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독인 시대
4342.11.4
아이야 빛이 쇠락한,
아직도 판단이 장애인 수묵의 시대이다
낮은 딱딱한 낯빛으로 검고 밤의 현상이 오히려 따뜻하고 밝구나
시대의 마음에선 도저히 켜지지 않던 불들이 점멸하는 밤에 천정에서라도 켜지니 말이다
낮 동안 폐위된 빛들은 도시의 옥상아래 객관적인 평정을 유지한다
현실이 읽히지 않는 난독인 것은 조도 때문이고 강렬한 빛은 우리를 주눅들게 하고 불꽃놀이처럼 현혹한다 하늘이 파란 것은 빛의 산란으로 지구만의 환타지이기 때문에 슬픔이고 우울하다
우리의 눈은 이 창백한 빛에 적응했을 뿐이다
빛은 어둠 속에서 와서 우리를 스쳐지나 어둠으로 사라진다
우리에게 존재하는 빛은 언제나 새로 도착하는 빛이다. 태양은 그저 발산하는 소멸이다
빛은 공간을 채우지 못하지만 어둠은 존재의 모든 곳에 스며들어 구석까지 채운다
그래서 빛은 어둠에서 태어난 자식이고 우리는 모두 어둠 속에 살면서 빛을 지향한다
재탕되지 않는 빛들은 어둠으로 돌아가 소멸하거나 불변하는 시간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어둠의 공간은 무한하고 우주는 빛을 재생산하며 소멸하는 유한한 시간이다
시간과 빛은 시작함으로써 존재하는 허구이다
어둠은 형언할 수 없는 꿈들의 보금자리이자 시작하는 빛들의 구유이고 자궁이며 사색의 근본이다
어둠은 노동의 무게를 내려놓는 자리이고 시간과 생명이 걸어 나오는 설계도이며
빛의 반대편이 아니라 소멸되는 곳이며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진리이고 생명의 생산지이다
빛은 반듯이 사라지며 착시의 근원이고 딱딱하지만 어둠은 부드럽다
빛이 없는 곳에서는 감각에 의존한다 난 그 어둡게 반복되는 보드라운 감각을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난 언제나 부드러운 감각을 익히느라 어둠을 읽고 반복해서 읽었다
여러 번 읽어야 하는 책은 대부분 낮과 빛의 지식을 위한 책이다
풀리지 않은 의문 때문에 다시 읽는 책과 풀리지 않아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은 교과서이다
교과서는 지나가면 다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어둠의 불온한 권장도서는 읽지 말라고 해도 읽으며
동화책이 우리의 양식에 끼워 넣고자 했던 빛의 관념들은 더 이상 유통되지도 읽히지도 않는다
헛바퀴처럼 수없이 소멸되며 반복되어 재생산될 뿐인 환타지이다
어둠을 반복해서 읽을수록 쓸데 없이 깊은 곳이 바로 우리의 터전임을 알려준다
쓸데 없는 것도 많이 읽어라 그래야 쓸데 없는 빛으로부터 너를 분리하며 고양시킬 수 있다
나처럼 쓸데 없는 것을 집착하며 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시인은 시인만이 읽는 시를 쓰고 소설가는 일상보다 늦게 도착하는 서식을 재탕한다
편안한 글이 나오지 않을 때가 막 되 먹은 시대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단단하다
무언가 각오하고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은 참담하지만 또한 동력이다
격정적인 글들이 편한 환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듯
강력한 동기나 추진력을 주는 이 사회를 나는 존경한다
과거로 회귀하며 우리의 피를 깨우는 사람과 추억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전자를 존경한다
그래서 투지가 혈색이고 대중이 난독인 이 시대를 사랑한다
아이야 네가 세상을 사랑하려면 세상이 읽히지 않든가 네가 읽히지 않아야 한다
눈이 부셔 읽지 못하는 글을 쓰려고 사는 나는 어두운 글에 시력도 약해졌다
내 할말은 책을 읽지 말고 읽기를 책 쓰듯이 하고
빛의 책보다는 어둠의 사색을 즐겨 하며
공부로 놀지 말고 놀기를 공부같이 하라는 것이다
단지 네 건강하고 소중한 삶, 그 시간의 길쌈과 공간의 확보를 위하고
빛의 난독인 시대를 건너가는 어둡지만 부드러운 감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