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합에 넣어둔 여자

취향 다른 여자들이 하나씩 사놓고 떠난 가구들처럼
나의 진보는 폐기될 가구들로 가득하고
또다시 구속된 여자를 빼내어 난곡의 빈집으로,
이사 차 짐칸에 세간처럼 실려갑니다
짐들을 누추한 빈 몸 칸 칸에 척박하게 싣고 집값에 쫓기며
조화롭지 못한 이념들을 주어 담은 상념의 피난처엔
설합 없는 가구처럼 몸을 열고 밖을 도는 여자가
파도 치는 해변 어디까지 목놓고 기어가는 바람의 세간
비와 구름의 서재 밖에 서 있었습니다

어던 호기의 옷가지와 담아놓을 죄도 없는
열람처럼 설합들은 분주했고 누구라도
떠날 땐 언제나 설합이 열려있었다

골목에 도열한 안면 많은 낮은 번지 앞에
방송국 여자가 불온한 서적 숨기던 삼단장을 버려버리고
빳빳한 초저녁은, 점점 어두워지는 이념처럼 빳빳했습니다
건너편은 보지 않는 진보처럼 꼿꼿하게,
판자집들 다 떠나고 빌딩형 판자집이 들어선 난곡 말랭이에서
떠오르는 달의 맨 얼굴을 바라보던 앙상한 표정으로
관악산을 막고선 같은 높이의 설합 없는 건물의 필름 같은 피사체를 보며
그 칸 칸에 숨겨두었던 여자들이 하나씩 가슴을 끌 때까지
이사 짐을 날랐습니다

진보의 빈 설합들을

너희는 왜 나의 빈집에 들어서면 설합을 먼저 열었는지
넣어둘 여자밖에 없던 나의 가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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