 껍질 몇 장을 수 천년 동안 디자인한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글들은 이 문명의 정신을 발가벗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알몸의 문제는 정치적이지도 문화적이지도 형벌적인 것도 아니다
단지 그 아이들이 세상으로 받은 스트레스에 의한 일종의 순간적이고 찰나적이며 집단성에 의한 의식의 의존도가 높은 도발일 뿐이며 또래집단의 놀이에 불과하다
그 아이들의 행위는 자신들에게 덧입혀진 모든 옷을 찢음으로써 인간의 야수성의 퍼포먼스를 드러내고, 동시에 집단적인 가학에 동참함으로써 자신보다 약한 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본능의 변태성을 체험한다
그 나이 그 시절이 아니면 결코 도전하거나 시도해볼 수 없는 그들만의 행동과 행위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보낸 것이다. 가해와 피해로 이루어지는 반목성은 결국 그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환경적 요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그들만의 잘못은 결코 아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해법이지만
처벌이라는 물리적인 가학으로 그들의 트라우마를 틀어 잡을 수는 없다
아울러 알몸으로 시위를 하던 행위가 예전에는 놀라운 일이었지만 지금은 보편화한 것을 볼 때
그들만의 알몸 졸업파티가 언젠가는 문화가 될지 모르는 일이다
졸업식의 알몸은 그들만이 가진 한때의 추억이며 행사이고 가벼운 일탈일 뿐이고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현실에서 튀는 행위는 시간이 지나면 곧 보편적인 것이 된다
교복이라는 폭력에 가리워진 그들의 일탈을 이렇게 시끄럽게 다루는 일부터가 그들에게 가해지는
더 커다란 알몸 폭력임을 알아야 한다
피해 당한 아이들이 정신적인 충격은 때로는 추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은 구타로 얼룩진 군대를 갔다 온 모든 남자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살아가며 하는 군대 이야기 속에서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즉 무시무시한 폭력일지라도 승화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 이 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때로는 인간에게 가해진 모든 물리적인 것들을 극복해서 살아남는 것이 인간이었고
그것이 우리를 지구상에서 알몸으로 살지 않아도 되는 동물이 되게 한 것이다.
난 속옷을 입지 않는다 옷을 한번 더 걸쳐야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하고
옷을 자 사지도 않을 뿐 아니라 혼자 살기에 집에서는 거의 벗고 다니고 잠자리는 알몸으로 자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고 가끔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은 알몸으로 밖에 나가 비를 맞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우리나라에도 토플리스 해변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옷이 몸을 가리고 보호하는 기능을 벗어나 신분과 직업과 빈부의 차이를 나타내는 현상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가 본능에 충실해 가는 과정이고
그것을 벗기거나 끌어내리려 하는 욕망 또한 본능만이 가지는 가학적이고 인간적인 면모일 뿐이다
모든 상황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즐기는 자와 즐김을 당하는 자가 있을 뿐이란 것은
사디스트와 마조히스트를 떠나, 우리가 목격한 모든 알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대추리에서 쫓겨난 몸, 용산에서, 세종시 터에서, 사대강가에서 농사 짖다 쫓겨나는 몸들 모두가
알몸을 강요하는 사회가 아니라 아예 벗기는 이 시대에 즐김을 당하는 알몸들이다.
누가 그들을 벗기는가? 우리 안에 잠재한 개발이익의 분배에 대한 은밀한 욕구 아니던가
여배우가 벗는 것이 최후의 수단이 아니고 즐거움인 시대에
이 졸업 알몸 문제를 전 사회적인 문제로 몰고 가는 것은 그저 언론의 밥벌이일 뿐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언론의 또 다른 알몸을 본다
다시 한번, 그들의 일탈이 강요 강제와 피해와 가해로 얼룩졌더라도 그것은 그들만의 일이다
훔쳐 볼 것보다 드러내 보이고 찢는 것이 건강해 보인다
별 볼 것도 없는 사진 몇 장 가지고 호들갑을 떠는 이 사회의 알몸 신문들은 악덕 포주이다
나는 엄마의 몸에서 알몸으로 쫓겨난 후 울고 불며 엄마 젖 때는 것을 마지막으로
엄마의 알몸에서 떨어져 나와, 엄마의 몸을 알몸이 될 때까지 사랑이란 명분으로 착취하며
지금까지 누군가의 몸을 벗겨가며 알몸으로 세상을 날로 먹고 살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겨울 산을 좋아하고 나목의 쓸쓸함을 좋아한다
모든 것을 벗고 동안거에 들어간 알몸의 계절에 벌어진 이 사건은
교복을 벗고 알몸으로 사회에 던져지는 아이들의 처연함을 위한 퍼포먼스로 여김이 마땅하리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미치지 않으리라는 보장 있는가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가벼운 저항으로 사건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대부분 문화가 되기도 한다
몸으로 밖에 만들어 낼 것이 없는 이 못마땅한 현실을 우리 스스로 벗겨보기나 하자
알몸은 현실을 벗고 순수함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 아이들의 잠재적인 욕구 아니었을까
이 참에 졸업식을 가운만 입고 들어가서 졸업식이 끝난 다음 훌렁훌렁 벗어보는 것은 어떨까
알몸이나 섹시함이나 즉흥과 성형을 팔거나 과시한다고 해서 저급한 사회가 아니다
정말 저급한 사회는 자신의 매력을 저속한 것에 비교하는 사회인 것이다
결코 뛰어넘지 못할 것에 둘러 쌓여 있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회
순 내숭의 알몸만 가득한 사회
아이들아 너희 알몸으로 빵꾸똥꾸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