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운 배 -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생소한 작가의 책이 기대 이상일 때 나오는 버릇들이 있다. 먼저, 책날개에 붙어있는 작가의 사진을 다시금 확인한다. 어떻게 생겨먹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는지, 이름 석 글자를 되뇌이며 괜스레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이다. 그러다 장발을 하고 물안경 같은 고글을 쓴 삼미슈퍼스타즈의 박민규 같은 사진이라도 나오면 음 역시... 하고 수긍을 하게 된다. 


그러고도 책을 읽다 계속해서 감탄이 나오면 뒤로 넘겨 '작가의 말'을 펼쳐본다.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어쩌다 이 소설을 쓰게 됐는지, 화자가 아닌 작가의 입을 통해 이 책의 '왜'를 직접 듣고 싶어서. 

그러니까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면 말이죠.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라고 묻는 아내의 질문에, 답을 미루고 미루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긴 연서를 쓸 수 있었다는 박민규의 뒷이야기 같은 것들.

그렇게 작가의 사진과 말까지 보고 책을 끝까지 읽은 뒤에도 상기된 마음이 가시지 않으면, 책의 맨 앞이나 뒤를 펼쳐본다. 몇 쇄나 찍었는지 확인하려고. 이렇게 멋진 책이 10쇄는 찍었으면 좋겠네 하는 기대감과 함께 짜잔, 하고 넘겨보는 것이다. 꼭 판매량에 비례하진 않더라도 그래야 작가의 이름값도 올라가고, 작가가 다음 책을 쓸 때까지 경제적으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겠는가.

한데 이혁진 작가의 <누운 배>처럼 흡입력 쩌는 놀라운 책이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초판 1쇄'에 머물러 있는 걸 보면 너무너무 아쉬우면서도 안타깝다. 어차피 문학상을 탄 작품이니 선인세 격으로 상금을 받았을 테고 웬만큼 대박이 나지 않는 이상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은 없겠지만 

그래도 아깝다, 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작가 인터뷰를 검색해 봐도 하나밖에 나오질 않고, 것도 책이 나온 시점에 머물러 있으면 그의 글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마저 든다.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

한국에서 '회사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면, 일하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 적이 있다면,

왜 일을 이렇게밖에 못하지? 일을 좀 일답게 하면 안되나? 이 일은 도대체 왜 하는 거야? 왜 사람이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일에 끌려다니게 만들지? 대접받고 싶은 꼰대는 왜 이렇게 많고? 정나미 떨어지는 이런 곳에 계속 다녀야 하나? 

같은 질문 아래 커져만 가는 묵직한 답답함과 무력감을 이 소설만큼 세밀하고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또 흘려보낼 수 있게 해주는 무엇이 있을까? 

"진수까지 마친 배가 조선소 부두에서 쓰러진다. 전체 길이 200미터, 높이 34미터에 폭 32미터의 거대한 선체다. 이것은 어쨌든 일어난 일이다."

그 뒤가, 이 배의 운명이, 조선소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가? 윤태호의 <미생>에 나오는 인물들이 판타지 같은 면이 있다면, 누운 배에 나오는 인물들은 우리가 직장에서 흔히 봐왔던 인물들이 그대로 살아 움직인다. 그 기시감이 놀랍다. 한 평론가가 썼듯 나 또한 "<누운 배>가 도달하려고 애쓴 이 사실의 자리에서 인간 진실에 대한 끈질긴 열정과 상상을 읽었고 감동했다."

그러니 1쇄에 머물러 있는 이혁진의 <누운 배>를 일으켜 세울 수 있게 책 좀 사주세요! 이 '월급 사실주의자'의 글을 계속해서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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