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는 곳이 어디라고? - 바이칼에서 치아파스까지, 왼쪽으로 떠난 여행
한재각 지음 / 이매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만 5년을 갓 넘겨 다니던 회사를 갑작스레 그만뒀다. 달리 옮겨갈 회사마저 마땅치 않게 된 상황. 여행 욕심을 부려볼까, 그래도 될까 싶어 이래저래 뒤적이다 조심스레 읽게 된 책이다.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일정에 따라 나열된 일반적인 여행서들과는 다소 다르게 구성돼 있다. 저자가 수년간 틈틈이 다닌 여행지에서 느꼈던 갖은 상념들을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일정 부분, 직접 가 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노하우나 각종 시행착오들이 소개돼 있긴 하지만, 애초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니기에 그같은 효용은 적다. 나 역시 그런 걸 기대하고 찾은 책이 아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목표했던 회사로의 이직에 실패했지만 당장 재취업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은 선뜻 여행을 추천했다.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다는 게 주된 이유. 나 역시 이십대 중반 묵혀뒀던 시베리아와 바이칼 여행의 로망을 손쉽게 끄집어내긴 했으나, 각종 여행서를 뒤적이고 여행 정보들을 모으면서 어느새 이 일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한 회의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관광과 여행의 차이가 무엇인지, 또 여행에서 얻고자 하는 자유, 해방감 같은 것들을 나 혼자,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서 정말 느낄 수 있을지, 5년간 수고한 스스로에게 주는 포상이라지만 과연 내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상 타령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 시기인지, 이틀 간격으로 받아야하는 투석 탓에 사실상 인천에 갇혀 사시는 것이나 다름없는 아버지의 신장 수술 비용에 갈음할 만한 내 퇴직금을 여행 따위에 써버려도 되는 것인지, 내겐 오히려 도서관에서 각종 책에 둘러싸인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닌지 등등..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긴 하지만.. 어떤 면에선 경제적 궁핍(?)이 주는 선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아무튼, 왜 여행을 가야하는가에 대한 확신이 좀처럼 서질 않았다. 한데 반갑게도 저자도 나와 엇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7개국가량을 주로 업무상 출장으로 다닌, 여행을 충분히 경험하지도 않은 사변주의자의 소심한 상념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내 고민이 개인적이고 사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저자의 고민은 보다 사회적이고 실천적인 수준으로 나아가 있다. 경제적 부가 증가한 선진 산업국의 중산층들이 대거 여행에 나서면서 그것이 여행지의 사회, 문화, 환경에 어떠한 변화들을 가져왔는지, 궁금해 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둘러싼 해석과 고민의 지점은 책 말미에 한 장을 할애해 따로 소개하고 있다. 짧지만 그만큼 압축적이고 선명하다.

본격적인 공정여행, '착한여행'을 고민하기 전 비슷한 애티튜드를 가진 자가 "일상을 벗어나 낯선 것과 조우하는 방식"을 어떤 식으로 경험하고 고민했는지 참고삼아 쉬이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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