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가의 꿈을 꾸는 친구들을 위해 쓴... 것 같지만, 사실은 이건 '책을 좋아하는, 번역에 환상이 있는 모든 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더 넓게 보면 '싱글맘으로 프리랜서로 일하며 딸을 키우는' 유명한 번역자의 에세이에 공감가능한 독자들까지. 

 첫 문단부터 압권이다. 

   
  몇 해 전 일이다. 외할머니 장례식에서 만난 먼 친척 할머니에게 엄마가 내 소개를 (빙자한 자랑을) 했다. "야가 우리 망내이 딸인데 번역 일을 해." "버녁이라 카는 기 머이껴?" "아, 그거슨 일본글을 조선글로 바꾸는 기라." "아이고. 기술도 잘 배았니더. 딸내미한테 우째 그클 존 기술을 갈찼니껴."  
   

 '존 기술'을 가졌다는 민망한 칭찬에 권남희씨 '어려운 기술' 이라고 손사레를 친다. 아동문학가의 꿈이 있었다고, 지금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아, 자뻑이 민망하지만.. 나도 딱 그 꿈과 그런 생각을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더랬다. 아마 이쪽 직업을 갖는 사람들의 기본 테크가 아닐런지..) 이 역자 사실 몇몇 역자 후기로 내 기억에 남아있다. 권남희 씨가 직접 '번역한 책 중 몇 권을 꼽은' 책 뒷부분에도 언급되는 <기타노 다케시의 생각노트> 역자 후기는 덤덤했지만 역자가 가지고 있는 감성과 인생에 대한 관조랄까 할 무엇들이 한 데 들어가 꽤 짠하면서도 멋진 후기였다. 이런 글들은 정말 호불호가 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샘들에게 메일 쓸 때도 '팬임을 주저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호'라고 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나같은 팬들 많으실거다. 블로그와 온라인 글쓰기를 즐기는 그녀의 모토가 '무학자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글쓰기'였다는 것은 이제 알았다. '부모님이 내 글을 읽으실 일이 없지만, 언제나 기준은 무학자인 그분들' 겸손함에 숨겨진 내공.

   
 

종종 이런 메일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당신은 어떻게 번역을 시작하게 됐는지 그 과정과, 출판사와 번역회사의 번역료 차이와 어떤 식으로 작업을 수주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납득이 가게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속으로 내가 왜 댁을 납득시켜야 하며, 어째서 내 과거를 설명해 주어야 하느냐고 주먹을 불끈 쥔다. 하지만 현실은 "어쩌다 보니 번역을 하게 됐네요. 번역료 문제는 영업 비밀입니다. 이해해주세요. "아하하" 하고 '무난한'답장을 보낸다. 다른 일을 권한 나의 답장에 말년 병장님은 하지 말라고 하니 더 하고 싶다고 다시 메일을 보내왔다. 나는 이번에는 이모티콘 찬란한 답장을 보냈다.  

"그만한 열정이 있으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요. 열심히 하셔서 꼭 원하는 꿈 이루시기 바랍니다 ^^" 

참으로 1970년대 새마을운동스러운 멘트이긴 하지만, 원하는 대답이 그것이라면 그 말 한마디 못 해주리.

 
   

아마 이게 이 책의 원고들의 집필 동기가 아니었을까 살짝 추측기도 해보는, (아.. 정말 저런 메일은 답이 없다. 얼마나 많이 저런 질문을 받을까) 사실 책을 읽다가 커피점에서 손뼉을 치며 웃어버렸던건 아래 대목이다. 아마 업계 사람들이라면 웃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래서 이 책은 출판 이야기기도 하다. 편집자와 역자, 그리고 출판사, 출판시스템.. 역자의 세계.. 

   
 

 아아.. 순간 절망. 아니, 그 책은 판권 경쟁이 그렇게 치열했다면서, 왜 하필 많고 많은 출판사 중에 문학동네에 간 거냐고요 (사장님 죄송합니다.) 덕분에 문학동네의 기대작에서 순식간에 저 뒤로 밀려나버렸을 나의 <애도하는 사람> 흑흑. 아니다 다를까, 며칠 뒤 편집자에게서 <1Q84> 때문에 <애도하는 사람> 출간이 미뤄졌다는 전화가 왔다. 사실 원고를 넘긴 뒤에 번역료는 간절히 기다리지만, 출간은 그렇게 기다리지 않는다. 때가 되면 나오겠거니 하고 잊고 있다가, 나오면 반갑게 맞아준다고 할까. 그런데 <애도하는 사람> 만큼은 번역하는 순가부터 애타게 기다렸다. 출판사에서는 그런 나의 마음을 잘 아신다는 듯. 중간에 파울로 코엘료를 한 번 더 끼워 넣어주시고 (웃음) <애도하는 사람> 은 결국 작업이 끝나고 7~8개월 뒤에 세상의 빛을 보았다. 이 책을 보고 첫눈에 반한 지 1년 만이었다.   

 번역을 넘기고서 한 참 뒤, 담당 편집자가 편집을 마치고 무작정 핀란드 행을 예약해버렸다고 메일을 보냈다. "선생님, 원고에다 무슨 소울을 심어놓으신 거에요" 하면서.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그 추운 겨울에 과감히 핀란드 행을 저지르는 젊음과 열정이라니.. 표지마저 예쁜 <카모메 식당>은 한동안 나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완소'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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