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하는 민주주의 - 서른 살, 사회과학을 만나다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5
손석춘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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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리뷰'를 쓰던 스타일과 달리 독서일기 형태로 기록을 남긴다. 

 -. 손석춘 : '국민을 학습모임으로 조직할것'을 제안. 스웨덴과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소개하다. 무엇을 학습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조직의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제시하지 않았지만 최종적인 결론으로서 정답이라 할만하다. 정서적으로 역시 끌린다는 생각. 

 -. 김규항 : 멋진 레토릭과 허무함.  예수전 이후, 김규항과 선긋기. 

 -. 박노자 : 역시 기본이 탄탄하다. IMF 극복비결이 결국 기업의 실책을 고용자들에게 돌린 탓이라는 분석은 정확하다. 이지점은 하종강의 결론과도 연결된다. 그러나 박노자와 하종강은 전혀 다른 정서를 보인다. 그것은 현장 조직경험의 유무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하종강은 조직가고 박노자는 학자다. 

하종강의 얘기에서 가장 깨는표현은 우리는 일본만큼도 전후청산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 두고두고 맞는 말이고, 그것이 '국민을 조직'하는데 문제점으로 된다. 그리고 바로 그런 사회적 특성 때문에 NL이라는 독특한(타 국가에서는 우익의 강령을 가진) 민주화 세력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종강은 여전히 한국사회가 그 수준에 있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새롭게 느낀것은, "80년대는 실제로도 급진적이었던것 아닐까?" 라는 것이다. 여성운동의 한국사회의 급진적 도입과 그 반발은 타 운동에 대해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고민꺼리다. 

-. 손낙구 : 부동산 문제, 정말 중요하더라. 

-. 김송이 : 죄송하지만 정말 재미없는 글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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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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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어느정도 팔릴 줄 알았다. 저자의 홈피에서 출간 이전부터 그의 자부심을 느낄수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글이 자신을 어느정도 표현해 내었을때 작가가 가질 수 있는, 특유의 향기다. 나는 준비하던 시험을 얼마 앞두지 않은 채 틈틈히 읽었다. 

 첫 느낌은 1990년대 이후 오랜만에 느끼는 좌파의 자기자존감 이었다. 

90년대 이후의 모든 글들은 80년대의 한자락을 뒤집어내는것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것을 탓할수는 없다. 글쟁이들은 다들 많이읽고 세상에 고민이 많은 이들이기에, 그들은 세상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그들은 더이상 80년대의 구호들이 먹히지 않을것을 알아채고 자신이 먼저 외쳤던 구호들을 이제 자신이 왜 지지하지 않는가를 조목 조목 설명하였다. [B급좌파]로 시작된 그의 글들의 일관된 주제는 그러한 먹물들에 대한 환멸과, 그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알수 없으나 해방의 지침으로서 보다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회주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고 있었다. 그 자신도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지를 담지 못했기에, 그는 스스로를 B급이라 불렀다. 

  그런데, 예수전을 통해 그는 이지점을 극복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대안에 대한 고민이나 과거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없이도, 지금 이순간 이후 더이상 현재의 사회체제에 대해 타협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을것을 스스로 선언하고 일어섰다. 그는 이를 위해 예수에 기대었다. 그가 예수에 기대었기에 신학과 사회과학사이에 애매한 경계에 섰으나, 이제 그는 더이상 주변에서 툴툴거리던 어법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자신의 좌파로서의 자존심으로 홀로 섰다. 나는 1990년대 이후 이러한 자존감이 넘치는 글을 처음 보았다.  

 여전히 격렬한 구호도 넘치고, 조용히 투쟁을 권하는 조직활동도 일어나고 있지만, 그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자기확인하는 저항을 오랜만에 보았다. 그것은 투쟁으로 자유를 획득하려는 자가 반드시 자신의 뱃속에 깔아두고 시작하여야 하는 문제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는 무엇보다도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서로를 좋아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다는데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나는 느낀다. 내 옆에 있는 민주노총 활동가, 민주노동당 활동가, 전교조 활동가들을 우리 조차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바로 거기에 우리의 극복 지점이 있다. 그가 예수에 기대어 출발한것은 두고 두고 하나의 문제가 될 것이지만, 저항하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며 홀로 선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전환점이 될것이다. 

 

두번째는 이제 김규항과 선긋기를 해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B급좌파]이후 나는 그의 팬이었다. 내가 쓴 그의 다른 책에대한 서평에도 썼지만, 나는 그가 B급좌파에서 추천했던 책을 모두 따라 읽었다. 그래서 장정일을 읽었고, 김수영을 읽었다. 그의 홈페이지에 들러 윤엽이라는 젊은 판화가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에 기대어 일어섰기에, 그는 이제 후퇴할 수 없는 자리에 섰다. 그의 변화는 이제 예수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의 변화는 이제 예수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예수]를 논한 순간, 이제 그는 예수를 따르던가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여야 한다. 그것이 근본주의자의 숙명이다. 그의 동료들이 수없이 그에게 말한다는 대로, 그는 이제 "피곤한 삶"으로 들어섰다. 당연한 일이다. 예수를 이해한 사람, 부처를 깨달은 사람은 이제 예수나 부처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근본주의에 반대한다. 이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온전하고 완전한 규벙이 존재함을 상정하고, 그에 맞지않는 주장을 그 완전규범에 빗대어 내치는 방식은 위험하다. 이제 그 온전한 규범, 예수가 핵심을 내비쳤던 그 규범의 완성을 위해 저자는 더욱 외로워지고, 더욱 협상에 있어서 구체성을 잃을것이며, 내일을 위해 한발을 내딛기 위해 애쓰는 노력들을 "규범에 맞지 않는다"하여 온전히 칭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걸어 가시라. 그 길을 위해서. 누구도 그 스스로 온전할 수는 없다. 우리가 온전하길 원하는 것은 사회의 온전함이기에, 우리는 자신의 역할을 다할 뿐 스스로 온전하지는 않다. 당신의 애쓴 한마디 한마디에 나는 성경을 손에 잡은지 실로 십수년만에 처음으로 예수가 뭘 하다 죽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말대로(B급 좌파이후 당신이 책에서 시킨것은 다하고 있다) 성경을 다시 읽었다. 마가복음을. 예쁘게 가죽으로 포장되어있는, 두꺼운 그 성격책에는 짧은 주석까지 담겨 당신이 해석한 마가복음의 내용이 하나라도 읽는이들에게 전달될새라 막고 또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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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 2 오늘의 사상신서 64
조지 세이빈 외 / 한길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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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도 2권이 더 찾는이가 많나보네? 하긴, 시대순으로 짜여진 [정치사상사]의 1권을 이루는 인물들은 아무래도 그야말로 학술적인 의미 이상이기 어렵겠다. 그러나 2권에는 우리의 오늘을 마련한 인물들이 나타난다.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가 등장하는 것이다. 맑스 이후의 사상사의 계보에 이름을 올릴만한 다음 사상가는 누가 될까? 문득 궁금해진다. 역시 현재의 수많은 흐름들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한줄기를 파악하기란 쉬운일은 아닌 것인지.

 

아마도 정치사상사가 개정판이 씌여진다면 맑스주의 이후에 씌여질 사상으로는 여성주의 이론가가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진행중인 영향력과 미래사회의 반영에 대해 이정도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없지 않을까.

 

그러나 여성주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이전의 관점과 다른 양성적 관점을 가지자는 것일 뿐,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지향은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사회가 여성과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나, 새로운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하는것은 여성주의가 답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도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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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 1 오늘의 사상신서 63
조지 세이빈 외 / 한길사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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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사]는 읽기쉬운책은 아니다. 한 줄 한줄이 씹어서 슨 것이 느껴지고, 근거와 인용이 분명하다. 아주 분명한 '학술서'이다. 그러나 그 다루는 소재는 소크라테스, J.S.Mill,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등 이름은 모두 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이다.

 

고교때 윤리 과목이 재미있었던가? 재미가 없다... 그들의 철학적 깊이. 당대의 현실문제를 풀기위한 그들의 문제의식을 오늘의 문제에 대입해 보는 안내... 고등학교의 윤리시간에는 그러한 교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깊이는 전달되지 않은 채, 철학자와 저서 키워드를 암기하고는 - 졸업과 동시에 나의 삶과는 아무 관계없는 이름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죽자마자 잊혀질 나의 이름과 비교해 보건데, 사람의 이름이 2천년 이상을 이어져 내려오는 데에는 얼마나 대단한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깊이를 전혀 느낄 수 없게 가르치고 배워왔다.

 

역사책을 시대순으로 따라가며 읽다가, 시대에 대한 코멘트를 달아주는 글을 만나고 싶었기에 우연히 잡아든 책이었다. (우연히 그때 신문광고가 나왔기에. 한길사에서 구판을 새로 내면서 책값을 두배쯤 높여놓았던!)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서양 사상사의 흐름이, 그들의 시대와 그들 시대의 한계, 그리고 그것이 그 다음시대를 어떻게 열었으며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그야말로 드라마로 엮어 낸다.

 

이 책의 제목은 '정치사상사'이지만, 정확하게는 '서양 정치사상사'라고 할 수 있다. 놀랍고도 부러웠던것은 그들은 그들의 고대로부터의 정치적 사상사를 '끝까지'파본 학문적 업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였다. 서양에 의해 강요된 근대를 맞은 동양인중의 하나인 나로서는, 백가쟁명시대의 철학들이 오늘의 우리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사고할 근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씩 TV다큐멘터리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신비'같은걸 할 때면, 그때의 세금관리기록 같은것이 그대로 남아 기록되어 있는것을 보며 서구의 힘을 느낀바가 있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니,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단초를 찾게 될 수 도 있지 않겠는가.

 

꽃아두시길 권한다. 비싸고 두꺼우나 - 값을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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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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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조카들이 자지 않는다. 자다 먹다 싸다 하는 이놈들은, 제삶을 온전히 누리려는 누이의 품을 떠나 그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품에서 자란다. 늦은 낮잠을 자다 열시에나 깬 둘째조카는 환갑을 넘기신 내 아버지를 타고 놀며 새벽까지 깔깔거린다. 자격증을 준비중인 서생인 나는 인간의 권리에 대해 논하는 공부를 하고 있으나, 제 아버지의 생의 어려움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한다. 쓰일데 없는 지식이 많은 듯 하여 나는 나와 [남한산성]의 간언하던 자들을 겹쳐 생각한다. 그들이 인조를 보좌하지 못하듯이, 나역시 나의 아버지를 모시지 못한다.

 

말의 홍수 속에서 전투를 치르며 살아온, 지금도 '사느라' 그 자신이 혐오하는 글을 쓰는 김훈. 그는 글쟁이들을 잘 알아서인지 그들을 혐오한다. [칼의 노래]에서도 느꼈듯이, 말에 휩싸여 싸우다 밀고 밀려본 그의 이력은 그의 [文]에 대한 경멸이 괜한 말들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칼의 노래]가 그의 삶에서의 싸움이 배여있는 듯 읽혔다면, 이번 글은 그의 스타일이 살아있는 가벼운 소풍처럼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남한산성에 주인공이 없다는 느낌과도 같다. 자연은 그 자체의 법칙으로 굴러가고 있는데, 그것을 [文]으로 막아보려는 인간의 부질없음을 말하는 것인지. 청은 힘이고, 결국 세상은 힘의 작용으로 움직이고 꿈틀댄다.  [전쟁과 평화]의 인간군상들이 그러하듯, 지휘부는 지휘하지 못하고 정작 전쟁은 다른 힘에 의해 결정된다.

 

[남한산성]에서는 똥이 삭아 거름이 되듯, 사람은 죽어 썩어들어간다. [文]의 묘사가 어이없고 의미없는데 반해, 똥이 썩고 시체가 썩어가는 묘사는 머릿속에 또렷이 떠올리게 적어내려간다. 두 존재에 차이는 없다. 김훈은 인조 만큼이나 위악적이다.

 

그럼에도 김훈의 글은 여전히 생과, [文]에 오염되지 않은 노동하는 삶에 대한 존중속에 있다. 서생인 나역시 그러한 삶을 존중하여 그들의 삶 터로 들어가본 적이 있으나, 그것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지는 못하였다. [날생]의 삶을 좋아하고 가슴에 품을 일이지, 나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삶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국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길임을 인정할수 밖에 없다. 자신의 기가 아닌것이 객기라면, 객기는 오래가지 못한다. 김훈도 역시 글을 계속 쓴다. 그역시 날생의 삶을 살기 보다는, 날생을 존중하는 글을 쓰고 싶어 한다. 나역시 그러하다.

 

늙은이들을 사다리 삼아 젊은이들이 자라나는 것도 자연의 이치인가. 조카들이 잠들었는지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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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훈이 "남한산성"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11-05 02:37 
    남한산성 - 김훈 지음/학고재 2007년 10월 31일 읽은 책이다. 올해 내가 읽을 책목록으로 11월에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다. 재미가 있어서 빨리 읽게 되어 11월이 아닌 10월에 다 보게 되었다. 총평 김훈이라는 작가의 기존 저서에서 흐르는 공통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다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매우 냉정한 어조로 상황을 그려나가고 있다. 소설이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이 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읽었음에도 주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