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인 6색 21세기를 바꾸는 상상력 인터뷰 특강 시리즈 2
한겨레출판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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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구매. [B급좌파] 사다가 알라딘이 친절히 알려주는 [B급좌파]를 구매한 분들은 이책도 샀다이놈아 하길래 샀던. 뭐... 그럭저럭 읽을만했던 책.

 

이책에서 놀랐던 것 하나. 책에 소개된 여섯 중에 '한비야'가 가장 열정적이었다는 것. 2000년대의 지식인들에게는 '80년대로부터'의 자기자신이 설명되어야 하는데, 한비야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구속받는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자기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가장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비롯하여 운동하는 이들에게서 보지 못한지 꽤 오래된 에너지였다. "여러분은 행복의 정의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 정의는 딱 한가지에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딱 맞아 떨어지는 그 일을 하는 것. 그런데 이 긴급구호 일이 바로 그런 일이에요"

 

한비야의 그 말은 여름에 만났던 한 후배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참 재미없어 보이는데, 그는 계속 운동을 하겠노라 하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었다. "너는 왜 운동을 하니"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언제는 운동을 하고싶어서 했었나요. 해야되니까 하는거지" 자기에너지가 없는 집단이 어찌 미래를 선도할 수 있을까. 한비야의 실천은 기껏 지식인 내지는 오지까지 갈 경제적 여력이 있는 자들의 자위일 뿐이고, 세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는 한비야류의 실천은 아무 의미도 없다며 여전히 우리는 한비야를 폄하할 수 있을까. 6인의 강사들 중 한비야의 강연이 가장 먼저 옮겨진 책이여서인지, 나는 그 뒤에 따라온 묵직한 강사들 - 홍세화, 박노자, 한홍구의 글에서 힘을 느끼지 못했다. 후자의 세명의 글은 이를테면, 정치적으로 누구나 올바르다고 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현실에서 별 힘이 없어보이는 그런 내용이었다고나 할까. 그들의 글은 사실 제목만 보고나면 더 읽을 힘이 없게 된다.

 

마지막 오귀환의 글. 다시 퍼뜩 정신나게 하는 글. 오귀환은 '기획가'였다. <한겨레21>의 창간을 주도했다는 그는, <인터넷한겨례>를 그후 창간하고, 지금은 그가 요새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매체와 문명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한겨레21>의 산파였다는 그의 이력의 무게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가장 감각적인 영역에서 최선두의 기획을 계속해내고 있는 그의 현실감은 나를 굉장히 끌어당기게 하였다.

 

오귀환의 글은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되었던 이수만의 인터뷰기사와 비슷한 끌림을 주었다. 이제는 한국 연예기획계의 큰손이 된 그인데, 그의 인터뷰중에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SM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은것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이수만은 답했다. "그사람들은 안되는 것만 하라고 말을 한다" 그는 앞으로 미디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그 중심에 이동통신사가 있을 것이라고 귀뜸했다. 이동통신사는 전국민이 다들고다니는 핸드폰이라는 무기를 이용해서, 거기에 콘텐츠를 독자 공급하는 미디어 왕국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핸드폰업계의 미래에 대한 그의 예측에 놀랐고 - 그것은 하나 하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 '올바른'사람들의 비판에 대한 그의 대답이 한편으로는 '올바른'사람들의 현실에서의 힘에 대해 얼마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홈피에 쓰느라 다시 들춰본 이 책. 처음 볼때는 힘없게 느껴졌던 홍세화 선생님의 글이 다시 끌린다. 그가 많은 지면을 할애한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 때문이다. 자본가들과 그들이 세운 정부는 계급갈등이 첨예해 지면 사회를 통합할 명분을 잃는다. 그들이 얘기한 국민국가는 결국 환상이며, 그 국가에는 두개의 국민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바로 그때 - 불황의 국면에 - 그들이 들고 나오는 것이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열풍속에 왜 이 드라마들이 하필 지금 인기를 얻는 것인지 새삼 다가왔다고나 할까.

 

"일본의 파쇼화가 바로 1930년대 대공황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파쇼화의 목적 중 하나가 '좌파를 궤멸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궤멸시킬 만한 좌파조차도 없다는 것이 일본의 비극이라면 비극입니다."

 

1996년엔 학생운동이, 그 다음엔 민주노총이, 그다음엔 전교조가... 그리고 이제는 노무현정권으로 브랜드화 된 386이라는 이름의 '좌파'전체를 궤멸시키기 위한 자본의 공세가 계속된다. 단순히 2007년 대선국면의 문제가 아닐것이다.

 

김규항의 말대로, 홍세화 선생은 아직도 기품있는 전사라는것을 새삼 느낀다.

 

나부터 버려야 한다. 민족주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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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전집 2 - 산문
김수영 지음 / 민음사 / 199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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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김수영전집2-산문]은 97년에 신문광고를 보고 산 책이다. 컴퓨터로 편집하는 깔끔한 책들에 익숙해진 나는, 글자를 조합해 찍은듯한 구판의 책이 끌리지 않아 박아둔채 시간이 흘렀다. 책장에도 꽃히지 못한 채 옥탑방 구석에서 햇볕에 표지가 바래가고 있던 이책을 다시 꺼내들게 된 이유는 김규항의 글 때문이다. "너에게 수영을 권한다"면서, 김규항은 "수영을 읽지 않는 자는 지식인이 아니다"고 까지 하였다.

 

리뷰를 쓴답시고 다시 꺼내 펼쳐보니 대개 책마다 그어놓기 마련인 밑줄도 거의 없고, 기억나는 장면도 없어서 난감하다. 뭐 억지로 몇마디 더 쓰는것 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내 '1960년대에도 김규항이 살고 있었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만 적어 둔다. 김규항이 왜 그에게 매료되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이로서 [B급 좌파]에 언급한 책들을 다 보았으니, 작가에 대한 예를 갖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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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3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3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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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규항의 칼럼집 [B급좌파]에 너무나 빠져들었기에, 그가 그 책에서 권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래서 잡은 책이 [장정일의 독서일기]였다. 김규항의 추천 이전에, 내게 장정일은 도색소설을 쓰는 그저 그런 작가로 기억되어 있었기에 - 더구나 '독서일기'라는 형식은 왠지 사서 부러 읽기에는 좀 가벼운 형식이지 않나 하는 생각때문에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사물을 나 자신의 잣대로 보기 보다는, 다른 이의 평가에 의해서 '브랜드화 되어야' 비로서 그에대한 안목을 가지게 되는 저열한 눈높이 때문인지, 김규항의 추천이후 장정일은 대단히 새롭게 다가왔다. 하긴, 그게 장정일의 글을 제대로 읽은게 처음이었으니 당연히 새로울밖에 없었겠지만...

 

[독서일기]3편은 1995년와 1996년, 그리고 1997년 초까지의 그의 독서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시기는 장정일에게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3편까지의 일기를 쓰고 그는 감옥에 가게되기 때문이다. [내게 거짓말을 해봐]라는 책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3편의 많은 부분은 음란과 도덕에 대한 주제를 다룬 다른나라, 다른 작가의 글들에 대한 독서가 꽤 많은 주제를 이룬다.

 

그러나 그의 주된 관심이 어디 있는가와 무관하게, 나는 왜 김규항이 그를 추천할수 밖에 없었는지를 곳곳에서 목격하며 적잖은 상쾌함을 느꼈다. 표현의 방식이 달랐다 뿐이지 - 그렇더라도 그의 폐쇄적인 생활방식과 전혀 일하는 사람과의 접촉이 없는, 그 자신도 몸쓰는 일과는 전화 무관한 듯한 일상은 나에게 여전히 거부감을 일으킨다 - 김규항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지식인이며, 87년의 영광과 90년대의 지식인들의 변절에 대해 김규항 못지않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철저히 개인적인듯 보이는 그의 글은 어설픈 사회화 - 어쩌면 더 정확히는 어설픈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 반발이다. 그는 결코 사회에 무관심하거나, 개인의 감정자체에 침잠하는 그런 작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좀머씨 이야기]의 유명한 대사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 두시오!"라는 대사에 대해서, 그는 '그런 좀머씨를 견딜수가 없다'라고 쓴다. 좀머씨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세계에 대해 혐오하고 자신을 내버려두라고 절규한다. 그러나 좀머씨를 비롯한 그의 많은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적대감과 외면은 세계가 그것의 원인이 아니라, 바로 그의 냉소가 그런 세계의 원인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김규항이 김어준에 대해 처음 가졌던 선입관을 딴지일보를 찬찬히 본 후 바꾸게 되었다고 말한것처럼, 이 대목에서 나역시 그에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다. (김규항은 또한 "세상에 대한 열정을 선천적으로 면제받았다"는 신세대 작가 송경아에 대해서도 대단히 냉소적이다. 그는, 80년대의 변절을 용서하지도 못하고 90년대의 비사회화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그는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그는, 80년대 사회주의와 그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이 보여주는 변절과 이유없는 변화들에 대해 도덕적으로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갑작스레 시대의 변화를 논하며 후일담 문학을 쏟아내는 작가들에 대해 그는 일갈한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맹인들이었으나, 그들을 관통한 세월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이 실제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체하게 해주었다. 문화형성이니 모조현실과 같은 거품의 사유가 아니라 진지하게 실존에 대해 사고할 절호의 기회가 90년대의 신세대에게 주어졌으나, 한번도 실존의 삶을 교습받아 본 적이 없는 신세대식 실존주의는 치기 어린 '육백만불의 사나이' 들을 그들이 쓴 소설 나부랑이 곳곳에 게워내 놓았다."

 

그렇게 해서 그가 도달한 하나의 결론은, 김규항과 마찬가지로 차라리 자기 자신이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도덕수준으로 후퇴하는 것이었다. 김규항이 "B급으로라도 좌파로 살 수 있다면"좋겠다고 한 것처럼, 그역시 순수한 욕망 그 자체를 통해 늘 사회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 지식인들에 대해 최소한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싶다. 김규항과 마찬가지로 그 시도는 과도적일수 밖에 없고, 진정으로 80년대를 벗어났다기 보다는 80년대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다.

 

김규항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사법처리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정리한 변론문 - [독서일기 3]의 마지막 글이기도 하다 - 을 나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 글만은 솔직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결국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가 구속되었을때 때마침 소위 '한총련 연세대 사태'로 인해 구치소의 독방들이 꽉 차 있을때였던지라, 그는 10여명의 절도범과 한방을 써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그와 같은 층의 독방에 갖혀 있었는데, 저녁식사시간을 마치고 심심해진 재소자들은 감방 창문을 붙잡고 장정일을 불러대었다.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한번 해봐~~"

 

그 기간이 그에게 얼마나 참혹하였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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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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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것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렛"이다. 씨네21의 맨 뒷면(한겨례21이었나?)을 언제나 가장 먼저 펼치게 만들었던 그의 맛깔쓰런 글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이다. 아마도, '박노해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이렇게 명쾌하게 생각을 정리하게 된 글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글은 이후 내가 운동의 이름으로 자기 욕망을 포장하는 이들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되었다.

 

그다음에 떠오르는 것은 그를 욕하는 역시나 씨네21의 글이다. 어떤 글에선가 김규항이 여성운동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을 썼었는데, 그에 대한 논박중에 나온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뭐 논쟁이야 - 특히나 페미니즘에 대한 논쟁이야 - 흔한 것이지만, 그 글이 기억나는 이유는 김규항을 비판하는 글을 게제하는 씨네21 편집장의 글 때문이었다. 편집장은 책 첫머리의 편집자의 글을 통해, 두사람 모두 그 진정성을 익히 잘 아는 이들이라, 고민끝에 그 글을 원문대로 싣는다고 아주 힘겨운듯이 적어놓고 있었다. '아니 도데체 무슨 글이길래 이렇게 유난을 떤다냐'싶었는데, 편집장이 걱정하며 그대로 실은 어느 페미니스트의 글은 "야 이 개새끼야"로 끝맺고 있었다.

 

나는 그 표현을 그대로 실은 편집장의 모습에 놀랐다. 꼭 그래서인지는 나로서는 잘 모를 일이지만, 김규항은 그 뒤 그런 식의 칼럼쓰기를 그만두고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의 글에서 늘 묻어나는 그 씁쓸함이 이 사건으로 한켠 더해지게 된 것일까. 하긴, 그에게 있어서는 이상을 간직한다는것은 늘 상처를 받게되는 과정이라는것이 글 곳곳에 깔려 있다. 크리스챤이라는 그는 신학을 공부하는것을 포기한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예수의 삶에서 넘어설 수 없었던 지점은, 그가 보여준 삶의 폭이 인간이 이룬 어떤 선한 그룹에서조차 결국 오해받기 십상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예수는 정치범으로 몰려 죽었지만(당시 로마 식민지령에서 십자가 처형은 민족해방운동가들에게 사용되었다. 물론 전시 효과 때문이었다.) 정치범이 아니었다. 그를 죽이는 일은 로마 식민정권, 유태괴로정권, 유태교 지도자들 같은 압제자들간의 합의였을 뿐 아니라 예수가 잣니들의 정치 혹은 영혼의 해방을 이루어 줄거라고 빋고 따르던 제자들과 민중들의 합의이기도 했다...."

 

하긴 구체적인 내용은 달라졌을 지 몰라도, 김규항의 글쓰기는 언젠가는 그런식으로 끝내는게 정해져있는 글쓰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80년대의 이상을 이처럼 개판내버린 '유연한'지식인들과 동료들에 대해 사시미 칼로 저미는 듯한 비판을 날렸지만, 정작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제시할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의 비판은 아무리 현재를 소재로 하고 있어도 본질적으로 회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김규항은 자기 나름대로의 영역을 찾아 미래를 향한 움직임을 쉬고 있지 않지만, 순수한 운동의 과거를 '지키는 것 자체'를 하나의 운동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는것을 보면, 이제 그만 80년대와 쫑낼때도 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뭐, 이미 사람들은 다 쫑냈는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깨닿지 못하고 있는 것일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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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열전 -상 까치동양학 26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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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 대한 정의 중에 "사람들이 모두 이름을 알고 있으나 아무도 읽어보지는 않은 책"이라는 정의가 가장 합당하지 않을까 한다. [사기]도 과연 그러한 책이여서, 사마천과 사기라는 이름은 널리 알려졌으나 정작 읽은이는 찾기 힘든 책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 리뷰를 쓰기 위해 [사기]를 검색해 보니 열전편만 60여권에 달하는 번역본이 있어 생각보다 읽은 이들이 많은 책임을 깨닫게 된다.

사기는 교도소에 읽은 책이다. 그런곳이 아니라면, 사느라 바쁜 사람들이 진득하니 보기는 힘든 책일 게다. 나는 책의 오타를 잡아다 출판사에 보내 다른 책을 하나 받아볼 요량으로 오타를 잡으며 책을 보았다. 다시 꺼내 보니 그때 잡았던 오타표시들만 즐비하고, 정작 책의 줄기를 따라간 메모는 많지가 않았다. 그중 [열전-상]편 (까치에서 나온 사기는 정범진 교수께서 7권으로 완역을 하셨으나, 일반인들에게는 열전 상중하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된다.)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적어볼까 한다.

- 사람들은 올바른것에 뭉치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뭉친다. - 한비자의 죽음.

사람은 솔직하기 힘들다. 솔직하다는 것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고, 세상은 약점을 잡아먹지 안아주지 않는다. 다 아는 얘기라고? 정작 문제는 '내가 아는 그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믿었던 바로 그사람들에게 조차 결코 솔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오로지 솔직해도 좋을 사람은 세상에 부모와 아내밖에 없는것이 아닐까 싶다. '사적인 감정'을 묻고 '나라를 위한 대의'에 충실해야 하는것이 당연한 일인것 같아도, 나랏일 하는 이들도 사람이기에 그들은 대의라는 명분아래 감정으로 움직인다.

한비자는 그점을 통탄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로서 한 나라를 바로 세울 정책을 가졌으나, 그는 그 정책을 펼칠수가 없다. 우선 그 정책이 권력자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 한비자에게 정작 어려운것은 국가를 경영하는 비책이 아니라, 그 비책이 어떻게 하면 씌여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한비자는 말한다.

"송나라에 한 부자가 이었는데, 비가 와서 그의 집 담장이 무너졌다. 그의 아들이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고, 이웃집 주인도 역시 그렇게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도둑이 들어 과연 많은 재물을 잃었는데, 그 집에서는 그 아들을 매우 똑똑하다고 여기면서도 이웃집 주인에게는 의심을 품었다.....이웃집 주인이 알고 있던것은 모두 타당한 것이었거늘 심한 자는 죽음을 당하고 가벼운 자는 의심을 받았으니, 안다는 것이 아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어려운 일이다."

한비자는 결국 진나라의 왕에게 유세하다 실패하여 죽고만다. 그의 말대로 된 셈이다.

사기가 드러내는 놀라움은, 지금으로 부터 2,000여년 전 - 우리의 연대감각으로 쉽게 이해하자면 예수가 태어나기도 전 - 사람들과 우리들이 그 감정과 서로간의 갈등의 모습에서 전혀 다른면을 발결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다는 것이다. 첨단 과학문명의 세례속에 자연스레 묻혀살아온 우리들로서는 고대의 사람들은 뭔가 우리들과 생긴것도 좀 투박할것 같고, 사는모습도 다를것 같지만 기록으로 남아있는 그들의 모습은 바로 어제 신문에 실린 얘기와 전혀 다를바가 없다. 사람은, 과연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자연을 개조하는 기술만 달라졌을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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