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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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

이 작가는 13계단으로 유명하다. 13계단은 내 인생에서 보기 드문 걸작 추리소설에 해당한다. 추리 소설 장르를 선호하지 않지만 13계단은 추리소설의 차원을 넘어서서 심도있는 고민을 이끌어내는 책이었다. 사형문제를 다루고 있었고 결코 가볍지 않은 주인공들의 고뇌를 잘 풀어낸 추리 소설이었다. 평점 별 다섯개를 아낌없이 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책이고, 그래서 제노사이드도 큰 고민없이 선택했다. (사실은 남편이 7월에 사 준 책이다.)

 

제노사이드 바로 직전에 읽은 책이 김두식 교수님의 '불편해도 괜찮아'였고, 우연히도 이 인권에 관한 책 말미에는 제노사이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차별 살육에 관해 치를 떨면서 읽고 나서 (되씹음의 과정 없이) 바로 제노사이드를 펼쳤는데 공교롭게도 이 일본작가의 소설에서도 콩고 내전이 배경으로 깔린다. 다큐를 보다가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덕분에 현시대의 제노사이드의 한 단면을 관심있게 들여다본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책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을 읽은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초점을 휴머니즘? 정도로 요약하기에도 너무 방대하다.

소설의 중심 내용은 세상에 단 한 개체 밖에 없는 인류종을 말살-제노사이드-하는 계획이다. 현생인류가 진화를 거쳐왔다면 우리보다 더 진화된 존재가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현생인류가 지구를 지배하는 마지막 개체라고 단정짓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다. 나 역시도 이를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터라 이 책을 보면서 이 지구의 주인인양 행세해온 우리 인류가 얼마나 교만한지를 깨닫게 되었고 어째서 우리는 환경을, 지구를, 자연을, 그리고 서로를 파괴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끼게 됐다.

 

"이 세상에, 인간은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천국이 아니라."(p.376)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이 별에는 인간이라는 괴물이 있어."(p.534)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지적능력을 가진 현생인류 개체를 없애기 위한 인간들의 노력과, 반대편에 서서 진화된 인류를 도와 평화로이 공존하려 하는 소수의 인간들의 사투. 이게 내용의 핵심이지만 이 작가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중 기억에 남는 건 잠시잠시 언급될 때마다 책장 넘기기를 중지하게 만든, 한국인의 등장이다. 요즘처럼 독도문제로 예민한 시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과 일본은 불편한 역사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를 때마다 불가피한 논쟁을 계속해왔다. 역사적인 문제 자체도 한국이 피해자였고 그 역사를 다루는 현시점에서도 우리나라는 약자에 머물러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본 국적을 갖고 있는 작가는 과거 관동 대지진때 한국인들을 무차별 학살한 모국의 만행을 언급한다. 또한 주인공을 도와 신약개발에 지대한 공을 세운 역에 한국인 이정훈을 배정했다. 불필요한 설정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의아한 부분이다. 성실하고 예의바르고 똑똑한 한국인의 이미지를 이정훈이라는 인물에 집중해서 투사하고 있다. 의도가 뭘까, 생각하는 것이 일본인에 대한 불편한 나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지만 어쨌건 마지막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얼굴을 모르는 일본인 작가가 자신의 책을 읽고 있을 한국인에게 보이지 않게 머리 숙여 절하는 모습을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이건 내 개인적인 견해임.)

 

현재 지구위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의 가장 못난 모습은 서로를 죽이는 일이라는 점, 그 처참함을 보여준 콩고의 소년병들과의 전투, 그 장면을 보면서(읽었다고 표현하지 않겠다. 눈으로 본 것 같아 읽는 내내 힘들었다.) 내가 이 시대를 살면서 전쟁이 없는 때를 타고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성급한 것일지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무기의 살상능력은 더욱 강화되고 간편화되고 있다.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수백 수만의 죄없는 사람들을 한 순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게 언제 터질지는 예측불가능한 소수의 미치광이들의 손에 달려있다. 작가는 가만히 놔두어도 멸망할 수 있는 인류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경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번에도 단순한 SF 스릴러는 아니었던 거다. 이쯤되면 이 작가분은 국적을 초월해서 존경하게 된다. (제발 반전은 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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