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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운
티파니 D. 잭슨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평점 :
'그로운'은 크게 2가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는 흑인 소녀들이 백인 중심 사회에서 겪는 여러 차별과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그루밍 성범죄'다. 작가의 표현으로는 '권력 남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이 책의 내용은 권력 남용에 관한 것입니다.
성인 남성이 저지른 행동은 용서하고 어린 소녀의 실수는 나무라는 특정 패턴에 관한 것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조종당한 소녀들을 향한 노골적인 비판에 관한 것입니다.
죄를 저지른 장본인에게 책임을 묻는 일에 관한 것입니다. 피해자를 침묵시키고, 괴물의 탄생에 일조하고 그 괴물에게서 계속 이득을 보는 기업에 관한 것입니다.
...
그저 느낌이 꺼림칙하다면, 지금 당장 도움을 구하세요.
부모님이나 친구 부모님, 신뢰할 수 있는 선생님이나 친척에게 말하세요. "
이 책에 등장하는 '인챈티드 존스'는 미성년자 흑인 소녀이자 가수 지망생이다. 평범하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신의 일상을 지내던 그녀는 흑인 가수이자 유명 가수였던 '코리 필즈'를 만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작가는 이 책의 내용이 '허구'라고 언급하였지만, '허구'이기에 더욱 사실적이고, 현실적이다. 코리의 말은 마치 뱀이 몸을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을 주고, 다양한 상황 속에서 인챈티드의 심정은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와 함께 좌절하고, 무너져내리게 된다.
이 책은 '그루밍 성범죄'의 과정과 그 결말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자연스럽게 한 성인 남성이 미성년자 소녀를 어떻게 복종하게 만드는지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사회의 괴물같은 모습도 상세히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겪는 여러 피해 여성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동시에 숨이 턱-막힌다.
이 소설의 편집은 독자가 이 책에 더욱 빠져들게 만든다. 채팅창, 인터뷰, 심문 등. 등장인물의 서사를 따라 읽으며 느껴지는 여러 감정에도 괴롭지만, 사회와 가해자가 그녀를 압박하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실제처럼 구현한 부분들을 읽어나가다보면 사회의 이기심, 가해자의 잔혹함, 피해자의 허무함 등이 더욱 잘 드러나고 느껴진다.
자연스럽게 피해자의 일상이 착취되어 무너지는 소설의 전개는 올바른 어른과 올바른 사회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매 순간이 스릴러이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딸을 보호하고 지키고자 하는 부모님, 끝까지 인챈티드의 의사를 물어 도왔던 스튜어디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든든하게 지켰던 친구들. 끝없는 납치와 감금으로 지쳐갔던 인챈티는 이들 덕분에 용기를 내어 또다른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힘을 낸다. 그녀는 좋은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묻고 싶다. 우리의 사회가 어른인 우리들이 인챈티드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도울 수는 없었는지. 어린 소녀들이 이러한 고통 없이 좋은 어른과 건강한 사회가 무엇인지 경험할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없었는지 말이다. 최근 벌어진 여러 사건들에서 우리는 꾸준히 반성하고, 꾸준히 건강한 사회를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참지 마세요. 견디지 마세요. 혼자가 아닙니다.
답답하거나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당신을 도울 이들은 주변에 존재합니다.
이제는 현실을 마주하고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때.
<그로운>과 함께.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나는 꼭 가을 같다.
나는 죽은 낙엽 더미다. 검게 변하고, 축축하고, 곰팡내가 난다.
썩어가는 사과, 죽어가는 잔디, 태양을 몰아내는 이른 어둠. - P317
피해자와 생존자와 용감한 이들에게,
그리고 너무 빨리 어른이 된 소녀들에게......
우리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내 눈에는 한없이 어른으로만 보였던 이들의 관심과 애정이 고맙던 때,
취약한 것은 잘못이 아니며, 취약한 사람도 강인할 수 있고,
어린 소녀들이 이 시기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것은 어른의 책임이다. -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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