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확인 홀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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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기 전,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꼭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하는 이야기다. 특히, 대롱대롱 매달린 삶에 물들어버린 존재라면 말이다.

'미확인 홀'은 김유원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우리의 일상을 소재로 하여 삼총사 중 희영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일상을 소재로 한 만큼 이 책 굉장히 친숙하면서도 정체불명의 '미확인 홀'이라는 소재가 더해져 신선함을 함꼐 제공한다.

맴맴맴맴.

희영은 별수 없이 고3 여름으로 돌아갔다.

'미확인 홀', p.21

'블랙홀'이 적힌 메모를 받은 어느 날,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 매미 소리와 함께 희영의 추억이 샘솟았다. 어느 조용한 시골 마을 은수리. 그곳에 필희가 나타났다. 단짝 친구였던 은정과 희영 사이 필희가 나타나며 삼총사가 된 고3 아이들이었다. 평화로웠던 그들의 관계도 잠시. 필희의 엄마와 은정의 아빠가 함께 사라졌고 이들의 관계도 댕강 토막이 나버렸다. 은정이 삼총사를 떠난 뒤, 관계를 이어오던 희영과 필희도 필희가 블랙홀과 함께 사라지며 깨져버렸다.

저자 김유원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미확인 홀에 조심히 쌓아올린다. 그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삶에 공감한다. 다양한 인물에게서 상실함, 위태로움을 발견하고 그들의 상황을 세밀히 표현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내면의 구멍을 메워 나간다. 그들이 혼자 해결해나가도록 두는 것이 아닌 '함께' 치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다. 가끔은 혼자서 답을 찾아갈 수 없는 위태로움도 있기에. '개인'이 존재하는 오늘, 미확인 홀은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삶에 단단히 박음질된 것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매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추처럼 삶과의 연결이 위태로운 사람도 있다.

후자의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썼다.

'미확인 홀', p.341

오늘날 우리의 사회는 개인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마다 특성은 다르고 이러한 방식이 잘 맞는 이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회는 결국 관계 속에서 피어난다고 했다던가.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으며, 누군가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활한다. 나는 결국 우리가 되고 우리는 결국 사회가 된다. 이것을 외면한 채, 개인에게 모든 것을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는 정체불명의 거대한 싱크홀만 남지 않을까?

'미확인 홀'과 함께 관계 속에서 회복하는 힘을 따라가보기를 바란다.

"내가 살고 싶어 해도 될까?"

...

"그럼"

- '미확인 홀', p.334

관계 속에서 회복되는

<미확인 홀>과 함께.


희영의 얼굴엔 어떤 강도 흐르지 않았다. 대신 저수지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깊어지고 넓어지는 저수지. 희영이 필사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저수지.

...

저수지가 가볍게 출렁였다. - P13

포기나 좌절, 질투나 미움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체념에 관한 이야기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방금 필희가 한 말은 뭔가를 체념한 사람의 말 같았다. - P38

부모를 잃었지만 보육원엔 갈 수 없는 중년 여성 염미정은 장난감을 안 사 줘서 마트에 드러누운 아이처럼 베란다 방에 드러누워 몸부림치며 울었다. 눈물이 마르자 미련했던 젊은 날이 줄줄이 떠올랐다. - P52

동그랗게 놀라던, 하지만 텅 비어 있던 눈. - P63

때로는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상실을 막아주기도 한다. - P114

파도가 잦아들면 사방이 뚫린 들판에 서 있기를. - P231

이런 이유로도 침묵하는구나. 은정은 아빠를 생각했다.

....

어쩔 수 없어서 였겠구나. - P324

찬란하더라. 햇빛을 받아서 그랬는지 내 마음이 지옥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 공중에서 천천히 부서지는데 정말 찬란하드라. 찬란하다는 감정이 그런 건지 그때 처음 느껴봤다. 니는 그런 느낌 안 들드나?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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