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은 없고요?
이주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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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어머니는 그의 책을 읽지 않는다. 단순히 책 읽기가 싫어서가 아닌 마음이 아파서라고 한다. 그러나 작가는 어머니에게서 그녀만의 응원 방식을 조용히 읽어내었다. 작가의 바로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책 '별일은 없고요?'는 읽는 내내 단조로운 서사가 이어지지만 그 가운데 '먹먹하다'라는 감정이 차오른다. 그렇게 먹먹함을 이어가다 보면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그 먹먹함을 바탕으로 따뜻한 감정이 피어오른다. 아마 작가만의 '위로' 방식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이든 빠르게, 과장되게, 크게 만들어버리는 오늘날. 작가는 오늘날의 것들을 모두 뒤로 해두고 그녀만의 위로 방식을 찾았다. 그녀의 세상에서 기다림은 당연함이다. 혼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느껴지는 요즘. 따뜻함.


"나는 호박죽을 데워 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을 조금 흘린 것은 호박죽이 너무 맛있어서도, 무언가가 슬퍼서도 아니었다. 아줌마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의 모든 것을 내가 지금 나눠 받고 있다는 무자비한 따뜻함 때문이었다. "
- '별일은 없고요?' p.114

 작가는 어떤 특별한 장치를 쓰지도, 특별한 서사도 넣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온정'을 기다리도록 만든다. 누군가에서 나눠받은 온정을 또다른 누군가에게 내가 베풀고, 그것이 이 사회의 '연결'을 기대하도록 돕는다. 거부감이 들지 않는 자연스러운 '온정'이다.(역설적이게도 작가는 이를 '무자비한 따뜻함'이라고 표현했다. 표현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작가는 우리에게 '세상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의 투성이'임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것을 떄로는 이해하지 않고 넘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작가는 우리에게 몰라도 괜찮다를 그녀만의 방식으로 전달한다. 


 '별일은 없고요?'는 8개의 개별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모두 유사한 내용을 전달하지만, 그 전달 방식이 다채롭고 색채가 뚜렷하다. 또 전달하는 주체의 성격에 따라 세심한 장치도 해놓았다. 가령 어투라든가, 가족 내인지 외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이라든가 등. 그렇기에 지루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가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들었을 법한 이름들(현경, 은영 등)에게서 우리 누구나가 겪을 법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우리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살포시 얹어놓는다. 작가의 이러한 위로가 참 마음에 들었다.


🌟POINT

1) 우리가 기다린 당연한 것들

2) 일상 속 연결


먹먹한 위로. 우리가 기다렸던, 우리에게 필요했던

<별일은 없고요?>와 함께.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누군가는 위로를 받기도 한다는 걸 어머니도 잘 알고 계신다. 그리고 누군가 위로받았다는 사실에 나 역시 커다란 위로를 받는다는 것도 알고 계신다. 그것은 다시 어머니의 기쁨이 되고, 그래서 조용히 나를 응원하며 그냥 두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P277

이 세상엔 셀 수 없이 많은 시작과 순간들과 마지막이 있고 결국 이렇게. 살면서 겪은 대부분의 고난을 지나왔고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인간을 이해했고 살면서 받은 대부분의 상처를 견뎌왔고 자주 웃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사람만은 끝내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서 아는 저의 기분은 이것뿐입니다 - P207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당분간은 좀 쉬어."

난 아무 말도 안했는데 그런 말도 해주었다. 엄마의 말에 나는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너무 쉽게 부서진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 나는 숨죽여 울었다. … 숨죽였으나 5평짜리 원룸에서 울음소리를 감추기는 어려워 복잡한 마음이었다. 시간은 자정을 지나 2시를 넘겼고 엄마의 방엔 엄마와 방과 내가 있었는데 엄마의 코 고는 소리도 작고 방도 작고 나의 울음소리도 작은, 모든 것이 작은, 그런 밤이었다.

아랫집 아저씨의 방화가 내가 그간 해온 오랜 고민을 해결했다는 게 어쩐지 허탈한, 그런 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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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책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이 카피다 카피책 시리즈
정철 지음, 손영삼 비주얼 / 블랙피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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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십시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습니다.

'카피책', 서문

만일 카피학 시험이 있다면, '카피책'은 완벽한 자습서이자 연습장이다. 풍부한 사례와 함께 독자가 카피를 직접 수정하고 작성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은 다양한 예제. 35년차 카피라이터의 풍부한 경험을 담아 완성된 이 책은 이전의 아쉬운 점을 보완하여 더욱 탄탄해졌다.

나는 카피라이터가 될 건 아닌데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묻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

카피라이터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은

짧은 글로 사람 마음을 얻는 방법이라는 관점 하나만 붙들고 읽어 주시면 됩니다.

'카피책', p.10

아마 이 책의 제목으로 인해 펼치기를 망설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과연 나는 카피라이터를 꿈꾸지 않는데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이 책을 완독한 독자의 입장에서 한 마디 하자면, '읽을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카피를 쓰는 방법이 아닌 내 글을 읽은 사람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카피라이터와 전혀 관련없는 미래를 꿈꾸는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배울 점이 정말 많았다. 특히, 문장을 짧게 쓰는 것. 작가의 표현으로 말하자면 짧게 썰어 쓰는 것. 나에게 정말 필요한 능력이었다. 논문을 쓰든, 기획안을 쓰든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글쓰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카피책은 나에게 실용적인 교본이자 글쓰기 선생님으로 나타났다.

저자는 문장을 짧게 쓰는 것 뿐만 아니라 낯선 용어들로 전개하며 독자에게 신선함을 툭-툭- 던진다.

광고는 협동입니다. 함께입니다. 카피라이터와 아트디렉터의 결혼입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서로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엉뚱하게도 침범입니다.

'카피책', p.262.

표현이 참 신선하면서도 재밌다. 이렇게 카피책은 351쪽이라는 두꺼운 분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밌는 소재들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아 카피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이미지들도 볼 수 있다. 만일 자신이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혹은 미래의 카피라이터를 꿈꾼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1) 가독성 있는 짧은 문장.

우선 이 문장은 싹둑 썰기를 좋아하는 작가인 만큼 문장이 간결하고 짧다. 때문에 집중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앞서 언급했듯이 재치 있는 표현이 많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그 가운데 주제별로 소제목을 잘 나누어 읽기 편하도록 편집해 독자들이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을 수도 있고 이 파트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준다.

2) 시각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아!

이 책은 글도 글이지만 시각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카피란 글이지만, 시각적인 효과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작가가 책을 통해 몸소 보여준다.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카피에 대한 이해는 쑥쑥 올라간다.

3) 실습 과제

자습서이자 연습장. 완벽한 설명이다. 이 책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카피를 위한 바이블이다. 아무래도 교육 현장에 있는 작가여서 그런가 독자를 단숨에 학습자로 만들어 자신의 학생들이 카피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도록 학습시킨다. 이미 이 책을 펼친 순간 독자들은 카피책이라는 대학 교양 교과를 약 17,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카피가 필요하다.

가령 청첩장을 쓴다든가, 교수님께 어필할 과제 제목이 필요하다든가 등 말이다.

그럴 때 이 비밀의 바이블을 보라.

독자를 매료시키는 글을 쓰는 방법.

<카피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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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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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은 크게 2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흑인 소녀들이 백인 중심 사회에서 겪는 여러 차별과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그루밍 성범죄'다. 작가의 표현으로는 '권력 남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 책의 내용은 권력 남용에 관한 것입니다.

성인 남성이 저지른 행동은 용서하고 어린 소녀의 실수는 나무라는 특정 패턴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조종당한 소녀들을 향한 노골적인 비판에 관한 것입니다.

죄를 저지른 장본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피해자를 침묵시키고, 괴물의 탄생에 일조하고 그 괴물에게서 계속 이득을 보는 기업에 관한 것입니다.

...

그저 느낌이 꺼림칙하다면, 지금 당장 도움을 구하세요.

부모님이나 친구 부모님, 신뢰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친척에게 말하세요. "


이 책에 등장하는 '인챈티드 존스'는 미성년자 흑인 소녀이자 가수 지망생이다. 평범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일상을 지내던 그녀는 흑인 가수이자 유명 가수였던 '코리 필즈'를 만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언급하였지만, '허구'이기에 더욱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코리의 말은 마치 뱀이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을 주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인챈티드의 심정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와 함께 좌절하고, 무너져내리게 된다.

이 책은 '그루밍 성범죄'의 과정과 그 결말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자연스럽게 한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소녀를 어떻게 복종하게 만드는지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사회의 괴물같은 모습도 상세히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피해 여성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동시에 숨이 턱-막힌다.


소설의 편집은 독자가 이 책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채팅창, 인터뷰, 심문 등. 등장인물의 서사를 따라 읽으며 느껴지는 여러 감정에도 괴롭지만, 사회와 가해자가 그녀를 압박하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실제처럼 구현한 부분들을 읽어나가다보면 사회의 이기심, 가해자의 잔혹함, 피해자의 허무함 등이 더욱 잘 드러나고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피해자의 일상이 착취되어 무너지는 소설의 전개는 올바른 어른과 올바른 사회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매 순간이 스릴러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딸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부모님, 끝까지 인챈티드의 의사를 물어 도왔던 스튜어디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든든하게 지켰던 친구들. 끝없는 납치와 감금으로 지쳐갔던 인챈티는 이들 덕분에 용기를 내어 또다른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힘을 낸다. 그녀는 좋은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묻고 싶다. 우리의 사회가 어른인 우리들이 인챈티드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도울 수는 없었는지. 어린 소녀들이 이러한 고통 없이 좋은 어른과 건강한 사회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없었는지 말이다. 최근 벌어진 여러 사건들에서 우리는 꾸준히 반성하고, 꾸준히 건강한 사회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지 마세요. 견디지 마세요. 혼자가 아닙니다.

답답하거나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당신을 도울 이들은 주변에 존재합니다.

이제는 현실을 마주하고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때.

<그로운>과 함께.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꼭 가을 같다.

나는 죽은 낙엽 더미다. 검게 변하고, 축축하고, 곰팡내가 난다.

썩어가는 사과, 죽어가는 잔디, 태양을 몰아내는 이른 어둠. - P317

피해자와 생존자와 용감한 이들에게,

그리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소녀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내 눈에는 한없이 어른으로만 보였던 이들의 관심과 애정이 고맙던 때,

취약한 것은 잘못이 아니며, 취약한 사람도 강인할 수 있고,

어린 소녀들이 이 시기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 P441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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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 씩씩한 실패를 넘어 새로운 길을 만드는 모험
김수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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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cemaker: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 따위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언젠가 나와 나이대가 비슷한 최연소 아나운서가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들었다. 그 당시에는 그녀가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결과에만 주목했고, 단순히 그녀가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녀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어떤 과정을 경험했는지는 크게 주목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는 SBS 최연소 아나운서 채용으로 화제가 되었던 김수민 작가의 에세이다. 당연히 그 이후에도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 같은 그녀의 에세이의 첫 시작은 '가난했던 봄의 사직서', 사직이었다. 처음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전개에 '뭐지?'라는 물음표를 가득 달고 그녀의 삶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퇴사를 결심히고 그 즈음 겪은 그녀의 삶은 담담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기억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에세이로 풀어내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비슷한 상황을 처한, 또다른 이들을 위로한다.


 이 책을 읽으며, 그녀가 꽤 자신의 삶과 자신의 방향성을 진심을 담아 고민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당시의 경험을 키워드로 묶어 하나하나 풀어가는 그녀의 에세이는 나 역시 그 키워드에 녹아들어 나의 삶을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


" 실패. 때로는 죽음만큼 괴로운 것도 사실이지만 살면서 원치 않아도 익숙해지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p.32


 현재 진로의 갈림길 앞에선 나 역시 그녀와 유사한 고민을 하고 있기에 이 책을 더욱 몰입감 있게 살펴보게 된 것같다. 하나하나 키워드를 따라 살펴가는 그녀의 삶에서 '이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김수민 작가는 어떻게 대처했을까?'라는 식이라든가. '나도 지금 이 고민을 하고 있는데 김수민 작가는 어떻게 해소했지?'라는 식이라든가. 어느새 이 책은 내 삶을 결정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 권의 '페이스메이커'가 되었다. 이 책은 마치 그녀가 나와 함께 나의 인생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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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현이 새롭다. 같은 표현도 다르게 제시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서식지 옮기기'였다. 나에게 '서식지'는 나의 주거 환경 등을 표현할 때 더 익숙한 표현이었다. 이 표현을 나의 진로 선택과 연결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가의 '서식지'라는 표현은 단숨에 내가 진로를 선택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할 지 그 방향성을 잡아주었다. 새로운 표현 덕분인지 그녀의 표현을 따라 내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렸다. 설렌다고 할까.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나의 삶은 꽤 신선했다.


"진로를 바꾼다는 것은 그 서식지를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하는 일에 따라 주변과 자신이 많이 변하기 때문이다."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p.138


참 편안한 책이다. 그리고 참 따뜻한 책이다. 그리고 신선하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여타의 다른 도서와 같이 '실패해도 괜찮아. 이렇게 하면 되니까'의 책일 줄로만 알았지만, 그녀의 에세이는 그녀의 삶을 나열함으로써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삶을 기분좋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데 장점이 있다. 책과 함께 그동안 '인생은 짧고 굵게'를 입에 달고 살며 '빠른 속도로 큰 것 위주로 다 해보자. 건강은 뒷전.'이었던 나를 반성하며, 내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게 된다.


" 속도의 비교는 정말 찰나에만 유효한 것이다.

잊지 말자. 당장의 속도보다 중요한 게 분명히 있다는 것을."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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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NT = '에세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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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우리는 도망치더라도 결국, 인생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생의 마라톤, 페이스메이커로의 쓰임.

<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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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막상 마주하면 어딘가 낯익은 것이 실패다. - P33

의미는 물건이나 대상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만드는 일이니까. 아, 그러니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선 매사 얼마나 더 부지런히 노력해야 하는 걸까. - P134

이 삶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에 에너지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에는 나 자신을 아는 것과 선택할 서식지의 생태계를 미리 알아보는 일도 포함일 것이다. - P139

쓰임의 가장 큰 특징은 ‘나의 고유함‘이 고려된다는 점이다. - P165

이유가 있으니까. 이제 정말이지 사는 것은 별것이고 산다는 건 막중하고 대단한 일이 되었다. ... ‘사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라는 말로. - P216

설레지 않는가. 매일 새롭게 지구가 알아서 리셋 버튼을 눌러준다는 것이.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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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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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구온난화로 환경 보호의 필요성을 외치는 목소리가 늘어났다. 우리나라 역시 빠른 벚꽃 개화 시기, 평년과 달리 훅 올라간 기온 등. 여기저기서 지구온난화의 싹들이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지구 온난화의 현상 중 하나인, '해수면의 상승'. 나아가 빙하 속 꼭꼭 감춰두었던 위험한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 지금 지구는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다.

'해저도시 타코야키'는 이미 벌어진 해수면 상승의 시대에서 이제는 땅보다 바다가 익숙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찌보면 인간에게는 '디스토피아'의 시대이지만, 한편으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유토피아'의 시대가 왔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든 모든 것을 저 깊은 바다 아래 두고 왔고,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로운 안식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것도 한순간이었을 뿐.

이 책의 시점은 모두 어린아이의 시점 혹은 어른의 모습이지만 세상을 살아간 지는 오래되지 않은 이들의 시점이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그려진 인간의 세계는 이해가 안되는 것들 뿐이다. 이렇게 자연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음에도 어른들은 자연을 자신들의 손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꾸준히 무언가를 개발하고, 무언가를 희생시킨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세상은 단순하다. 바다와 인간. 이타적인 바다와 이기적인 인간. 그렇기에 단순한 표현은 이해를 돕고, 아이의 솔직함은 더욱 쿵-하고 와닿는 것들도 있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 우리에게 자연을 더 이상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도 전해주지만, 이 책은 인간에 대해서도 논한다. 특히 <바다와 함께 춤을>과 <해저도시 배달부>에서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다와 함께 춤을>에서는 자식보다 옛 것에 집착하는 이기적인 어머니의 모습과 그런 어머니로부터 '슬픔'을 느낀 아이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바다에서 먹을 것을 찾아오는 아이의 생존보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옛 것에 집착한다. 그녀는 아이와 대화할 때 아이의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다. 호칭은 '너'이다. 목걸이를 가져온 아이를 마주한 그녀에게서 자식에 대한 사랑은 찾아볼 수 없다. 또, <해저도시 배달부>에서는 돔의 생존을 위해 연구원인 어머니는 유전자를 개조해 예비 배달부가 될 보름이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보름이는 어머니가 불편해 그녀와 따로 생활하고, 어머니의 정을 찾는 보름이에게서 어머니는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자신의 연구 성과물을 바라봤다. 연구원인 어머니에게 보름이는 '저거'일 뿐이다. 어쩌면, 무너진 지구보다 더 이상 가족 간의 사랑을 바라지 못하는 이 상황이 더 비극적이지 않을까. 바다는 인간을 품었지만, 인간은 사랑을 품지 못한 세계였다.


이 책에서 '바다'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단어이다. 모든 챕터에서 처음과 마지막이 '바다'와 함꼐 끝난다. '바다'는 겉에서 보면 잔잔하고 가끔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바다 속에서 인간은 '욕심'을 가지고 들어간다면, 바다는 순식간에 무섭게 휘몰아친다.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 그러나 '욕심' 단 하나는 허용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단편으로 엮였지만, 세계관은 공유하고 있는 '해저도시 타코야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는 새삼 처음 접해보는 제목의 분위기에 대체 무슨 책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단순히 내가 SF소설에 요새 꽂혀 있어 집어들게 된 책이었다. 뭔가 엄청나게 독특한 세계관을 품었을 것만 같은 이 책을 펼쳤을 때, 조금은 실망을 했던 것 같다. 창밖에 넘실거리는 바다와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바다. 우리가 지금 뉴스에서 많이 접해볼 법한 내용이 배경이었다. 그러나, 깔끔한 문장과 순수한 아이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김청귤 작가의 세계는 단숨에 나를 '해저도시 타코야키'의 세계로 빠져들게 했다.

다른 챕터들도 모두 흥미롭고 매력적이지만, 역시 제목으로까지 이어진 '해저도시 타코야키' 챕터는 가히 제목으로 지어진 이유를 알 정도로 독특하고 흥미롭다. 게다가 느껴지는 것도 훨씬 많다. 일상 속에서도 평범하게 마주할 수 있는 '타코야키'를 소재로 그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큰 그림을 그려나갔다. 자신이 환경에 큰 의미를 담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꼭 '해저도시 타코야키'만큼은 읽어보았으면 한다.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바다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를 주었는지 '타코야키'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다.


바다가 나를 부룬다.

...

바다는 인간을 품에 안았다.

- '해저도시 타코야키'

변해버린 세상 속 욕심을 덜어낸 이들의 이야기

<해저도시 타코야키>와 함께.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깊은 바다를 향해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래 울음소리가 들렸다. ... 먼바다에서 무언가가 철-썩 바다 표면을 두드리자, 거대한 물보라가 일어나며 무지개가 반짝거렸다.

우리는 생명의 바다에서 행복할 것이다. - P60

나도 언젠가 바다의 일부가 될 테니, 그 전까지는 바다를 더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다. ... 그들이 작살을 던지고 배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주먹을 날려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 P80

파라다이스가 걱정이나 근심 없이 행복한 곳이라고 했는데, 이제 진짜 파라다이스로 돌아왔으니 푹 자야지. 아주 푹.... - P120

태양은 아주 멀고 멀어서 가는 동안 지치고 힘들었다. ... 그러나 나는 배달부였다. 폭풍이나 위험한 생명체를 만나는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배달을 끝마쳐야 했다. 그게 내가 마리아 언니한테 배운 배달부의 태도였다. - P176

그거 알아요? 분과 루나는 달을 뜻해요. 그러니까 손님이랑 내 이름의 본질은 같다는 거죠. - P201

바다는 인간을 품에 안았다. 덕분에 인간들은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바닷속에서 숨 쉬고 걷고 헤엄쳤다.

바다는 언제나 아름답고 고요하며 거세고 찬란하며 사랑스러웠다. 가만히 서서 눈을 감으면 온몸을 감싸는 감각과 함께 살아 있다는 안온함이 느껴졌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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