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지난 9월쯤에 왕창 구입한 책들 중에서

가장 아껴서 마지막까지 안 읽고 있던 책이었다.

가장 아꼈다는 말은 가장 기대가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코맥 매카시의 '로드'를 읽고 나서

생각보다 오래가는 그 여운을 잊지못하던 참이었다.

 

'로드'와 비교하자면

분위기는 대략 비슷하지만(어둡고 황량하다는)

로드의 문체가 훨씬 간결하고 압축적이었다.

(그게 더 낫다는 뜻은 아니고, 단지 비교일 뿐이다.)

그리고 '로드'가 훨씬 더, 독자에게 친절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제목에서부터 암시하는 바를 추적해가야 한다.

 

'숨막히게 진행'하기 위해서인지

이 책에서는 간결하긴 하나 갑자기 내용이 건너뛰기를 한다.

물론, 드라마 한 편을 빼먹고

다음 편을 보는 정도의 타격은 아니지만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고 다음 장면(마치 영화처럼)으로

넘어가서 '아.. 얘가 죽었었구나.'라는 걸 독자 스스로

유추하게끔 만든다는 거다.

그래서 조금 어렵기도 했다.

특히 눈앞에 선혈이 낭자한 것 같은 묘사들 때문에

상상력을 스스로 통제해가며 보는 것도 좀 힘들긴 했다.

 

이 책의 압권은 줄거리보다는

보안관 벨의 독백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더욱 짙게 느껴지는 건

흘러가는 세월과 바뀌어가는 세대와 세태에 관한

한숨, 염려, 어쩔 수 없음에서 오는 무기력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보안관으로 근무해오면서 느꼈던 건

요즘 들어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고

그걸 벨 입장에서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봐도

답이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인 거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끔찍한 외부세계를 관찰하고

바로잡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되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세상이 점점 망해가고 있다고 오래 전부터 말하곤 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내가 나이가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p.217

 

'흔히들 베트남이 이 나라를 굴복시켰다고 합니다.

나는 결코 그리 생각하지 않아요.

그 전부터 이미 글러먹은 나라였소. 베트남은 거기에 결정타를 먹인 셈이오..... 그런 식으로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하느님 없이 전쟁을 하는 법은 없어요. 다음 전쟁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는 모르겠어요. 짐작도 못하겠소.' p.323

 

그 절망감, 그리고 결국 벨은 보안관을 그만둔다.

벨의 입장에서 쓰여지는 그 독백들이(약간 연한 글씨체)

그 끔찍한 살해현장과 추격전 속에서

잠시잠시 하나의 시점으로 돌아와 사건을 관조하게 만든다.

 

이 사람의 책은 이런 여운이다.

'로드'도 그랬다. 막상 읽을 때는

왜 이 책이 그렇게 찬사를 받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여운이 진해져간다.

생각할 거리들을 군데군데 흘려놨기 때문일까.

 

혹시, 저 벨의 시선은 작가의 시선과 일치하는 걸까..

작가를 만나게 되면(그런 일은 없겠지만) 그 점을 가장 묻고 싶다.

정말 무서운 건

갈수록 끔찍해져가는 범죄와 마약, 어린 범죄자들이 아니라

그렇게 변해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하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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